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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배경 콜오브듀티, 정쟁 도구 아닌 문화로 소비
아주경제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반동분자를 찾겠다며 아이를 위협하고 동네사람들을 끌어냈다. 나무 위에 줄을 걸고 목을 매다는 장면도 있다. 이후 게임의 주인공인 프라이스 대위가 등장하며 잠시 북한을 벗어난다. 한숨을 돌렸다. 어쩌면 벌어질 수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주말 내내 가상의 전쟁터에 빠져 지냈다.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며 역설적이지만 우리 정치가 문화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퇴행적인지 알 수 있다. 북한이 이렇게 위험한 집단이라며 대통령이 게임을 해 봐야 한다는 이도 있다. 게임이라 해도 총을 들고 동족인 북한군을 죽이는 일이 맞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한다.
게임은 이데올로기를 다루지 않는다. 그저 게임일 뿐이다. 상상력과 허구를 바탕으로 만드는 창작물이다. 등장 인물들을 보며 현실 속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잘못 생각한 것이다. 슈퍼맨에 가까운 주인공 프라이스 대위는 우리가 즐겨 보던 첩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콜오브듀티 시리즈를 비롯한 밀리터리 게임들은 항상 적이 필요하다. 가상의 내전을 비롯해 3차 세계대전, 지구 종말의 위협 등이 주요 소재다. 그래픽 기술의 발달로 전쟁터는 더 세밀해졌고 정교한 물리엔진은 가상 세계에 사실성을 부여해왔다. 수많은 게임에서 뉴욕과 파리가 무너졌듯이 서울도 그럴 수 있다.
해외에서는 게임을 놓고 정쟁을 벌이는 일이 거의 없다.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나 전쟁을 미화한 게임이나 영화의 경우 일부 정쟁의 대상이 됐지만 대부분은 정치권에서 화제조차 되지 못한다.
게임 속 한국군 병사가 되어 북한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소감은 현실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점 정도였다. 이를 두고 "안보 의식이 마비된다"거나 "미국의 심리전"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괴이하다. 게임을 즐기는 대중의 문화적 주체성을 깎아내리고 바보로 여길 뿐이다.
정치인들이 낄낄거리며 게임 타이틀을 주문해 인증하고 이를 SNS 정치 공세의 소재로 소비하는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게임은 정치인들 입맛에 맞는 안보 교재가 아니다. 반미 또는 반북의 선전물도 아니다. 콘텐츠를 콘텐츠로 소비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문화 산업이 진정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는 유연성과 자율성을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과거 대중음악이나 영화가 낡은 도덕적 잣대에 갇혀 가위질 당하던 시대는 이제 없어야 한다.
이번 작품의 제작진은 한국 문화와 군 생활을 철저히 고증하고 디테일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시장의 눈높이에 맞춘 충실한 장르적 성취로 보는 게 맞다. 불필요한 안보적 불안감을 자극한다고 해석해선 안 된다.
영화를 영화로, 소설을 소설로 보듯 게임 역시 가상 세계의 오락으로 온전히 대우하자. 가상의 전장에 얄팍한 정치적 잣대를 들이밀며 왈가왈부하기에는 우리 대중문화 수준이 높다. 정치는 정치를 하고, 게임은 제발 게임으로 내버려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