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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에게 ‘먹고사니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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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난해함, 모호함이 미술 전시의 당연한 트렌드처럼 여겨진다. 같은 말도 관념적 언어를 씌워 의도를 숨기는 전략은, 보는 이에게 해석할 자유를 준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난해함이 과해지면서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되지 않고, 작가나 기획자가 기획 의도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도 생긴다. 이런 가운데 작가의 ‘먹고사니즘’이라는 실질적 문제로 출발한 전시가 눈에 띈다. 서울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열리는 ‘족쇄와 코뚜레’전이다.
전시장 1층 안쪽 공간에는 신민 작가의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조각 ‘견상자세 중인 알바생들’은 세간에서 ‘고달프다’고 여기는 상황을 견고하고 힘 있게 풀어내 눈길을 끈다. 겉만 보면 힘들게 버티는 듯하지만 사실은 요가의 ‘견상자세’를 하는 중이다. 작가가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감자튀김 포장지와 박스를 재료로 만들었다. 연약하고 불쌍한 청년이 아닌, 누가 뭐래도 아랑곳하지 않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물론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사람들도 있다. 전시장 구석에 널브러진 잘린 머리들(신민 ‘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은 애처롭게 보인다. 김동현, 도파민최, 박수호, 오순미, 장하나, 최호철, 허보리 작가의 작품도 독특함이 돋보인다.

신선한 기획의 탄생 배경엔 특별한 기준이 있었다. 바로 ‘미술관과 연고가 없는 작가’였다. 김영기 선임큐레이터는 “작가처럼 전시 기획도 새로움이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맥락에서 다양한 메시지가 발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월 26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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