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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게임의 캐릭터를 갱생시킨 게임
네오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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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망하면 캐릭터도 사라집니다. 몇몇 캐릭터는 운 좋게 살아남아 스카이림으로 망명을 가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드문 경우죠.
그런데 모바일게임 <라스트오리진>은 '망했던 게임의 캐릭터'를 신규 캐릭터로 데려오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어찌 된 영문인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망겜 인공영웅의 캐릭터 '타치'
라스트오리진 흥하고 주목받다

인공영웅(2018.09~2019.02)
'스마트조이'는 모바일게임 라스트오리진을 만든 개발사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라스트오리진을 출시하기 전에 <인공영웅>이라는 모바일게임을 서비스한 적이 있었어요.
"이런 게임이 있었어?"하는 반응이 당연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고 런칭 6개월만에 서비스를 종료한 비운의 게임입니다.
여담이지만 그 사이 게임의 수익은 50만원 정도, 유저 수는 두 자릿수에 불과했다고.
아무튼 인공영웅에는 '타치'라는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암살술을 배워왔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어찌 보면 서브컬처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살자 캐릭터입니다. 인공영웅 서비스 종료와 함께 타치도 사라지는 듯 보였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좌우좌(LRL)
라스트오리진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난 뒤 팬들이 스마트조이라는 개발사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그 결과 인공영웅이라는 게임의 존재가 알려졌고 팬들의 관심은 타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라스트오리진에는 '좌우좌(LRL)'라고 불리는, 타치와 매우 닮은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팬들은 타치를 '원시 좌우좌', '언럭키 좌우좌' 등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또한 타치의 사연을 안타깝게 그려낸 2차 창작 만화(디얍 등)들이 나오면서 더욱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팬들의 니즈 파악한 스마트조이
거대한 만우절 장난을 계획하다

공식 카페에서 타치에 대한 언급이 늘어나고 "타치가 신규 캐릭터로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라스트오리진은 '거대한 만우절 장난'을 꾸미기로 합니다. 그들의 계획은 3월 30일부터 진행됐습니다.
3월 30일, '신규 캐릭터 Unknown'이라는 제목으로 한 실루엣 이미지가 올라옵니다.
3월 31일, 이번에는 '스킨 출시 예고'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실루엣 이미지가 올라옵니다. 유저들은 좌우좌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고, 머리의 뾰족한 부분을 미루어보아 "좌우좌의 타치 스킨이다"라고 확실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4월 1일, 라스트오리진은 공지를 통해 여기가 인공영웅 공식 카페라는 농담을 던졌고
신규 캐릭터 '타치'와 신규 스킨이 추가된다는 패치 노트를 올렸습니다.
유저들은 얼마 전 좌우좌의 타치 스킨과 신규 캐릭터 Unknown가 나온다는 공지를 본 적이 있었고 다른 공지글에서 인공영웅 드립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내용도 거짓말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만우절이 지난 4월 2일, 라스트오리진은 신규 캐릭터 Unknown이 사실은 신규 스킨이었고
타치는 스킨이 아닌 신규 캐릭터로 나온다는 공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만우절 전(3월 30일~31일)에 올라온 공지글 아래를 드래그해보면..
이렇게 "4월 1일은 만우절입니다"라며 떡밥을 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만우절 당일 공지의 빈 공간을 드래그해보면 "만우절은 끝났습니다"라는 문구도 볼 수 있죠.
즉 만우절 전부터 올라온 공지글이 거짓말이었고, 만우절에 올라온 공지글이 거짓말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고도의 장난이었습니다.
실제로 대다수 유저들은 "철 지난 만우절 장난은 아니죠?", "타치가 진짜로 나오네", "이왜진?"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걸 보며 라스트오리진 측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겠죠.

장난처럼 등장한 신규 캐릭터 타치
새 생명을 얻다

인공영웅 시절 타치는 사실상 빈 껍데기에 가까웠습니다. 성장만을 위해 자동 사냥을 돌리는 어쌔신 캐릭터에게 스토리가 개입될 여지는 적었습니다.
그러나 라스트오리진에 합류한 타치에게는 재미있고 디테일한 설정이 붙기 시작합니다.어려서부터 암살술을 배워온 암살자 설정은 그대로 따랐고 '독물 감정에 능하지만 미각이 매우 둔하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혼자 손인형을 가지고 논다', '믿고 따를 마스터가 필요하다'같은 설정이 추가됐죠.
문화산업을 선도하는 세계 10대 기업에 속하는 '스마트엔조이'는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인공영웅을 서비스 중이며 여기에서 등장하는 대표 캐릭터 타치를 바이오로이드(인조인간)로 구현했다는 배경 스토리도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스마트엔조이가 어디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서약 시스템
한편 라스트오리진에는 캐릭터의 호감도가 최고에 이르는 '서약'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서약을 하기 전에 타치는 마스터(플레이어)에게 이런 반응을 주로 보입니다.
타치의 서약 전
"다녀오겠습니다, 마스터. 지령대로 몸 성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저는 마스터가 아끼는 무기니까요."
어려서부터 감정을 배제당하고 암살자로 육성된 바이오로이드답게 자기 자신을 도구 취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약 후 타치에게는 이런 반응이 나타납니다.
타치의 서약 후
"...무기에, 다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마스터가 원하시는 것이...? ...! 알겠습니, 마스터. 앞으로 마스터의 무기가 아닌, 마스터의 것으로서 일평생... 보필하겠습니다."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말,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스터의 것이란 게 이렇게 기쁠 줄은… 마스터를 만나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마스터를 위해서라도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좀 더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죠. 이렇게 미묘한 표현의 변화를 통해 '타치에게 감정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짧게나마 전달하고 있습니다.
타치의 스킬 연출
앞으로 타치는 망겜의 잊혀진 캐릭터가 아닌, 흥겜의 사랑받는 캐릭터로 활약할 예정입니다. 좀 오버하자면, 빈 껍데기에 가까웠던 인공영웅 타치는 팬들의 관심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셈입니다.
또한,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을 절묘하게 캐치한 라스트오리진의 모습도 많은 게임들이 참고할만한 사례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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