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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기업 활동 존중하고 불공정 행위만 엄정 대응
한국금융신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며 강하게 비판한 데 이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과거 자신이 했던 ‘재벌이 대한민국을 착취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두 사안의 맥락은 다르다.
스타벅스의 마케팅은 5·18민주화운동을 연상시키는 부적절한 표현으로 비판받았고, 재벌을 둘러싼 논쟁은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과 시장 지배력 문제를 포함한다. 기업의 잘못을 지적하고 재벌의 폐해를 바로잡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잘못된 행위를 비판하는 것과 기업이라는 경제 주체를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같은 일인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언어가 어느 순간 기업과 부의 존재 자체를 죄악시하는 인식으로 번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본주의 경제는 수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간다.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고 소비자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한다. 정부는 제도를 만들고 시장질서를 관리한다. 기업은 자본을 투입하고 위험을 감수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며, 시장에서 이윤을 얻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고용과 투자, 세수와 기술혁신이 나온다. 기업의 이윤 추구는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핵심 동력 가운데 하나다.
물론 이윤을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기업 활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독과점으로 경쟁을 막거나,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거나,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한다면 법과 제도로 바로잡아야 한다. 부당하게 얻은 이익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경제활동으로 부를 축적하는 일과 불공정한 방식으로 부를 얻는 일은 구별해야 한다. 그 차이를 지우고 부자와 기업을 하나의 도덕적 범주에 가두는 순간,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눈은 흐려진다.
문제는 정치권의 언어가 정책의 방향과 사회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동시에 법과 원칙에 따라 시장질서를 관리해야 하는 자리다. 재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 재벌을 본질적으로 착취자로 규정하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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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법 집행은 기업을 무조건 신뢰해서도, 무조건 불신해서도 안 된다. 기업의 규모나 소유 형태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와 증거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기관장의 기업관이 실제 법 집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하지만, 적어도 공정성에 대한 불필요한 의구심을 키우는 언어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치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과 부자를 적으로 만드는 일은 동의어가 아니다. 복지와 기회 확대를 통해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정책은 필요하다.
동시에 기업이 성장하고 개인이 자산을 축적하며 더 많은 사람이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부를 창출할 동력을 약화하면서 분배할 몫만 늘릴 수는 없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집값 상승을 투기와 탐욕만으로 설명하면 공급 부족과 인허가, 금융 여건, 세제, 주거 수요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을 놓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규제해야 하지만, 시장 참여자의 경제적 유인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은 기대와 달리 공급을 위축시키거나 시장의 왜곡을 키울 수도 있다. 부와 이윤을 바라보는 도덕적 판단이 경제의 작동 원리에 대한 분석을 대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업은 정부가 필요할 때만 불러 쓰는 존재가 아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투자를 독려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평소에는 기업 활동을 잠재적인 악으로 취급한다면 정책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
동시에 정부에도 기업이 예측 가능한 규칙 아래 투자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책임이 있다. 기업의 잘못에는 엄정하게 대응하되, 정당한 기업 활동과 이윤 추구는 존중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기업을 비판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손쉬운 선택일 수는 있다. 그러나 기업을 압박하는 것과 경제를 개선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기업을 향한 거친 수사가 아니라 불공정 행위를 정확히 가려내는 법과 제도, 그리고 투자와 혁신을 촉진하는 예측 가능한 정책이다.
부가 악이라면 빈(貧)은 선(善)인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땀 흘려 일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정당한 노력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인가. 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규칙 아래 축적됐는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중요하다.
기업을 무조건 옹호할 이유도, 무조건 적대할 이유도 없다. 경제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기업이라는 톱니를 빼거나 망가뜨린 뒤에도 나머지가 제대로 돌아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기업의 잘못을 바로잡는 사회와 기업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회. 그 둘은 분명 다르다.
정경환 한국금융신문 기자 ho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