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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지스타 위기? 하나만 알고 둘 모르는 말씀
한국금융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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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김재훈 기자] “올해 지스타에 진짜 볼 게 있을까요?”

“주요 대형사들은 죄다 빠졌다던데, 명색이 국내 최대 게임쇼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는 11월 개막을 앞둔 국내 최대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G-STAR) 2026’을 바라보는 산업 현장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무겁다. 과거 지스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흥행 보증수표였던 넥슨, 엔씨,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등 주요 대형 게임사들이 연이어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내 빅4급 대형사 중에서는 크래프톤만이 유일하게 10년 연속 참전 도장을 찍으며 의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름을 부은 게 메인 스폰서 선정 소식이었다. 20년을 이어온 지스타 역사상 처음으로 전통 게임사가 아닌 AI(인공지능)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서비스명 ‘크랙’)가 메인 스폰서 자리를 꿰찬 것이다.

신작 라인업으로 채워져야 할 전시장 상단에 AI 채팅 및 내러티브 창작 플랫폼 이름이 걸리자 업계 일각에서는 “게임 없는 게임 축제”, “지스타 위상이 바닥을 쳤다”는 자조와 우려 섞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단순히 웅장한 대형 부스에서 펼쳐지는 대작 PC·콘솔 신작 시연과, 그 시연 기회를 잡기 위해 새벽부터 수백 미터 줄을 서는 게이머들 인산인해만을 ‘성공한 게임쇼’의 척도로 삼는다면 분명 올해 지스타는 위기처럼 보인다. 대형사들 신작 공백은 아쉽고, 비어버린 벡스코 제1전시장의 거대한 공간이 무척 서늘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자동차, 전자, 배터리, IT, 콘텐츠 등 산업 전반의 다양한 현장을 누비며 목도해온 거대한 흐름을 떠올리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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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글로벌 산업계의 가장 강력하고도 불가피한 화두는 단연 ‘산업 간 경계의 파괴(Big Blur)’다. 예를 들어 전자 산업을 취재하다 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가전·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초고주사율 게이밍 모니터와 프리미엄 게이밍 기어, 칩셋 기반 온디바이스 AI 기술 등을 미래 핵심 먹거리로 삼고 있다. 디스플레이 화질과 반도체 연산 능력은 이제 게임이라는 고스펙 콘텐츠를 매개로 극대화되고 있다.

자동차와 배터리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바퀴 달린 고성능 스마트폰’이자 거실을 대체하는 제2의 라이프스타일·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시스템에 게임 생태계를 앞다투어 이식하고, 고성능 배터리와 전장 부품을 탑재해 이동 중 게임 플레이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자율주행과 더불어 글로벌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산업 간 융합 현상은 글로벌 거대 게임쇼에서 이미 증명됐다. 지난 8월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게임쇼 ‘게임스컴 2026’ 현장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쾰른 한복판에는 내로라하는 글로벌 게임 개발사들뿐만 아니라 완성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와 글로벌 커머스 기업 이베이가 수백 평 규모 대형 부스를 꾸리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벤츠는 실제 최신 차량 내부 인포테인먼트에 구현된 고성능 레이싱 게임과 몰입형 모빌리티 기술을 선보이며 게이머들을 자사 브랜드의 잠재 고객으로 흡수했다. 이베이는 세계 게이머들의 강력한 팬덤 문화인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과 컬렉터블 수집 문화를 연계해 현장 라이브 커머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게이머가 반응하고 몰입하는 문화적 접점이 존재한다면 자동차든 커머스든 이종 산업도 게임쇼의 주연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장면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올해 지스타 2026을 다시 전망해 보자. 단순히 ‘대형 게임사 공백’이라는 프레임 뒤에 숨겨진 새로운 시도가 눈에 들어온다.

올해 메인 스폰서로 나선 뤼튼의 ‘크랙’은 단순한 AI 채팅 앱이 아니다. 게이머와 서브컬처 팬덤이 AI를 활용해 직접 캐릭터의 내러티브를 생산하고 2차 창작 스토리를 구축하는 플랫폼이다. 게이머를 단순히 ‘주어진 게임을 소비만 하는 정적인 수동자’에서 ‘스토리를 자발적으로 생산하고 확장하는 능동적 창작자’로 탈바꿈시키는 IT·콘텐츠 결합 시도다.

참가 기업 면면도 다채롭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 인텔과 디스코드, 디볼버 디지털, 스팀덱, 유니티뿐만 아니라 국내 모빌리티 상징 현대자동차도 ‘2026 현대 N 버츄얼컵’ 등을 들고 지스타 현장 참전을 확정했다.

여기에 호요버스, 넷이즈, 빌리빌리, 센추리게임즈 등 서브컬처와 글로벌 라이브 서비스를 무기로 삼은 해외 대형 게임사들이 비어 있는 전시장 전면을 채웠다.

그동안 지스타가 안고 있던 치명적 약점은 전시회 흥행이 특정 국내 대형 게임사들 신작 출시 주기나 당해 실적, 경영 상황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다는 점이다. 게임사가 신작을 내놓지 못하면 전시회 전체가 부진하고, 대형사가 불참하면 행사 전체가 위기론에 휩싸이는 취약한 구조였다. 신작 시연이라는 1차원적 목적만을 위해 운영되던 전시 구조는 진정한 의미의 ‘산업 축제’라 부르기 어려웠다.

국내 대형 게임사들 불참은 분명 당장의 아쉬움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아쉬움이 남긴 거대한 공간에서 게임은 자동차와 만나고, 전자·반도체와 융합하고, AI 콘텐츠와 결합해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체질 개선 기회를 맞았다.

중요한 것은 이번 시도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스타의 새로운 기초 체력으로 안착하는 일이다. 모빌리티, 전자, 빅테크, AI 등 이종 산업과의 융합 생태계가 지스타라는 무대 위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린다면 이는 향후 대한민국 게임 산업 전체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다.

개발 주기와 경영적 타이밍으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대형 게임사들은 결국 언젠가 준비된 신작 라인업을 들고 다시 지스타 무대로 복귀할 것이다. 그때 지스타가 과거처럼 ‘단순한 국내 신작 발표회’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흥행의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계기로 탄생한 ‘이종 산업 간의 융합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거점이 굳건히 자리 잡은 상태에서 대형사들의 대작 신작이 더해진다면, 그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신작 시연을 보러 온 게이머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로 게임을 체험하고 AI 플랫폼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작하는 상황을 예상해 보라. 최첨단 전자 기기와 글로벌 빅테크 기술을 현장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다.

이는 기존 지스타가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경쟁력이자, 독일 게임스컴이나 미국 CES 못지않은 ‘글로벌 종합 팝컬처·테크 쇼’로 도약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다. 전자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게임을 이야기하고,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게이머의 몰입감에 주목하며, AI 스타트업이 게임쇼의 메인 스폰서를 맡아 팬덤의 내러티브를 논한다.

비어버린 대형 부스 크기와 대작 라인업 부재를 탓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엔, 이번 지스타가 우리에게 던지는 산업적 메시지는 너무나 묵직하다.

위기라는 경고음 한복판에서 치러질 올해 지스타 2026이 훗날 대형사들의 복귀 시 한층 더 거대하고 막강한 시너지를 터뜨릴 ‘반전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재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rlqm9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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