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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에 정직한가
운동하기 위해 밖을 나오니 모처럼 눈송이가 세상을 하얗게 덮을 거처럼 쏟아졌다. 눈발이 워낙 거세 가끔은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지만 눈을 맞은지 오랜만이라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스름이 짙을 무렵이어서 더욱 정취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 눈이 내리는 풍광을 휴대폰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정경을 바라볼 때 그 자체에 매혹되는 건지 아니면 거기에 얽힌 개인적 추억이 감상에 젖게 만드는 걸까. 아마 둘 다 해당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영화와 같은 경치에 사연까지 겹쳐 있다는 건 상당히 뜻깊다. 지나간 일을 다시 경험할 순 없다. 하지만 인생에 새겨 있는 기록을 꺼내볼 순 있다. 그 기록을 더욱 선명하게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행위로 재기록을 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인간은 현재만 보고 살아갈 수 있을까. 단정할 순 없지만 그러긴 쉽지 않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지금은 한 때 현재였던 과거 하나하나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배되는 거까진 아니어도 과거는 오늘을 매번 맞이하는 원동이 되곤 한다. 특정한 과거에 대한 기억, 향수는 누군가에겐 단순히 지나간 세월이 아니라 현재를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떨 땐 현재보다도 더 중요하다.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과거란 어떤 의미일까. 사랑, 그리움, 영광, 좌절.. 개인이 간직하거나 회상하는 과거는 저마다 다른 색을 띠고 있을 터이다. 나를 더 위무하는 과거가 있는 반면 뭔가 바꾸기 위해 채찍질을 하려 끄집어내는 과거도 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잘 남겨야 한다는 바로미터는 없다. 다른 이가 걸어 온 역사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각자에게 과거는 하나 같이 묵직하다. 분명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서로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 한 사람에게는 추억이나 업적으로 남아 있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픔과 희생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엇갈리는 지점이 생기는 건 과거를 온건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에 과거를 종속케 해서이다. 과거에 자유를 주지 않고 족쇄를 달아놓은 꼴이다.

과거를 바로 보기 위해선 해석에 따른 차이를 따지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인 과거를 얼마나 여과 없이 흡수하는지에 달려 있다.

내가 솔직해야 한다. 과거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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