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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정치 논쟁과 상영 중단 요구,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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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하자 상영 중단 요구가 나왔다. 드라마에 역사적 사건이 등장하자 이번에는 방송을 멈추라는 청원이 제기됐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정치적 논쟁이 창작물의 존폐 문제로 번지고 있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과 SBS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를 둘러싼 논란은 문화 콘텐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 질문을 던진다.
두 작품은 장르도, 소재도 다르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고, '닥터X'는 천재적인 의사의 활약을 중심으로 의료계의 현실을 그리는 드라마다. 그러나 역사와 정치가 맞닿는 순간 작품을 둘러싼 논의는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야기의 완성도나 연출의 설득력을 평가하기도 전에 특정 정치적 메시지가 담겼는지를 따지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지난 9월 23일 개봉 이후 역사 왜곡 논쟁에 휩싸였다. 영화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등 권력기관이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하나의 가설로 제시한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정치권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고인을 모욕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단정하지 않았으며, 실제 사건과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극영화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논쟁이 극장 밖으로 확산하면서 불거졌다. 정치권에서는 불매운동과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일부 출연진을 향한 비난과 영화 관련 행사 취소까지 발생하자 영화계에서도 우려를 표했다. 역사적 사실과 창작적 해석의 경계를 따지는 논쟁이 작품에 참여한 이들을 압박하는 상황으로 옮겨간 셈이다.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닥터X'가 또 다른 논쟁의 중심에 섰다. 지난 24일 방송된 6회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인물이 오랜 세월 고통을 겪어온 사연이 공개됐다. 작품은 역사적 비극이 한 개인의 삶과 건강에 남긴 상처를 의료 드라마의 서사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를 두고 시청자 사이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타났다. 역사적 피해를 환자의 사연으로 조명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의학 드라마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급기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SBS 닥터X 드라마 방영 중단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5·18 관련 내용이 극의 전개와 관계없다고 주장하며 제작 과정에 대한 검증과 방송 중단을 요구했다. 해당 청원은 공개 전 찬성 요건인 100명을 충족해 공개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두 작품을 둘러싼 논쟁의 성격이 같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암살자(들)'은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실제 사건을 다루면서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극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책임에 관한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닥터X'는 국가적으로 인정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피해자의 삶을 그렸다는 이유로 논란이 시작됐다. 하나는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재구성했느냐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사건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아도 되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그럼에도 두 논란은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창작물에 대한 비판이 상영과 방송을 중단시키라는 요구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영화의 설정이 납득되지 않는다면 역사적 기록과 비교해 반박할 수 있다. 드라마의 특정 에피소드가 작위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극본과 연출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비평하는 것과 대중이 작품을 접할 기회 자체를 제한하자는 주장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창작의 자유가 사실 왜곡이나 부정확한 표현에 대한 책임까지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다룬 작품일수록 자료를 다루는 태도와 극적 상상력의 사용 방식은 중요한 평가 대상이 된다. 동시에 관객에게는 작품의 내용을 비판하거나 관람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 다만 그 자유가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창작자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작품의 공개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확대된다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정치적 해석과 정치적 의도를 동일시하는 태도 역시 경계할 대목이다. 누군가 작품에서 특정한 정치적 의미를 읽어냈다고 해서 창작자가 반드시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모든 이야기를 정치적 선전으로 취급한다면 창작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재와 시선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의료 드라마라고 해서 환자의 고통을 개인의 질병으로만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겪은 폭력과 상실, 오랜 후유증 역시 의학적 서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 영화가 이미 알려진 사실만을 재현해야 한다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흐려진다.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선택했느냐보다 그것을 얼마나 책임감 있고 설득력 있게 다뤘느냐다.

'암살자(들)'과 '닥터X'를 둘러싼 논쟁은 창작물을 평가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되묻게 한다. 작품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증도 중요하다. 하지만 불편한 장면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상영 중단을 요구하거나, 역사적 소재를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정치적 의도를 단정하는 방식이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영화와 드라마는 때로 현실을 비추고, 익숙한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논쟁의 끝이 언제나 작품을 없애라는 요구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물에 필요한 것은 정치적 판정이 아니라 충분한 비평과 토론일 것이다.

결국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전에, 어느 편의 이야기인지부터 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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