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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망설 오보 원인, 동기화된 추론과 분단포비아
아주경제
최근 김정은 사망설이 또다시 번졌다. 10월 18일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시작된 소문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20일 그가 전날 리설주·김주애와 함께 평양의 '전국피복 및 신발전시회'에 참관한 사진을 공개한 뒤에도 건재했고 24일 중국 단둥에서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만난 사실이 공개된 후에야 잦아들었다. 국가정보원은 23일 사망설이 허위라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사이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전방 시찰이 소문의 재료가 됐다. 조선중앙통신은 10월 21일 김여정이 박정천 국방성 고문과 함께 남부 국경 요새화 공사 현장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는 시찰 날짜를 20일로 전했지만 김여정은 이례적으로 곧바로 담화를 내 실제 방문은 21일 새벽이었다고 바로잡았다. 한국군 감시장비에도 그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러나 이 '수상한' 시찰은 19일 이후 김정은의 공개 행보가 전해지지 않던 상황과 맞물려 소문의 정황으로 소비됐다. 일부 매체는 22~23일 그의 최전방 행보와 김정은의 부재를 한 기사 안에 나란히 배치했다. 사망을 단정한 보도는 아니었으나 사망설을 전제로 하면 김여정의 활동은 권력 장악의 신호가 되고, 김정은의 잠행은 사망의 정황이 된다.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하나의 서사로 묶이면서 최초의 추측이 스스로를 뒷받침하는 '순환 논증'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정은이 사망했다면 김여정이 한가하게 최전방을 둘러볼 수 있었겠느냐는 한 전문가의 반문이 오히려 상식에 가까웠다.
언론은 이런 보도를 흔히 '국민의 알권리'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알권리는 공적 판단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다. '이런 소문이 돈다'식의 보도는 사실일 수 있어도 그 소문을 다시 유통할 공적 필요성이 언론의 책무인지는 복기해볼 문제이다. 소문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후계 구도와 권력 장악 시나리오까지 덧붙이면 추측은 확대 재생산된다. 클릭 수가 알권리의 언어를 빌려 정당화될 때 비용은 결국 공론장의 신뢰가 치르게 되는 것이다.
오보의 이력은 길다. 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는 호외를 내 김일성의 피격 사망을 기정사실화했지만 김일성은 이틀 뒤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2013년 8월 29일 '김정은의 옛 애인 등 10여 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 제하로 보도되었던 현송월 노동당 부부장은 8개월 반 뒤인 2014년 5월 16일 예술인대회에 등장했다. 조용원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국장도 2025년과 2014년 당시 좌천 및 복직이 숙청과 처형설로 일제히 보도되었다. 2016년 2월 10일에는 정부 당국자가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길의 처형 사실을 밝혔지만 그는 석 달 만인 5월 10일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선출 소식으로 ‘사망’에서 ‘부활’했다. 오류의 출처가 언론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2015년 5월 미국 CNN이 보도한 김경희 독살설은 국정원의 사실무근 발표에도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의 생존이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보도 이후 4년 8개월 만인 2020년 1월 25일 설 공연 관람을 통해서였다. 반면 2019년 5월 31일 강제노역 중이라고 보도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고문은 사흘 만에 공연 관람 소식으로 건재가 확인됐다. 오보의 구속은 ‘포심 패스트볼’이었으나 정정보도는 ‘이퍼스볼’처럼 느리고 더뎠다. 조선일보가 현송월 보도를 사과한 것은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3월, 최초 보도 후 6년 6개월이 지나서였다.
권력의 폐쇄성이 만든 정보의 빈자리를 익숙한 서사가 채우는 일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2022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뒤 열흘 남짓 모습을 보이지 않자 가택연금설과 쿠데타설이 돌았지만 그는 9월 27일 베이징의 한 전시회에 나타났다. 2015년 3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열흘가량 공개석상에서 사라지자 건강 이상과 권력 변동설이 퍼졌다. 그는 3월 16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둘러싼 사망·위독설도 면담자의 증언과 사진 앞에서 힘을 잃었다. 다만 분단은 이 취약성을 한층 키운다. 북한에 대한 정보 접근성의 제약 대비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은 크고, 신속한 사실 보도의 역량은 낮지만 알고자 하는 강박은 크다. 여기에 적대와 불안이 결합하면 작은 징후도 체제 위기의 신호로 읽힌다. 불확실한 정보를 곧바로 위협의 서사로 엮어내는 이 집단적 경향은 이른바 '분단포비아'에 다름 아니다.
분단포비아는 개별 오보에 그치지 않는다. 1990년대 초 동유럽권 붕괴와 독일 통일,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됐다. 2010년 무렵에는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 측에 김정일 사후 북한이 수년 내 붕괴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전한 사실이 위키리크스 외교전문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붕괴를 전제로 한 정책은 압박에 치우쳤고, 김영삼 정부는 1994년 지미 카터의 평양 방문 이후 빌 클린턴의 미국 정부와 엇박자를 냈다. 기대가 예측이 되고 예측이 정책의 전제가 될 때 ‘동기화된 추론’으로 형성된 여론이 치러야 할 비용은 커진다. 대중이 정치적 비용을 치러가면서 이 경향성을 수정할 개연성은 낮기에 사실 확인을 위한 사회적 동력은 힘을 잃고 만다.
소문의 생산자와 전달자, 수용자의 경계도 고정돼 있지 않다.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한 주장이든 잘못 들은 전언이든 언론이 전달하고 전문가가 해석을 더하며 이용자가 소셜미디어로까지 확대 재생산하는 사이 하나의 출처가 여러 증거처럼 보이게 된다. '북한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분단사회적 허용은 반복된 정보를 더욱 참으로 느끼게 한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확인된 사실과 추정, 아직 모르는 부분의 경계를 독자가 판단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루머를 다룰 때는 출처와 근거, 반대 증거를 기사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제목에 의혹을 내걸고 본문 끝 무렵 미확인이란 글귀 뒤에 숨는 방식이 보도 윤리상 사실 검증의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다. 둘째, 정보기관과 공적 전달자는 첩보와 추정, 확인된 사실을 명확히 구분해 전해야 한다. 셋째, 오류가 확인되면 즉시 원문을 정정하고, 그 오류를 바탕으로 한 해석까지 바로잡아야 한다. 오보를 내지 않았다는 해명만으로 아니면 말고 식의 근거 없는 의혹을 키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정보의 부족보다 판단에 개입하는 욕구와 기대다. ‘동기화된 추론’은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을 때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분단의 불안 속에서도 일관된 기준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때 언론은 반복된 오보로 잃은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한기호 필자 주요 이력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연세대 통일학 박사 ▷통일부 과장(서기관) ▷(사)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