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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호라이즌 제로 던, 로봇 생명체 변이시킨 주범은?


포비든 웨스트는 흥미로운 포스트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의 설정을 보여준 전작에 이어, 원시 공동체 수준으로 퇴보한 인간과 기계생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미래의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한다. 새로운 환경에 맞춘 새 기계생물과 부족들도 등장하나, 스토리는 전작에서 이어지는 기존 주인공 에일로이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포비든 웨스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작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에 이번 주에는 기존 호라이즌 제로 던 세계관과 대략적인 줄거리, 그리고 작품의 유명세에 비해 그리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은 개발업체인 게릴라 게임즈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포비든 웨스트를 기다리며 다시 한번 환기해보기로 하자.
길 잃은 아이 로스트 보이즈 게임즈, 신규 IP 호라이즌 제로 던을 만들기까지


그렇게 버티며 2년 세월이 흐른 2003년, 로스트 보이즈 게임즈 소유주 미힐 몰은 새로운 미디어 회사인 미디어 리퍼블릭을 설립했다. 몰은 자신이 갖고 있던 로스트 보이즈 게임즈 지분 75%를 미디어 리퍼블릭에 넘겼고, 미디어 리퍼블릭은 로스트 보이즈 게임즈를 인수해 게릴라 게임즈로 다시 명명했다. 이로서 설립 직후부터 여러 유통업체를 전전하던 로스트 보이즈 게임즈 - 이제 게릴라 게임즈가 된 스튜디오는,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큰 게임을 만들 여건을 갖출 수 있었다.

어쨌거나 게릴라 게임즈는 킬존의 성과를 인정받아 몇몇 회사의 인수제안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2005년 소니 엔터테인먼트에 넘어갔다. 이후 이들은 소니의 퍼스트 파티 스튜디오로 다섯 개의 킬존 시리즈를 추가로 만들어냈다. 이 킬존 시리즈는 킬존 2와 킬존 3에서 각각 메타크리틱 기준 91과 84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점점 성적이 하락해, 2013년 출시된 킬존 섀도우 폴에 이르러서는 고작 73점에 머무르는 데 그치고 만다.

멸망 후의 미래,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호라이즌 제로 던의 포스트 포스트 아포칼립스

포스트-포스트 아포칼립스란 멸망 이후를 뜻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한 번 더 긴 세월이 흐른 이후를 뜻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전쟁이나 재앙으로 기존 문명이 멸망한 다음 황폐화된 세상을 보여준다면, 포스트-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그로부터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연이 재생되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일구기 시작한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호라이즌 제로 던은 이러한 포스트-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무대로 한 오픈월드 RPG로 기획됐다.
다만 처음부터 명확한 설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광활한 야생을 오픈월드로 그리고, 부위 파괴 시스템이 동반된 기계 짐승 사냥이 가능하며, 독특한 문화 요소가 있다는 정도로 시작했다. 이러한 방향성이 성립된 다음 폴아웃: 뉴 베가스로 유명한 존 곤잘레스를 리드 라이터로 영입해 구체적인 설정과 스토리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2018 GDC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초기 기획안에는 총격전 위주 4인 협동전 게임도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나온 설정은 대략 이러하다. 2060년대에 파로라는 이름의 회사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여 큰 부를 얻는다. 초기에 노동과 환경 관리 측면에서 사용되던 로봇은 기술개발에 따라 차츰 전쟁 분야에도 쓰이기 시작했는데, 특히 전쟁용 로봇은 적의 해킹에 대비해 강제적 가동중단을 제외한 일체의 코드 수신이 불가하도록 제작됐다. 일단 가동을 시작하면 강제로 가동중단 되기 전까지 초기에 설정된 목표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로봇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전쟁용 로봇들이 정체불명의 코드를 수신하며 문제가 시작됐다. 이로 인해 유일하게 수신 가능하던 강제 가동중단 코드는 무용지물이 됐고, 애초에 터무니없이 보안을 중시해 만들어 둔 탓에 해킹 시도도 모두 실패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 전쟁용 로봇들은 자체적으로 인근 유기물을 포획해 분해하고 연료로 사용하는 사양이었다. 멈출 수 없게 된 로봇들은 근처 환경을 완전히 파괴하고 연료로 사용하며 활동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이에 파로의 수뇌부는 미국 정부와 논의한 끝에 프로젝트: 제로 던이라는 작전을 추진하고, 이 작전이 성공할 시간을 벌기 위해 남은 인구를 최대한 차출해 전선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로봇의 진격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세간에 홍보된 궁극 병기를 개발해 전황을 역전시킨다는 것과 달리, 이 계획의 실상은 현 인류 문명의 멸망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후세를 위한 유전자 은행 및 지구복원 시설을 간직한 벙커를 짓는 것이었다. 애초에 한 번의 인류 멸종을 전제한 셈이었다.
결국 예견대로 로봇들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1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전선은 로봇 군대에 장악됐고, 산소는 거의 바닥나 지상은 대개의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오직 소수 인원만 살아남아 비밀 벙커에 들어가 후세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을 따름이었다. 이 생존자 집단의 임무는 지상의 생물이 멸종하고 전쟁용 로봇이 가동을 멈춘 이후 지하에 보관한 동식물의 DNA로 환경을 복원해줄 인공지능을 개발 및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인공지능은 그대로 남았다. 우선 이들은 새로운 해제 코드를 개발하고 지상에 송신탑을 세워 전쟁용 로봇들을 가동 중단시키고 생태계 복원을 시작했다. 지구복원 담당 인공지능 가이아 주도 하에 1,000년의 세월 동안 지상 환경을 재건했고, 각종 동식물을 지하의 설비에 저장해둔 DNA로 복제하여 지상에 풀어놓기에 이른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후에는 마침내 인간도 배양해 지상에 보냈다.
다만 지식 보전 인공지능이 제거된 탓에, 새 인류는 원시 상태에서 다시 출발해야만 했다. 물론 아예 맨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지하 배양 시설에 기초적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었고 지상 곳곳에 구시대 문명의 잔해도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얻은 신세대 인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을 사용하며, 인공지능을 신으로 숭배하는 부족사회로 발전해 가기 시작했다. 다만 모두 영어 교육을 하는 시설에서 배양된 공통의 선조를 두고 있기에 언어는 서로 통했다.

