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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딛고 평온 찾은 강동섭씨,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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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기획연재 [완벽한 날들] 여정편은 암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을 진단 이전과 발병·치료 과정,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에 따라 기록한다. 서울대학교 심리학 연구진이 정리한 ‘한국어 감정단어’를 토대로, 인터뷰이가 자신의 경험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직접 선택한 감정단어를 따라 이들이 암을 마주하고 치료를 견디며 겪은 내면의 변화를 살펴본다. 이와 함께 달라진 몸과 일상, 가족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 직장과 사회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편견과 차별, 경제적 부담과 제도적 공백 등 암 이후 삶의 다양한 현실을 담아낸다. 질병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 속에서 무엇을 잃고 발견했으며 어떻게 자기 자신을 다시 이해해 왔는지 들여다본다.
짜증나다|암이라는 충격보다 먼저 든 감정

“암입니다. 수술해야 돼요.” 의사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짜증이 났다. 강동섭(53)씨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충격보다 앞뒤 설명없는 의사에 무심한 통보에 먼저 감정이 팍 상했다. ‘아무리 수많은 환자를 접해왔다고 한들... 뭘 이따위로 통보하지?’

암 환자가 된 순간은 생각보다 건조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온 건강검진을 받다가 위내시경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조금 더 정밀하게 검사해보자는 의사의 말에 그는 조직검사까지 마쳤다. 다음 날 병원에서 다급하게 연락이 와 찾아갔던 진료실에서 의사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암’이라고 말했다.

잠시 뒤 화가 가라앉자 그제야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이 실감이 났다. 그러고는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왜 벌써.”

강씨에게 암은 낯선 병이 아니었다. 청춘을 즐겨야 할 20대에 강씨는 췌장암에 걸린 어머니를 1년간 돌봤다. 아버지와 번갈아 가며 집과 병원, 학교를 오가는 생활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수술 뒤 병이 다시 악화됐고 몸이 점점 말라갔다. 그렇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강씨에게 암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당황하다|한창때에 멈춰 세운 암

“언젠가는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마흔하나에. 그때 저는 진짜 한창때였거든요.”

‘언젠가 나도 암에 걸리려나.’ 가족력이 있으니 언젠가 자신에게도 올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마흔하나는 아니었다.

암을 경험하기 전 강씨는 ‘한창때’였다. 국내 3대 홈쇼핑에서 쇼호스트로 일하며 돈도 가장 많이 벌었다. 잘 나갈수록 방송은 많아졌다.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홈쇼핑에서 흔히 말하는 제일 비싼 시간대 방송에 들어가 최고 매출을 세우기도 했다.

무엇보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주변 방송인들이 흔히 즐기는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다. 운동은 ‘미친 듯이’ 했다. 한때 국내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익스트림한 등반을 즐겼다. 알프스의 험한 산도 관악산을 다니듯 오르내렸다.

몸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별다른 증상도 없었기에 건강검진도 건너뛰었다. 피곤함은 있었지만 불규칙한 방송 생활을 하는 직업인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주변 동료의 만류에 못 이기는 척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됐다.

덤덤하다|암, 행복 전도사의 스펙으로

강씨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단순히 막연한 꿈도 아니었다. 방송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행복학’을 공부할 생각이었다. 실제 대학 몇 곳을 추리고 교수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낼 집까지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런 결심은 어린 시절부터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온 탓일지도 모른다. 강씨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했다. 당시 신학교에 다니던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신앙까지 흔드는 사건이었다. 결국 가려던 길을 접고 집을 나와 홀로 삶을 꾸렸다. 방송인이 되기 전에는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신용불량 상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쇼호스트로 인정받게 되면서 삶의 여유도 생겼다. 산악 원정을 떠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하고 싶은 일은 미루지 않고 해봤다. 이런 모습에 한 직장 선배는 강씨에게 “너는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해보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아 지금 죽는다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암이 찾아왔다.

“암 정도 걸려봤으면 행복 전도사의 스펙으로 괜찮겠는데, 하다 하다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거예요.”

일부러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강씨에게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책에서 배운 지식을 전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다. 삶의 바닥도 겪어보고, 상실도 경험하고, 직접 부딪쳐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잘 이겨낸 뒤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라는 원망보다 ‘이걸 이기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점차 커졌다. 암이 자신의 삶을 끝내는 사건이 아니라, 아직 이어지고 있는 삶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감명하다|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

암 진단을 듣고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소셜미디어에도 암으로 며칠 뒤 수술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방송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 산을 타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몰렸다. 강씨가 입원해 있던 병동의 휴게실이 전부 그를 찾아온 문병객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담당 간호사는 병원 개원 이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환자는 처음 본다며 강씨에게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묻기도 했다.

“그때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내가 잘 살아왔나 보다 싶었죠.”

수술비와 병원비는 보험으로 어찌어찌 해결했다. 문제는 퇴원 후였다. 방송 출연 횟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쇼호스트의 특성상, 일을 쉬는 동안 수입도 함께 멈췄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이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이 주고 간 봉투였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고 감사한 마음에 받았지만 모아놓고 보니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일을 하지 못해 수입이 없던 몇 달 동안 그 돈이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아픈 뒤에야 그동안 맺어온 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는지 실감했다. 강씨는 혼자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던 삶이 사실은 수많은 이들의 다정함과 지지로 지탱돼 왔음을 깨달았다.
오기부리다|수술 반년 만에 오른 알프스

수술은 끝났지만 몸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위의 약 85%를 절제했다. 평생 68㎏ 안팎을 유지했던 몸무게는 수술 뒤 10㎏ 가까이 빠졌다. 많이 먹을 수도 없었다. 한동안은 적은 양의 음식을 하루 대여섯 번 나눠 먹어야 했다.

