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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실적 양극화, 완제품 가치 재조명과 상생
IT조선
이들 제품 뒤에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처절한 ‘품질 경영’이 있었다. 1974년 “TV 하나 제대로 못 만들면서 무슨 첨단이냐”는 만류에도 사재를 털어 반도체에 뛰어든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본 종착지는 세계 일류의 ‘완제품’이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던 신경영 선언과 1995년 불량 휴대폰 15만대를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은 브랜드의 최전선인 전자제품의 품질을 세우기 위한 결단이었다.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근본적인 힘은 이처럼 소비자의 일상과 호흡해 온 ‘전자기업’이라는 정체성에 있었다. 부품의 기술력과 완제품의 신뢰가 맞물려 세계인의 손끝에 닿았기에 오늘날의 브랜드 가치가 완성됐다.
하지만 최근의 삼성전자 내부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탄 반도체(DS)부문이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을 돌파하며 축포를 쏘아 올린 반면, 원가 상승 폭탄을 맞은 완제품(DX)부문은 적자로 돌아섰다. 실적 양극화가 극에 달하자 일부 반도체 임직원 사이에선 DX부문을 ‘전사 영업이익을 갉아먹는 애물단지’로 치부하며 매각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폄하 발언까지 나왔다.
수십·수백 배의 이익을 내는 반도체와의 격차만으로 완제품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소비자의 손과 손목, 눈과 귀에 직접 닿아 ‘삼성’이라는 브랜드 경험을 쌓아가게 할 주체는 결국 DX부문이기 때문이다. 노태문 DX부문장(사장)이 적자 압박 속에서도 모바일 시장 점유율을 사수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의 역사를 돌아봐도 세트와 부품은 상호 보완의 사슬로 함께 성장했다. 2013년 스마트폰을 앞세운 IM부문(현 MX사업부)이 한 해 24조96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전사 실적의 70% 가까이를 책임졌다. 당시 그 과실은 반도체 공정 전환과 시설 투자의 핵심 실탄이 됐다. 세트의 과실로 반도체가 컸고, 반도체의 기술력으로 세트가 도약한 공존의 역사였다.
올해 삼성전자 성과급 협상을 계기로 터져 나온 분열의 목소리는 사내외의 우려를 낳았다. 4월 당시 과반노조 지위를 얻은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한 방송에 나와 삼성전자를 ‘종합반도체 기업’이라 규정하며 ‘종합전자기업’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부품과 세트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삼성전자의 근본 경쟁력을 스스로 부정하는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최근 DX부문 동행노조의 과격한 행태 역시 결코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성과급 박탈감을 호소하며 이재용 회장이 탄 차량을 물리력으로 가로막은 행위는 조직의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는 태도는 ‘원삼성(One Samsung)’이라는 공동체의 결속을 해칠 뿐이다.
완제품 사업이 적자를 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의 본령은 이윤 창출에 있으며 매출과 이익 모두를 증명해 내야 한다. 다만 칩플레이션(부품값 상승)이라는 구조적 외풍 속에서 단기 재무제표의 숫자로만 환산할 수 없는 세트 사업의 무형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 줄었다고 해서 브랜드 경험의 최전선을 지켜온 사업의 존재 이유를 지울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선 전통적인 실적주의와 성과주의를 넘어선 보상 체계의 재정립도 필요하다. 반도체와 완제품이 맞이한 환경이 전혀 다른 ‘뉴노멀’ 시대에 기존 잣대만 고수한다면 사내 갈등과 조직의 불협화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사업부 간 박탈감을 해소하고 합당한 보상의 균형점을 찾는 데 고민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무대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출발점은 언제나 고객의 삶과 맞닿아 있던 ‘전자제품’이었다. 단기 실적의 잣대로 완제품의 헌신과 가치를 잊는다면 삼성전자를 지탱해 온 브랜드 가치 역시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영업이익 107조원’의 환호 속에서도 선대회장이 사재를 털어가며 지키고자 했던 완제품의 본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