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읽음
AI 지식노동 대체, 인간 지적 역량 공동화 위기
IT조선
AI가 이 과정을 맡기 시작하면 생산성과 인간의 역량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결과물은 더 좋아져도, 그 결과를 이해하고 검증하는 사람은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세 번의 파도는 인간이 지식을 축적하는 경로도 흔든다.
첫 번째 파도는 경력 사다리의 입구를 좁힌다
한국은행이 2026년 8월 발표한 ‘청년고용 위축, AI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에 따르면, 보고서가 집계한 4년간 청년층 일자리는 28.5만 개 감소했다. 이 가운데 26.8만 개, 기여율 94%가 AI 고노출 업종에 집중됐다. 정보서비스업의 청년고용은 31.4%, 컴퓨터 프로그래밍업은 16.6% 줄었다. 스탠퍼드 연구진의 2025년 11월 보고서도 기업별 충격을 통제한 뒤 AI 고노출 직종의 22~25세 고용이 저노출 비교 집단보다 약 16% 상대적으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감소분 전체를 단순히 AI가 없앤 일자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은 과잉채용의 정상화와 경력직 선호 등도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지적했는데, 청년의 업무가 자동화되는 동안 숙련자를 길러낼 경로가 약해질 위험이 분명해 존재한다. 자료 조사와 문서 초안 작성은 직장 상사 또는 선배의 판단과 조직의 언어를 배우는 훈련이었다. 이를 AI가 맡고 기업이 신입 채용까지 줄인다면, 경력자를 원하면서 경력을 쌓을 자리는 없애버리는 모순에 빠진다.
두 번째 파도는 경험의 프리미엄을 흔든다
중간관리자와 중고숙련자를 지켜온 것은 암묵지였다. 어떤 고객 반응이 위험 신호인지, 언제 규정의 예외를 검토해야 하는지처럼 경험에 밴 다양한 판단이다. 이 지식의 일부는 대화와 업무 기록에 흔적을 남긴다. AI가 기록과 결과를 연결해 숙련자의 대응 방식을 재현하면,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의 희소성도 달라질 수 있다.
브린욜프슨, 리, 레이먼드가 발표한 고객지원 직원 5172명을 분석한 ‘일터의 생성형 AI’ 연구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AI 지원은 시간당 문제 해결 건수를 평균 15% 높였고, 저경력·저숙련 직원의 개선 폭은 약 30%였다. AI를 사용한 근속 2개월 직원은 사용하지 않은 6개월 이상 직원과 비슷한 성과를 냈다. 특정 기업의 고객지원 업무에서 나온 결과지만, 경험을 통해 형성되던 성과 격차가 빠르게 좁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경력자 역시 연차만으로 자신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세 번째 파도와 화이트칼라의 종말
세 번째 파도가 향하는 극단에는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화이트칼라의 종말’이 있다. 신입의 반복 업무와 숙련자의 경험을 넘어, 고학력 전문직과 연구자가 수행해온 분석과 지식 생산까지 AI가 맡는 상황이다. 학위를 취득하고 전문지식을 축적하면 노동시장에서 유리한 지위를 얻는다는 오랜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은행의 2023년 ‘AI와 노동시장 변화’도 국내 취업자 약 341만 명, 전체의 12%를 AI에 의한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집단으로 추정하며 고소득·고학력 근로자의 높은 노출도를 지적했다. 이는 실제 실직자 수가 아닌 잠재적 노출 규모다.
연구도 이 변화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사카나 AI는 2025년 AI가 가설 수립부터 실험과 논문 작성까지 수행한 연구 세 편을 ICLR 워크숍 심사에 제출했다. 이 중 한 편은 평균 채택 기준을 넘는 평가를 받았다. 본 학회 논문 채택과는 다르며, 사전 합의에 따라 출판 전 철회됐다. AI가 지식의 정리를 넘어 생산 과정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연구 결과가 늘어나는 만큼 인간 연구자도 더 필요해지느냐는 문제다. AI로 연구 비용이 낮아져 새로운 과제가 늘어날 수도 있고, 반대로 기업과 연구기관이 같은 결과를 더 적은 인력으로 얻는 데 집중하면, 연구 보조와 분석 업무에서 시작해 연구자의 수요와 양성 투자까지 줄일 수 있다. 화이트칼라의 종말은 아직 확정된 미래는 아니지만 인간의 지식노동을 대규모로 필요로 했던 고용 구조가 약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분명하기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지식노동의 대체가 만드는 역량의 악순환
더 큰 위험은 그다음에 있다. 지식노동은 지식을 사용하면서 다시 사람을 훈련시키는 과정이다. 논문을 읽고, 잘못된 가설을 버리고, 분석의 오류를 찾아내는 수고 속에서 전문성이 자란다. AI가 결과를 대신 제공하고 조직이 인간에게 이런 과정을 맡기지 않으면, 사람은 배우고 판단할 기회를 잃는다. 그 결과 인간이 AI보다 못한다는 이유로 더 많은 일을 넘기게 되고, 줄어든 경험은 다시 대체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악순환은 개인의 습관과 조직의 투자에서 함께 작동할 수 있다. 학생은 긴 수련의 보상을 의심하고, 기업은 숙련자를 양성하는 비용보다 AI 사용료를 선택하며, 대학과 연구기관은 줄어든 수요에 맞춰 교육 기회를 축소할 수 있다. 숙련자가 줄면 다음 세대를 가르칠 사람도 줄어든다. 사회가 생산하는 지식의 양은 늘면서, 그 지식을 스스로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는 인간의 기반은 얇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지식노동의 종말에서 우려해야 할 지적 역량의 공동화다.
