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친구는 능력이 참 좋은데 운이 안 따라줘'하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본인 스스로에게 들었던 생각일 수도 있고요. 이런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캐릭터가 페이트 시리즈에도 있는데요.
창을 사용하는 '랜서(Lancer)' 클래스는 운이 정말 좋지 않아서 '랜서라서 죽었다', '영고 클래스'라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죠.※ 본 포스트는 페이트 시리즈 스토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어뮈드 오 디나 죄가 있다면 너무 잘생겼다는 점. 그리고 눈물점.
페이트 제로(제4차 성배전쟁)에 등장하는 '디어뮈드 오 디나'는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피오나 기사단 최고의 기사 중 한 명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이야기했었던 '핀 막 쿨'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기사죠.디어뮈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은 주군 핀 막 쿨이 말년에 아내 '그라니아'를 얻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사정.. 그렇지만 젊고 꿈 많은 그녀가 주름 가득하고 수염 난 아저씨를 좋아할 리 없죠. 조금만 눈을 돌려도 그의 주변엔 '디어뮈드'같은 잘생긴 기사들이 많았으니까요.사랑과 전쟁 켈트 신화편그래서 사고를 칩니다. 디어뮈드에게 반한 그라니아는 그의 '기아스(서약)'를 이용해 자신을 데리고 도망쳐달라고 애원합니다. 이에 디어뮈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게 되죠.디어뮈드는 젊은 여성을 다소 꺼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여기서 기아스(Geas)란 아일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일종의 금기 개념입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기아스를 어기게 되면 매우 불명예스럽게 여겼고, 심지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디어뮈드의 기아스는 '어린 여성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 것'이었습니다. 저 잘생긴 얼굴에 저런 기어스라니.. 거의 뭐 천부적인 막장드라마 주인공입니다.얼핏봐도 빡친 얼굴아무튼 졸지에 예쁜 아내를 빼앗긴 핀 막 쿨은 분노하여 추격대를 보냅니다. 하지만 디어뮈드가 어찌나 강한지 수만 명의 병사들을 해치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손해를 보고 난 뒤에야 핀 막 쿨은 어쩔 수 없이 둘 사이를 인정하게 됩니다.그러나 핀 막 쿨은 멧돼지로 변신한 디어뮈드의 이붓동생이 디어뮈드를 공격하는 순간을 노립니다. 보시다시피 풀강화를 받은 멧돼지를 상대한 디어뮈드는 큰 부상을 입고 말았습니다.일단 표정을 보면 인성 폭발한듯핀 막 쿨은 고의로 자신의 치유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디어뮈드가 죽어가는 광경을 천천히 구경하는 인성을 보여줬고, 불명예스럽게도 디어뮈드는 '멧돼지에게 죽은 기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핀 막 쿨은 '부상을 입은 디어뮈드를 보고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해 죽게 내버려 뒀다'는 설도 있습니다.흥미로운 건 훗날 성배 전쟁에 소환된 그가 바랐던 소원은 '그라니아'도 '복수'도 아닌 '자신의 충절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아스로 인해 핀 막 쿨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다하지 못한 것이 그에겐 가장 큰 아쉬움이었죠. 이런 부분을 보면 랜서 클래스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페이트 제로(애니메이션)에서 디어뮈드는 명예로운 싸움을 원했고 이에 가장 어울리는 적수인 세이버(알트리아)와 사이좋은 대결을 펼치지만 성배 전쟁은 그렇게 고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기면 장땡'인 진흙탕에 불과했죠.
이런 핵심을 잘 간파하고 있던 키리츠구(세이버의 마스터)는 디어뮈드의 마스터(아치볼트)의 약혼녀를 인질로 잡아 '영주를 써서 디어뮈드를 자해하게 해라'고 협박합니다. 가엽게도 약혼녀는 디어뮈드에게 반한 뒤였지만, 약혼녀를 정말 사랑했던 아치볼트는 시키는 대로 영주를 사용합니다.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결투를 하고 있던 디어뮈드는 또다시 봉변을 당했습니다. 이성을 잃고 성배에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죽어가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처절하게 느껴집니다. 어찌 보면 '기사로서의 명예'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쿠 훌린 악의도 없고 운도 없고
쿠 훌린은 얼스터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신의 대영웅입니다.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제5차 성배 전쟁) 초반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세이버'와 더불어 많은 분들에게 잘 알려진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디어뮈드만큼이나 운이 없는 캐릭터로 유명하죠.쿨란의 맹견답게 화나면 진짜 개 같이 무서움쿠 훌린의 원래 이름은 '세탄타'였습니다. 어린 시절 '쿨란'이라는 상인이 키우던 맹견을 죽여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사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쿠 훌린(쿨란의 맹견)으로 바꾸고 '개고기를 절대 먹지 않겠다'는 기아스가 생겼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고국을 지키기 위해 적국과 수많은 서약을 맺게 되는, 희생정신이 투철한 인물로 묘사됩니다.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에서 쿠 훌린은 '한 마리의 늑대'와 같은 인상을 줍니다. 서번트이지만 마스터와 함께 다니는 경우가 별로 없고 자유롭게 혼자 돌아다니면서 임무를 수행합니다.
