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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불암 별세, 아내 김민자 등 가족 곁에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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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불암이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와 56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배우 김민자(84)에게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30일 연예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전날 오후 10시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민자와 아들 동녘, 딸 동비가 있다. 고인은 이날 0시 20분께 빈소가 마련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동에는 김민자와 자녀, 관계자가 응급요원 두 명과 함께했다. 김민자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연신 눈물을 흘리며 고인의 뒤를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자 / KBS2 '불후의 명곡'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일반 조문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받고 있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도 장례위원으로 이름을 올린다.

1942년생인 김민자는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3년 KBS 공채 3기 탤런트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1968년 TBC-TV 최우수 탤런트상을 받은 그는 이듬해 봄 동양방송(TBC)으로 무대를 옮겼다. 결혼 무렵까지 '거북이', '다모기담', '별일 없소?' 등 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무서워하랴'로 연극상을 받기도 했다. 스크린에서는 1967년 영화 '나운규 일생'과 '황혼의 검객' 등에 얼굴을 비쳤다.
세상을 떠난 배우 최불암(왼쪽)과 그의 부인 김민자. 2014년 모습이다. / 뉴스1

1980년에는 제1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후 KBS 일일연속극 '보통 사람들'(1982∼1984)과 '고향'(1985), 주말드라마 '야망의 세월'(1990)과 '젊은이의 양지'(1995) 등에 출연하며 안방극장을 지켰다. 1998년부터 이듬해까지 방송된 MBC 일일연속극 '보고 또 보고'에서는 시어머니 지경옥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SBS 드라마 '순자'에도 출연했다.

부부의 인연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최불암은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TV에 나온 김민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김민자를 만나기 위해 국립극단을 떠난 그는 1967년 KBS에서 TV 연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1968년 연극 '환절기' 무대에 함께 서기도 했다. 4년 열애 끝에 1970년 6월 27일 서울 대연각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최불암은 2016년 한 인터뷰에서 "내가 아내의 연기하는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고 말했다.

결혼까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부부는 2019년 6월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함께 출연해 결혼 당시를 돌아봤다. 김민자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도 가족도 반대했다. 나도 갈등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최불암은 "내가 조건이 안 좋았다. 외아들에 홀어머니에 수입이 없었다. 남편감으로 0점이었다"고 말했다.

김민자는 "저렇게 반대할 정도로 위험한 일인가 싶어 불안함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놔 버리면 이 사람이 상당히 나쁘게 될 것 같았다. 술을 좋아하는데 혹시나 잘못될까 봐 걱정됐다"고 했다. 그는 "결국엔 내가 결정을 했다"며 "모성애도 있었고 굉장히 죄의식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신혼 시절 이야기는 1970년 8월 발행된 잡지 '선데이서울'에 실렸다. 당시 김민자는 남편 호칭을 두고 "아직 호칭을 못 정했다. '여보'라고 부르기도 쑥스럽다"고 말했다. 부부싸움에 대해서는 "싸움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가한 시간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에겐 그럴 틈이 없다"고 했다.

김민자는 남편의 연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료이기도 했다. 그는 2016년 한 인터뷰에서 "한참 활동을 할 때는 서로의 연기와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남편의 연기에 대해 엄격하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는 남편이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건강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된다"고 했다. 2009년 인터뷰에서는 최불암을 두고 “'나는 배우니까' 하는 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라고 평했다.

부부는 나눔 활동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최불암은 1985년부터 한국복지재단을 통해 봉사와 나눔을 이어 왔다. 한국복지재단은 지금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다. 최불암은 이 재단의 전국후원회장 등을 맡았다. 그의 장례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민자는 난청 아동에게 인공달팽이관(인공와우) 수술비를 지원하는 후원단체 '사랑의 달팽이' 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는 박기현 당시 아주대학교의료원장에게서 "인간이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경우 뇌 발달의 저하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청인 돕기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의 달팽이'는 수술을 받은 아이들에게 클라리넷을 가르쳐 앙상블 공연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김민자는 2009년 인터뷰에서 "우리 부부는 기본적으로 받은 혜택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봉사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많다. 나뿐 아니라 누구든 어느 한쪽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장애일 뿐이다"라고 했다. 이어 "평생 소리를 못 듣던 아이들이 수술 후 악기를 연주한다. 대단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김민자는 '잉꼬부부'라는 별칭에 대해 "사람들은 우리가 긴 세월 잘 가고 있으니까 잉꼬부부라고 불러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40년 정도 살아 봐라. 척하면 '어, 저거구나' 싶다. 그래도 전혀 안 싸우는 건 아니다”라며 웃었다. 부부싸움에서 누가 이기느냐는 질문에는 "무승부"라고 답했다.

최불암의 말년은 김민자가 곁에서 지켰다. 최불암은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졌다. 2011년부터 14년 동안 진행해 온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내려왔다. 이후 재활에 힘썼지만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5월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는 부부의 러브스토리를 다시 조명했다. 다만 최불암은 가족의 요청으로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 약 4개월 전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최불암을 병문안했을 때도 김민자가 자리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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