예고 없이 탈진이 찾아왔다. 멀쩡하게 움직이다가도 한순간에 몸에서 힘이 쑥 빠졌다. 방금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갑자기 주저앉고 싶을 만큼 기력이 가라앉았다. 뭔가를 먹고 나서야 겨우 힘이 돌아왔다.

방송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큰일이었다. 온에어(ON-AIR) 사인이 켜지기 전 단 것을 입에 쑤셔 넣기도 했다. 아프기 전 후배들이 링겔을 맞고 방송하러 왔다고 했을 때도 체력이 약하다며 타박하던 그였다. 평생 자부했던 체력이 이젠 강씨 스스로도 믿을 수 없게 됐다.

그런 그에게 오래전부터 예정된 약속이 있었다. 다음 해 여름 알프스 원정이었다. 함께 가기로 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포기할 것이라고,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몸이니 푹 쉬라’고 했다. 알프스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가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험한 산이다.

강씨는 예정대로 스위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알프스에 가기 전 재활을 하며 체력도 끌어올렸다. 주변에서는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러나 암 때문에 계획을 접는 순간 이전의 자신까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던 사람이 보란 듯이 다시 산으로 향하는 것. 그 자체가 강씨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다.

“세상에 외치고 싶었어요. 나 안 죽었다. 살아 있다. 그런 오기가 막 올라왔어요.”

예상대로 그의 알프스 원정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산행 도중 사고를 당한 그는 결국 헬리콥터에 구조돼 내려왔다. 강씨는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도 어떻게 그런 도전을 감행했나 싶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그 무모함조차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했다.

허무하다|아등바등 살아온 끝에 남은 것

강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방송은 어느새 다른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쪽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수술 후 석 달 만에 복귀했지만 강씨에게 배정된 방송 횟수는 이전보다 크게 줄어 있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인데.’ 회사를 향한 서운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쇼호스트에게 방송 횟수와 시간대는 곧 성적이었다. 방송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존심도 강했다. 더 자주 방송에 나와야 했고 더 많이 팔아야 했다. 남보다 잘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잘 나가는 것’이 예전만큼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수입이 줄어드는 현실도 분명 부담스러웠다. 다만 그것 때문에 다시 몸을 갈아 넣으며 경쟁하고 싶지는 않았다.

“암 수술을 하고 나니까 하던 일도 좀 별거 아니게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뭐 하러 그렇게 아등바등하고 몸 갉아먹으면서 일을 했나 싶었죠.”

몸을 한 번 잃을 뻔하자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한때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내주고 있는지가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16년간 이어온 생방송 홈쇼핑을 떠났다. 다른 곳으로 이직도 했지만 끝내 프리랜서의 길을 택했다. 돈은 전보다 적게 벌지만 난생처음 주말과 저녁이 있는 삶이 생겼다. 명절에 쉬어보기도 했다. 암은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삶의 방식을 뒤집어 놓았다.
조마조마하다|운이 좋았던 사람, 운이 나빴던 사람

강씨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림프절 검사 결과 암세포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암 환자라면 흔히 받는 항암치료도 없었다. 위의 대부분을 절제하고 이전과 다른 몸으로 살아가야 했지만, 치료 자체는 수술로 끝낼 수 있었다. 5년 뒤 완치 판정도 받았다.

애석하게도 암은 각자 다른 고통을 안겨줬다. 강씨의 친한 친구는 현재 폐암 4기로 수술과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2주에 한 번꼴로 병원에 가고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다. 아직 어린 자녀가 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제 친구는 애가 어리니까 일을 또 해야 돼요. 회사에서 계속 그렇게 불편하게 해도 그냥 버티는 거죠. 사람마다 상황마다 암 환자들은 모두 달라요.”

강씨의 친구는 직장에서 눈치가 보인다고 토로했다. 회사는 스스로 나가주기를 바라는 듯한 분위기를 보인다고도 했다. 같은 팀과 윗사람에게서 ‘또 쉬냐’며 노골적인 눈치를 받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일할 수 있는 만큼 계속 다니고 있을 뿐인데, 아픈 몸으로 자신의 자리까지 지켜내야 하는 셈이다.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말도 많지 않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버텨라”고 말할 뿐이다. 친구의 생계를 대신 책임져줄 수도, 병을 대신 앓아줄 수도, 자녀를 대신 책임질 수도 없다.

내려놓다|정상보다 평온한 삶

강씨는 평생 높은 곳을 향해 살았다. 산에서는 더 험한 벽을 찾았고 방송에서는 더 좋은 시간대와 높은 매출을 향해 달렸다. 어디서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을 좋아했다. 건강도 그 경쟁에서 자신 있는 분야였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누구보다 운동했으니 자신의 몸만큼은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암은 그런 확신을 한 번에 무너뜨렸다. 건강하게 살았다고 암을 완전히 피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대로 암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이전의 사람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강씨는 수술만으로 치료가 끝날 만큼 운이 좋았지만, 그의 어머니처럼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암이라도 누구에게 찾아오고 어떻게 지나가는지는 달랐다.

더 많이 벌고, 더 유명해지고, 더 높은 곳에 오르는 일도 더 이상 절실하지 않다. 한 번쯤 쉬어도 된다는 것, 주말과 저녁을 보내는 것도 삶이라는 것, 몸이 건강한 채 평온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게 됐다.

한때 목숨을 걸면서까지 정상에 올라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 했던 사람이 이제는 조금 낮고 조용한 곳을 바라본다.

정상에 서지 않아도 된다. 남보다 앞서지 않아도 된다. 살아 있는 오늘을 자신의 속도로 보내는 것. 암을 지나온 강씨가 새롭게 찾은 삶의 높이는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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