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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
/저자 유홍준/출판 창비/발매 2018.04.20.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으련가. 삶의 이어진 굴곡에 추사 김정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수려한 예술의 혼을 피워낸 추사 선생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추사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였고 철저한 장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추사가 글씨를 쓸 때 얼마나 피눈물 나는 장인적 수련과 연찬을 보였는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추사 김정희는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먹을 갈아 구멍을 냈고 1000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예술이 곧 수련의 과정임을 인생에서 온몸으로 보여준 이가 바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다.
 
 
P273
아프고 외로운 귀양살이에서 추사는 참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학예에 열중했다. 조선시대 행형 제도에서 유배형이 갖는 미덕은 결과적으로 학자들에게 책을 읽고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강제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다산 정약용의 학문은 18년의 유배 생활이 나은 결과였고, 원교 이광사의 글씨도 22년 유배의 산물이었으며 신영복 선생의 글씨도 19년 감옥 생활에서 나왔듯이, 추사 역시 제주도에서 유배된 9년간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P288~289
이 〈세한도〉에서 더욱 감동적인 면은 서화 자체의 순수한 조형미보다 그 제작 과정에 서린 추사의 처연한 심경이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림과 글씨 모두에게 문자향과 서권기를 강조했던 추사의 예술 세계가 소략한 그림과 정제된 글씨 속에 흥건히 배어 있다는 것이 그림의 본질이다. 〈세한도〉의 진가는 그 제작 경위와 내용, 그림에 붙은 글씨의 아름다움, 그리고 갈필과 건묵이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에 있다. 즉 그림과 글씨와 문장이고 매한 높은 격조를 드러내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P399
가장 주의할 것은 마음이 거칠어도 안 되며 또 빨리하려 해도 안 되며, 맨손으로 용을 잡으려는 식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 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
추사에 관한 탁견이 있다.
"많이 썼을 거예요. 아마도 심심해서 쓰고, 화가 나서 쓰고, 쓰고 싶어 쓰고, 마음 달래려고 쓰고. 그 실력과 그 학식에 그렇게 써 댔으니 일가를 이루지 않고 어떻게 되겠어요. 제주도에서도 왕이건, 친구건, 제자건, 관리건, 주문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별로 문제 되지 않았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었다는 계기가 추사체의 비밀이겠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썼다는 것.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고 썼건, 그걸 쏟아내려고 썼건, 원래 예술로서 글씨란 남을 위하여,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인데 이제는 그런 제3의 계기를 차단해버린 셈이죠. 즉 자기 멋대로, 맘대로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특이하고 괴이한 개성이 나온 거 아니겠어요."
 
 
1830년 8월 마흔 살을 갓 넘기고부터 밀려든 집안의 불행은 오랫동안 김정희를 괴롭혔다. 이 어둠은 너무도 큰 고통의 시작이었으나 오히려 김정희를 예술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다. 정계에서 상승일로를 걸었다면 관료로서 해야 할 업무가 첩첩산중이었을 것이고, 또한 여가에 틈틈이 매진했을 금석 고증만으로도 벅차서 서법이나 회화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에 불과하지만 운명은 이처럼 신기한 것이어서 신비한 힘이 그를 중앙 정계로부터 내쫓아 버렸고, 하늘은 김정희에게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추사체'란 낱말은 김정희 예술이 독자성을 갖추었음을 확인하는 표현이다. 김정희가 자가풍自家風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50세에 접어든 1835년 무렵이다. 50대에 드러나기 시작한 자가풍은 55세 때인 1840년부터 1850년까지 제주 유배 시절을 거치면서 도약을 거듭했다. 매 순간 자신마저 훌쩍 뛰어넘어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서체인 '추사체'를 이뤄낸 것이다. 김정희는 이 특별한 서체를 회화에도 적용했다. 그 결과 서법에 못지 안은 성취를 거두었다. 추사체란 그러므로 서화 일률의 경지에 도달한 오직 하나의 양식이자 정신이었다. 제주 시설에서 과천 시절까지 추사체의 전개 과정은 크게 네 단계 또는 사계절로 나눌 수 있다.
 
 
 
 
 
《추사 김정희(유홍준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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