'자신에게 반할까봐 여성을 기피하는' 디어뮈드와는 달리, 쿠 훌린은 그런 기아스가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몸도 좋고 얼굴도 잘 생겨서 에미야 시로가 '토오사카 린에게 접근하지마'라고 질투하기도 합니다.그의 보구 '게이볼그'는 나중에 이야기할 스승 '스카사하'로부터 받은 것이며 위력은 상당하지만 사실 다른 서번트의 보구에 비해서 임팩트가 약하긴 합니다.
작중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보구이기도 하고 실제로 성공하는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못 했기 때문이죠.성배 전쟁에서의 쿠 훌린의 결말 또한 디어뮈드처럼 허무합니다. 제5차 성배 전쟁의 감독이자 쿠 훌린의 마스터였던 '코토미네 키레이'는 사실 제4차 성배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클룡인이었습니다. 나중에 성배를 독차지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사악한 인물이었죠. 나도 한방타이밍을 잡은 키레이는 서번트인 쿠 훌린에게 '토오사카 린'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노영주) 하지만 의리를 중시했던 쿠 훌린은 한때 협력 관계이기도 했고 '긍지 높은 인간'으로서 린을 좋아했기 때문에 거절합니다.
그러자 코토미네 키레이는 영주를 사용해 '린을 죽여라'고 명령하는 대신에 '자해하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서번트 '길가메쉬'가 있었기 때문이죠.너도 한방 러브샷자신의 심장을 스스로 찌른 쿠 훌린은 소멸하기 직전 기지를 발휘해 코토미네 키레이에게도 심장빵을 놓습니다. 그리고 마토 신지에게 겁탈당할 뻔한 린을 구해주며 어느 정도 체면치레는 하게 되었죠. 디어뮈드에 비하면 나름 멋진 최후아무것도 하지 못 한채 저주만 퍼부으며 죽어간 디어뮈드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결과라고 볼 수 있겠네요.
스카사하 모든 랜서들의 끝판왕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 등장하는 스카사하는 아름다운 외모와 파격적인 의상 덕분에 가장 많은 인기를 자랑하는 캐릭터들 중 한 명입니다. 그녀 또한 얼스터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의 전사이며, 그림자 나라의 여왕이기도 합니다.스카사하의 창술은 고독스럽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더욱 강해졌으며, '신마다 썰어버릴 때의 손맛이 다르다'고 언급할 정도로 무자비한 창술을 구사했다고 합니다. 다른 랜서 서번트들조차 그녀에게 한 수 배워보고 싶어 줄을 설 정도로 끝판왕급 능력을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스카사하는 '인간의 몸으로 신의 영역에 지나치게 접근했다'는 이유로 저주를 받고 현세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몸을 얻게 되었고 페그오(2016년)에서 등장하는 그녀의 나이는 약 2,000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스카사하는 수많은 마술사와 전사를 육성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유저들 사이에선 '슼승님'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쿠 훌린'과 '퍼거스 막 로이'가 있으며 특히 쿠 훌린과는 '사제 이상, 이성 이하' 정도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스카사하를 처음 소환에 성공하면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등장하는 모습 때문에 어쌔신 클래스로 오해하는 유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영기재림'을 통해 능력치 상한을 올려주면 그녀의 맨얼굴이 드러나게 되고 '기껏 가리고 있었더니 이런 취향인 건가'하며 쏘아붙이는, 나름 귀여운(?) 면모도 가지고 있습니다.영기재림을 반복하면 얼굴을 붉히며 '끝까지 가리게 해주지 않는구나. 설마 마음에 들기라도 한 것이냐'는 말을 하기도 하고, '네가 원하는 것은 창인가? 아니면..'까지 말을 잇다가 그만두기도 합니다.여러모로 유저들의 애간장을 들었다 놓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아마도 이런 매력 덕분에 스카사하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페이트 엑스텔라 링크에 등장하는 스카사하. 한국어판은 9월 발매 예정.'죽지 않는 몸이라면서 어떻게 서번트로 소환된거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는 페이트 그랜드 오더(타입문)의 주요 설정인 '인리소각'이 적용된 결과인데요.
간단히 말해 '특이점'이라고 하는 특이 현상이 발생하면서 2016년 모든 인간이 불타 죽는 인리소각이 발생하고, 그림자의 나라 또한 통째로 소멸하면서 서번트 소환이 가능해졌다고 하네요.(그래도 어렵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 내에서의 인연 대화에서 스카사하는 '성배에 빌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죽음이다'고 말할 정도로 삶에 다소 회의적인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준 창(게이볼그)을 준 사람(쿠 훌린)이 나를 죽여줬으면'하는 바람 또한 은근 내비치면서 안타까움을 더해주는 캐릭터이기도 하죠. 제가 2천년 동안이나 살 수는 없으니 그녀의 심정을 헤아리는 일 또한 묘연하겠네요.
