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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백남준, 한글과 비디오아트 소통 다룬 전시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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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한글과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시대를 대표하는 미디어를 다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출발점을 같이하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비디오아트의 지평을 연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 500여 년의 시차를 둔 두 창조적 혁신가가 만났다. 세종중앙공원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6 한글문화특별기획전 '세종과 남준'이 그 무대. 전시는 두 인물을 소통과 창조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조명하며 세종 시대의 문헌과 유물, 백남준의 작품 등 9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박미화 예술감독은 두 인물이 각자의 시대에서 새로운 소통 방식을 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세종대왕은 한글이라는 새 문자를 만들어 지식과 정보의 문턱을 낮췄고,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언어를 개척해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보냈다. 미디어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행동, 사회 구조를 바꾼다고 본 사상가 마셜 매클루언(1911~1980)의 관점에서 보면, 두 사람 모두 새로운 미디어로 시대의 변화를 이끈 혁신가다.

박 감독은 본지와 서면 인터뷰에서 "한글이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정보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자 시대를 열었다면, 비디오아트는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전자 시대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세종대왕과 백남준의 소통과 창조는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소통, 한글과 비디오아트', '협업, 집현전과 플럭서스', '경계를 넘어 확장하는 예술' 등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자 한글날 100주년인 올해, 한글과 비디오아트가 기술과 문화를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해 왔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다. 

세종도 남준도 선구적 미디어 아티스트…사상·실천 맞닿아
박 감독은 1997년부터 2025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하며 서울관 전시과장, 청주관 과장 등을 지낸 전시 기획 전문가다. '아이 웨이웨이'전과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등을 기획한 바 있다. 그는 올해 8월 '2027 세종한글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공식 위촉됐다. 이번 전시는 내년 첫선을 보일 세종한글비엔날레의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시대도 활동 영역도 다른 두 인물의 접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일이었다. "두 인물의 교차 지점을 예술적 관점에서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세종대왕은 아무래도 문헌과 아카이브 중심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관람객에게 시각적인 요소를 보여주기 위해 현대작가 류재하의 영상과 홍순명의 유화 작품을 함께 연출했죠." 
두 인물의 연결고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백남준의 '세종대왕'(1998)이다. 백남준은 세종대왕을 선구적 미디어 아티스트로 봤다. "백남준에게 세종대왕은 지식과 정보를 전자기기처럼 정밀하고 아름답게 재조합해 대중에게 나눠 준 최초의 미디어 아티스트였죠. '세종대왕' 제작을 통해 이를 시각적으로 찬사했어요."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공간은 두 인물의 사상적 토대를 엿볼 수 있는 '독서의 세계'다. 청년 세종이 건강을 해칠 정도로 탐독했다고 전해지는 '구소수간'을 비롯해 '초사', '대학연의', '자치통감', '근사록', '양휘산법' 등 고서가 소개된다.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 영감을 준 '미디어의 이해', '즐거운 학문', '형이상학 강의', '영구평화론', '모래의 책', '사이버네틱스' 등도 함께 전시됐다.

박 감독은 "두 인물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보며, 그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과 그 사상적 배경과 토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라며 독서 기록을 나란히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했다.

사상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백성들에게 새로운 문자 시대를 열어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새 문자의 실용성을 실험한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백남준의 공간에는 테크놀로지를 예술로 승화한 '세종대왕'(1998), '태내기 자서전' 등이 놓였다.
협업 정신도 두 사람을 잇는 축이다.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협력해 학문과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다면, 백남준은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fluxus)에 참여하며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전시는 두 인물의 주변에서 새 시대를 함께 이끈 이들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세종 시대의 측우기와 혼천의, 간의 등 과학기구를 배경으로 당시 주변 인물들의 뒷모습을 상상해 그린 홍순명의 유채 연작 '주변인'이 전시에 시각적 재미를 더한다. 맞은편에는 백남준이 플럭서스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인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전시를 담은 사진 판화 연작 '1963 시리즈' 20점과 예술적 동반자 요셉 보이스를 추모한 '보이스 복스'가 소개된다.

박 감독은 "세종대왕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백남준 작품 세계의 핵심에도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백남준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상과 이론을 실천한 인물로, 세계를 매우 재미있고 평화로운 시각으로 바라봤다"고 말했다.  
세종한글비엔날레 중심엔 천지인
이번 전시는 내년 개최되는 제1회 세종한글비엔날레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비엔날레의 구체적인 윤곽은 연말께 드러날 예정이다. 박 감독은 한글 창제의 철학적 바탕인 '천지인'을 중심으로 주제를 구상하고 있다. 한글의 조형성과 철학을 현대미술과 연결하되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미술 전 분야를 고려하고 있어요. 다만 첫 회인 만큼 한글의 창제 원리와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특별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전체 전시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에요." 

박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차별성이다. 수많은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지만 도자, 수묵, 공예 등 특정 미술 분야를 특화한 경우가 많다. 반면 한글은 언어다. 이 때문에 기존 미술 비엔날레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언어 자체를 특화한 비엔날레는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어렵죠. 한글의 소통적 기능이 아닌 내적·외적·조형적 의미를 끌어내 현대미술과 접목해야 해요."
해외 작가들의 참여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서예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등 기존의 문자 예술에 머무르지 않고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미술 전 분야로 한글의 가능성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K-컬처의 세계적 확산도 비엔날레의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한글에 대한 관심 또한 매우 높아지고 있어요. 한글의 조형성과 현대미술의 연결 고리를 잘 풀어낸다면 세종한글비엔날레가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전시는 세종시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10월 9일부터 11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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