그 가능성을 경고하는 실험도 있다. 앤트로픽이 2026년 공개한 개발자 52명의 무작위 실험에서 새로운 프로그래밍 라이브러리를 배운 뒤 치른 평가 점수는 AI 사용 집단이 평균 50%, 직접 코딩한 집단이 67%였다. 특히 오류를 찾아 원인을 설명하는 문제에서 차이가 컸다. 물론, 제한된 과제의 학습 성과를 비교한 결과로, 인간의 전반적인 지능 저하를 입증하지는 않지만 AI로 일을 마치는 것과 그 일을 수행할 능력을 얻는 것은 별개이고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의 위협은 AI 자체의 성능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AI를 이해하고 반박할 인간의 능력이 약해지면, 같은 수준의 오류에도 사회는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연구와 교육의 목표까지 소수의 모델과 그 운영 주체에게 의존한다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채택할지 결정하는 권한도 집중될 수 있다. 이 악순환 전체가 이미 실증됐다는 뜻은 아니지만, 지식노동의 종말이 인간이 AI로 점점더 대체되면서 가져오는 인간의 종말까지 이어질수 있다는 주장은 이제 그냥 과하다고만 볼 수 없다.
경력자는 암묵지를 계속 증강해야 한다
따라서 중간관리자와 중고숙련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AI와 결합해 갱신하는 일이다. 앞서 고객지원 연구에서도 고숙련자의 생산성 개선은 작았고 일부 응답 품질은 오히려 낮아졌다. AI를 사용하기만 하면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판단이 통하는 범위를 넓히고 실패의 이유를 새롭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업을 관리해온 팀장이라면 과거 납기 지연 사례를 AI와 비교해 자신이 위험 신호로 여긴 조건이 실제 결과와 연결됐는지 검토할 수 있다. 다른 업종의 대응 방식을 찾아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현장에 적용한 뒤 결과를 확인한다. 그 결과로 기존 판단을 수정할 때 암묵지가 증강된다. AI가 만든 가상 시나리오를 실제 경험처럼 취급해서는 안 되고, 현장의 피드백을 통해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관리자는 이 과정을 팀의 학습으로 확장해야 한다. 어떤 근거로 대안을 선택했는지 설명하고, AI가 놓친 예외를 구성원과 검토하며, 실패 사례를 다음 프로젝트의 판단 기준으로 남기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팀의 판단력을 높이는 관리자는 자신의 필요성도 높일 수 있다. 암묵지의 증강에는 개인의 경쟁력과 조직의 숙련을 함께 유지하는 의미가 있다. 물론, 현재 AI의 발전속도를 보면, 이 조차도 따라잡힐지도 모른다.
신입에게 필요한 폴리매스 역량
신입의 암묵지 정복에도 능동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AI가 제공한 답을 이해하려면 질문의 맥락을 알아야 하고, 오류를 검증하려면 기초지식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폴리매스의 태도가 중요해진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깊이를 유지하면서 다른 분야의 지식과 방법을 연결하는 마음가짐이다. 문과라서 데이터를 피하고 이과라서 사람과 제도를 건너뛰면 AI가 제시한 해법의 일부만 이해하게 된다.
P&G 직원 776명을 대상으로 한 2025년 ‘사이버네틱 팀 동료’연구에서는 AI를 사용한 개인은 AI 없이 일한 2인 팀에 견줄 만한 성과를 냈다. AI를 쓰지 않을 때는 사업 담당자가 상업적 해법을, 연구개발 담당자가 기술적 해법을 주로 제시했지만, AI를 활용하자 두 관점을 더 균형 있게 결합했다. 분야를 넘는 협업의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 신입이라면 고객의 불만을 해석하는 능력과 실험 결과를 읽는 통계 지식, 서비스 구현 조건을 함께 익혀야 한다. AI가 낸 답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설을 세우고 실제 결과와 비교해야 한다. 앤트로픽의 개발자 실험에서도 설명과 개념을 묻는 방식으로 AI를 사용한 참가자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학습 성과를 보였다.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보다 그 도움을 받은 뒤 혼자 무엇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인간이 배우는 경로를 지켜야 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은 AI 도입으로 줄어든 업무를 대신할 학습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도 당장의 인력 수요만으로 인간의 연구 역량에 대한 투자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AI가 만든 분석을 재현하고 오류를 검증하는 사람을 계속 길러야 한다. 생산성의 이익 중 일부를 교육과 연구 경험에 다시 투자하는 선택이 필요하다.
평가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완성된 보고서와 코드뿐 아니라, 사람이 결론의 근거를 설명하고 조건이 바뀌면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경력자의 암묵지 증강과 신입의 폴리매스 역량은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 AI가 지식을 생산하는 속도만큼 인간이 그 지식을 실제로 이해하고 통제할 능력도 키워야 한다. 지식노동의 종말이 인간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종말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승현 라이너 AI 에반젤리스트는 스타트업 창업가 출신의 AI 전문가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공공 AI의 초석을 닦았으며, 현재는 한양대 에리카 글로벌문화통상학부 겸임교수,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겸임교수, 법무법인 린의 공공AX 고문을 겸하며 기술과 정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론에 머물지 않는 현장형 전략가로서 국가 전반의 AI 네이티브 전환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