쓸데없지만 알아두면 랜서가 더욱 좋아지는 이야기
1. 랜서가 신다
이처럼 랜서 클래스 서번트는 영령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모두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디어뮈드'와 '쿠 훌린'이 영주로 자해를 명령받아 죽게 된다는 결말은 의도적으로 맞춰진 부분이며 사실상 '공식적으로 운이 나쁜 클래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둘은 '성배전쟁에서 첫 전투를 치른 서번트'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할로우 아타락시아에서도 어쩐지 불쌍한 아조씨로 등장페이트 그랜드 오더에 등장하는 디어뮈드와 쿠 훌린의 '행운' 능력치는 모두 'E랭크'로 최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랜서가 신다(죽었다)'라는 밈이 있을 정도로 돌연사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페이트 카니발 판타즘'과 같은 개그 애니메이션에서 유머 코드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스카사하 코스프레는 한그오 출시를 기념한 행사에서 다른 서번트를 제치고 압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한편 스카사하는 불행한 죽음은 없었지만 '영원히 죽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불행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찌됐든 살아 있다는 점을 높이 샀는지 행운 능력치는 'D랭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른 서번트들에 비하면 낮은 랭크지만 한편으로는 '와 랜서인데 행운이 이렇게 높아?'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합니다.캐스터로 소환된 스카사하에게 바디슈트란 없었다2. 랜서는 타이즈 쫄쫄이를 입는다?
드물게도 3명의 공통점이 있다면 몸에 착 달라 붙는 '바디슈트'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이에 대해 '고대 켈트 전사들은 전쟁시 맨 몸에 물감(염료)으로 문신을 그려 싸웠다'는 설정을 반영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카사하라는 역대급 캐릭터가 등장하게 됐으니 아무튼 이득인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3. 요즘 시대에 투잡 쓰리잡은 기본
앞서 쿠 훌린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 한 부분이 있다면 '메이브 여왕'과의 관계입니다. 옆 나라의 여왕이었던 메이브는 쿠 훌린의 고국을 침공했지만 패배하고 사로잡히게 됐는데요.
여기서 쿠 훌린은 '여자를 죽일 수 없다'며 그녀를 풀어줍니다. 하지만 메이브 여왕은 이에 대해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고 복수를 위해 온갖 비열한 술수를 동원하게 되죠. 그 중 결정적인 하나가 '쿠 훌린에게 개고기를 접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아일랜드에는 '접대를 거절하지 말라'는 금기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개고기를 절대 먹지 말라'는 쿠 훌린의 기아스가 상충되어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후 아일랜드 빛의 왕자치고는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죠.어찌보면 쿠 훌린에게 인정받고 싶었는지도페이트 그랜드 오더 제 5특이점에서 메이브는 쿠 훌린에 대한 분노와 집착을 동시에 가진 채 서번트로 소환되었으며 연달아 '성배'를 매개로 한 '버서커' 쿠 훌린을 소환했습니다. 쿠 훌린 얼터(쿠얼)는 무분별하게 적을 학살하는 살육 기계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특히 그는 성배의 힘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스승인 '스카사하'보다 능력치가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분명 '스카사하를 이길 수도 있는 유일한 서번트'로 지목된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성이 없는 살육 기계에 가깝기 때문에 스카사하를 이기더라도 결코 명예로운 승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쿠 훌린은 랜서와 버서커 말고도 '캐스터' 클래스로 소환되기도 합니다. 슼승님께 '룬'과 북유럽의 마술을 물려받았다는 설정이 반영됐습니다. 캐스터로서의 능력치 자체는 낮지만 적의 허를 찌르는 쿠 훌린 특유의 변칙적인 전투 스타일이 특징인데요.
페이트 그랜드 오더 게임 초반이나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그의 전투 모습을 구경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고 나니 참 다재다능한 인물이네요. 운만 좀 좋았더라면..여담이지만 슼승님 또한 랜서가 아닌 어쌔신 클래스로도 등장합니다. 뭔가 다른 의미로 남성 유저들을 암살할 것 같은 어쌔신이죠.현재 한그오에는 성정석이 없어도 슼승님을 얻을 빅-찬스가 열려서 흑잔과 함께 진지하게 달리는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슼승님..
정말 매력적인 클래스 랜서(Lancer)
이렇게 랜서 클래스의 대표적인 3명의 캐릭터를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사실 이외에도 페이트 아포크리파, 페이트 그랜드 오더 등에 등장하는 강력하고 매력적인 랜서들이 정말 많죠.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특징이라면 '자신의 뜻에 흔들림이 없고 긍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일까요. 때로는 이 긍지가 단점이 되어 목을 조르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이 랜서의 인기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완벽한 사람보단 단점도 있고 인간다운 면모를 가진 사람이 더 매력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