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읽음
[흔들리는 내부통제_한미약품]③내부 문건엔 ‘부회장 보고’ 명기…임주현, 앱토즈 600억 의사결정 관여했나
알파경제
0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했다. 이에 「알파경제」는 전현직 핵심 관계자들의 연속 증언을 통해 무너진 지배구조의 민낯과 법적 리스크의 실체를 추적한다. [편집자주]
[알파경제 = 김영택 기자, 이형진 선임기자, 이준현 기자] 한미약품이 캐나다 바이오 벤처 ‘앱토즈 바이오사이언스’에 600억 원대 자금을 빌려준 끝에 빚더미 회사를 떠안은 과정을 두고, 당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린 핵심 결재 라인이 어디였는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정기보고서상 이사회 결의 기록은 전혀 없었지만 이를 최고위층에 직접 보고한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이 확인돼 임주현 부회장의 역할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 ‘부회장 보고’ 문건 실체…김재교 입사 전, 임주현 단독 지휘 의혹

6일 제약·바이오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알파경제」가 확보한 한미그룹 내부 문건에는 앱토즈 자금 지원 및 거래 추진 실무와 관련 ‘부회장 보고 자료’라는 문구가 뚜렷이 적혀 있다.

주목할 대목은 해당 문건을 작성할 당시 그룹 임원진 구성이다. 현재 재직 중인 김재교 부회장은 당시 그룹에 합류하기 전이었다.

즉, 그 무렵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을 통틀어 부회장 직함을 단 인물은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이 유일했다. 이사회 의결 내역에 대여금 승인 기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 집행을 검토하고 최종 방향을 정한 최고위층이 임 부회장으로 좁혀지는 까닭이다.

한미그룹 내부 소식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2021년 앱토즈와 기술수출 계약을 맺을 당시부터 임 부회장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안다”며 “이후 상대 회사의 재정이 나빠졌는데도 신약 권리를 무상으로 돌려받지 않고 거액을 빌려준 뒤 지분 인수까지 나선 배경에도 최고위층의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해당 거래를 2020년 선대 회장 타계 이후 본격화한 경영권 안정화 및 연구개발(R&D) 성과 입증 국면과 맞물린 행보로 해석한다. 애초 앱토즈는 연 매출이 전혀 없던 프로젝트성 법인이었다. 파트너사의 재정 건전성보다 성과 홍보를 앞세워 무리하게 기술수출을 맺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파트너사의 개발 역량 부족으로 계약이 깨지면 대외 신뢰도가 타격을 입고 경영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고자 주주 자금 수백억 원의 손실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을 고집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 “후임이 결정” 해명 무색…미국 SEC 공시엔 ‘거부 불가’ 족쇄 계약

반면 한미사이언스 측은 서면 답변서를 통해 “해당 문건은 이사 중 1명에게만 제공한 기밀 자료로, 단편적인 보고 문건 하나만 내세워 임주현 부회장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대여금 집행과 인수 추진은 실무진과 경영진이 격의 없이 토론해 내린 ‘집단적 결정’이었으며, 최종 추진과 승인은 각 사 대표이사의 권한과 책임 아래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박재현 전 한미약품 대표는 알파경제에 “본인은 자금 대여 결정에만 관여했을 뿐, 앱토즈 최종 인수 결정은 후임 경영진의 몫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알파경제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된 앱토즈 인수 관련 공식 문서(DEFM14A 및 부속 정리계획 계약서)를 정밀 분석한 결과, 이 같은 해명의 신빙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조항이 확인됐다.

통상적인 인수·합병(M&A) 계약에는 상대 회사 이사회가 안건을 부결할 경우 계약을 무효로 하거나 책임을 면해주는 ‘부결 시 면책 조항’이 들어간다. 하지만 한미 측이 맺은 계약서의 해지 조항 구조를 보면 한미약품 이사회의 단순 변심이나 거부를 이유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깰 수 있는 임의 해지권 자체가 아예 빠져 있었다.

애초 계약을 맺을 당시부터 후임 경영진이나 한미약품 이사회가 인수를 거부하거나 뒤집을 수 없도록 이른바 외통수 족쇄를 채운 셈이다.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계약 구조를 짜놓고도 “최종 결정은 후임이 했다”거나 “대표이사 개인의 독자적 판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100% 역외 자회사 앞세운 ‘이사회 패싱’…커지는 배임 리스크

SEC 공시 계약서에 나타난 법적 외관 역시 의구심을 키운다. 공시 문서의 정의 및 서명란을 보면, 인수에 나선 주체는 모회사인 한미약품과 한미약품이 해외에 세운 100% 자회사 ‘HS노스아메리카’로 이뤄져 있다.

계약서 본문의 진술 및 보장 조항에는 ‘인수인(HS노스아메리카 및 한미약품)의 내부 승인 절차를 마쳤다’는 전형적인 상용 문구가 들어간 채 서명이 이뤄졌다.

하지만 국내 금융감독원(DART) 공시를 보면, 올해 4월에야 비로소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인수 안건을 승인했을 뿐, 그 이전에 600억 원대 자금을 여러 차례 대여할 당시에는 이사회에 안건을 상정해 의결한 흔적이 전혀 없다. 실무상 모회사 이사회의 통제를 피하고자 역외 자회사의 단독 이사회 결의나 특정 경영진의 내부 위임 전결만으로 자금 집행과 계약 서명을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짙다는 분석이다.

상법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의사결정 구조가 지배구조(거버넌스) 측면에서 심각한 하자를 품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현권 법률사무소 니케 변호사는 “상법과 회사 내부 규정상 중요 자산 취득이나 자회사 채무보증, 대규모 자금 지원은 이사회 결의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핵심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식 이사회 승인을 건너뛴 채 거부권조차 없는 본계약을 독단적으로 맺었다면, 서명한 경영진은 물론 이를 실질적으로 지시하고 이끈 최고위층 역시 선관주의의무 위반과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나아가 업무상 배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미사이언스는 “앱토즈가 파산하지 않는 한 신약 권리를 무상으로 돌려받도록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었고 글로벌 평가기관에서 약물 가치를 약 2억 달러로 추산하는 등 투스페티닙의 가치를 보전하고 북미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합리적 판단이었다”며 절차상 흠결이 없음을 거듭 내세우고 있다.

아울러 본지가 입수한 ‘부회장 보고 자료’를 두고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고지한 사내 기밀 문건이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경로를 파악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 공시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계약 조항이 확인되고, 대여금 집행 당시 이사회를 건너뛴 정황이 뚜렷이 드러나면서 수백억 원대 부실 인수를 최종 지휘한 결재 라인을 둘러싼 책임 공방은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