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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불암 별세, 수사반장 전원일기 향년 87세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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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불암은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특별한 이름이다.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는 형사 박영한, 가족과 마을을 품어 안는 양촌리 김 회장.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단순한 드라마 속 캐릭터를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이고, 한국 연기사의 한 장면이다.

최불암(본명 최영한)은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나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1967년 20대의 나이에 KBS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 역을 맡아 TV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에도 실제 그의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든 인물을 많이 맡으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의 연기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은 MBC 드라마 '수사반장'이다. 1971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방송된 이 작품에서 최불암은 주인공 박영한 반장을 연기했다. 권총과 수갑 대신 트렌치코트와 하얀 손수건, 담배 네 개비를 상징처럼 내세운 박 반장은 강압적인 형사보다 인간적인 설득과 정의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급속한 산업화로 화려해진 도시의 이면에 속출하는 범죄와 사회적 갈등, 서민들의 애환을 다룬 '수사반장'은 당시 경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최불암은 생전 여러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자신의 인생작으로 꼽았다. 그가 2007년 펴낸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수사반장' 시그널 주제곡을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출연하면서 세상 이치를 깨달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회상했다.
'수사반장'이 연기자로서의 기반을 다진 작품이었다면,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간 출연한 '전원일기'는 그를 국민적 배우로 만든 작품이었다. 양촌리 김 회장 역을 맡은 그는 김혜자가 연기한 아내 이은심과 함께 대가족의 가장이자 마을의 정신적 지주를 그려냈다. 집안에서는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아버지였고, 마을에서는 누구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넉넉한 어른이었다.

최불암은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아버지상을 '그늘 넓은 느티나무'에 비유했다. 그는 "명절이면 온 동네 사람들의 세배를 받고, 고향을 찾은 청년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크고 작은 일에 용기와 지혜를 빌려주는 어른의 모습을 드라마에서라도 그려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평생 따뜻하고 근엄한 아버지 역할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바람 불어 좋은 날', '최후의 증인',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에서 다양한 인물을 연기했고,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는 낭만적인 중년 남성 박재천으로 변신해 기존 이미지와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드라마 '식객'에서는 궁중요리의 권위자 오숙수 역할을 맡으며 꽁지머리를 하거나 말투를 바꾸는 등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최불암이 추구한 연기의 핵심은 진정성이었다. 그는 2001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좋은 배우가 되려면 사람을 연구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는 인물의 겉모습을 흉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연기할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연기자는 백지 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작품에서 만들어낸 캐릭터에 갇히지 않으려면 배역이 끝난 뒤 자신을 비워내고 새로운 인물로 새 배역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방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자극적인 재미만 좇는 드라마를 비판했고, 배우에게는 시대정신과 사회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2024년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58'에 노년의 박영한 역으로 특별출연한 것은 그의 연기 인생을 상징적으로 마무리한 장면이었다. 1970년대부터 시청자와 함께했던 박영한이 반세기 넘는 시간을 건너 다시 등장해 후배 형사들을 격려했다.

최불암은 후배들에게 '광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이 가야 할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그걸 치우는 게 광대"라고 말했다. 사람을 이해하고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연기자. 그가 67년 동안 작품과 무대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배우의 모습이었다.

배우 최불암은 29일 향년 87세로 영면에 들었다. 오랜 시간 대중과 함께해 온 원로 배우의 부고에 동료 배우와 문화계 인사들뿐 아니라 수많은 시청자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대표했던 그의 연기와 작품들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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