생태계를 재건하는 임무를 지닌 만큼, 본디 기계생물들은 생물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본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 시작 시점에서 온순하던 기계생물들은 갑자기 난폭해지고 있으며, 심지어 인간을 공격하는 일도 빈발하고 있다. 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은 이들 기계생물이 난폭해진 이유를 파악하고, 그 배후에 있는 존재의 음모로부터 신 인류를 보호하게 되는 주인공 에일로이의 여정을 다루게 된다.
호라이즌 제로 던과 DLC 프로즌 와일드 스토리로 예상하는 후속작 포비든 웨스트

게임 중후반에 드러나는 진상은 이러하다. 게임 시작 시점으로부터 약 19년 전 붉은 벼락이 치던 날 지구 재건 인공지능 중 하나인 하데스가 오염됐다. 이는 1,000년 전 파로의 전쟁용 기계들을 오염시켰던 것과 유사한 코드에 의한 것이었다. 본래 하데스는 가이아가 지구 환경을 제대로 복원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창조된 존재로 가이아가 만들어 놓은 생태계를 말살하여 처음부터 다시 만들게 하는 것이 하데스의 임무였다.
오류를 일으킨 하데스는 가이아가 정상적으로 복원해둔 생태계를 무조건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가이아는 하데스를 막기 위해서 그 외 하부 인공지능들을 모두 외부 모듈로 방출한 후 하데스 코어와 함께 자폭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황급히 한 명의 특별한 인간을 복제했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창조주 엘리자베트 소벡 박사의 복제체였다. 자신의 창조주가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란 발로였다.

본래대로라면 하데스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어야 했다. 그러나 에일로이는 관리자 그룹인 엘리자베트 소벡 박사의 복제인간이기에 각종 시설에서 최고등급 접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진실을 파악해내고 하데스에 접촉해 멸종 프로토콜을 리셋 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본판 스토리는 이렇듯 에일로이가 금단의 땅으로 불리는 고대 시설들에 방문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인공지능 하데스를 숭배하는 이들에 맞서 새로운 멸종을 막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DLC 프로즌 와일드는 또다른 인공지능 헤파이스토스에 관계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임 중 드러나는 사실에 따르면 헤파이스토스 또한 어느 시점에서 정체불명의 코드에 오염됐고, 자신의 본래 목적인 로봇을 활용한 인공 생태계 구축에 무조건적으로 매몰됐다. 헤파이스토스는 자기가 만든 기계적 생태계를 인간이 훼손하고 있다는 주객전도 논리에 빠진 나머지, 인간을 사냥하기 위한 목적의 기계생물들을 제작하고 있었다. 게임 중 기계생물이 살인적으로 변한 이유다.

2022년 출시될 후속작 포비든 웨스트는 본작과 프로즌 와일드 이후 에일로이가 서쪽의 땅을 모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땅은 이미 다방면에서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정체불명의 적색 식물이 피어나 인근의 동식물을 죽이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수몰됐고, 갑작스러운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설정상 인공지능 중에는 하데스와 헤파이스토스 외에도 식물과 토양, 수질, 대기 관리를 담당하는 존재들이 있는데, 스토리상 이들의 오염을 다룬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과연 이 혼란한 세계를 만든 이는 누구인지도 이번 작품에서 드러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