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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기술과 신뢰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건설
BEMIL 군사세계침략과 수탈 아닌 기술·신뢰·협력으로 세계시장 개척해야
조선·항공우주·AI·ICT 결합해 글로벌 방산시장 주도해야
한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세계 곳곳에 영토와 영향력을 보유해 어느 한 지역에서 해가 지더라도 다른 지역에서는 해가 떠 있다는 의미였다. 영국이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다를 향한 개척정신, 산업혁명을 이끈 과학기술, 강력한 해군력과 상선대, 세계 각지의 항만과 교역망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번영이 식민지 지배와 자원 수탈 위에 세워졌다는 역사적 그늘까지 본받을 수는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영토를 넓히는 제국이 아니다. 기술과 신뢰, 문화와 산업으로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가치를 인정받는 나라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방위산업이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음식으로 대표되는 한류는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섰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조선업은 세계 산업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높은 교육 수준과 숙련된 인력, 근면성과 책임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국민적 역량도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과거 영국이 해양력과 산업혁명을 결합해 세계로 진출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조선·항공우주 기술을 결합해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섬나라가 기술과 해양을 통해 성장했다는 점도 우리와 닮았다.
다만, 우리의 길은 지배가 아니라 협력이고, 수탈이 아니라 공동생산이며, 일방적인 무기 판매가 아니라 상대국의 자주국방과 산업 발전을 함께 돕는 동반자 모델이어야 한다. K-방산은 이미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전차와 자주포, 다연장로켓, 경공격기, 함정, 잠수함, 유도무기와 방공체계가 유럽과 중동, 아시아, 중남미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 무기의 강점은 가격만이 아니다. 요구된 성능을 충족하면서도 약속한 기한에 생산해 납품할 수 있는 제조 역량, 운용국의 조건에 맞게 개량하는 유연성, 교육훈련과 군수지원까지 제공하는 종합적인 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지금 세계 방산시장의 문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유럽은 안보 위기와 재무장 요구로 무기와 탄약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동은 단순 구매에서 벗어나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을 요구한다. 중남미는 노후 장비를 교체하면서 경제성과 후속 지원 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태평양 국가들도 해양안보와 영공 방어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권역마다 요구는 다르지만 신속한 생산, 합리적인 가격, 기술협력, 안정적인 후속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에는 모두 새로운 기회다. 그렇다고 몇 차례의 대형 계약만으로 방산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4대 방산수출국이라는 목표를 실현하려면 방위산업을 국가 장기전략으로 다뤄야 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를 공급하는 중소·중견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연구개발 투자와 전문인력 양성, 수출금융, 정부 간 협력, 현지 생산과 정비 거점 구축도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무기를 판매한 뒤 수십 년 동안 부품과 정비, 성능개량을 책임지는 신뢰가 중요하다. 방산 수출은 물건을 한 번 팔고 끝내는 거래가 아니라 국가 간 장기적인 안보 약속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방위산업은 전쟁을 부추기는 산업이 아니다. 적의 도발을 억제해 전쟁을 막고, 우리 장병의 생명을 보호하며, 국가의 생존과 평화를 지탱하는 전략산업이다. 동시에 첨단기술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와 수출을 살리는 미래 성장산업이다.
무기 수출에는 국제법과 인권, 투명한 절차에 대한 엄격한 책임이 뒤따라야 하지만, 정당하고 책임 있는 방산 수출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다.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방산을 일부 기업과 군의 영역으로만 보지 말고 대한민국의 안보와 산업을 함께 키우는 국가적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기술자를 존중하고, 방산 중소기업과 청년 인재를 응원하며,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지지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를 감시하고 독려해야 한다. 기업 역시 과도한 경쟁과 기술 유출을 경계하고 ‘팀 코리아’정신으로 세계시장에 나서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해는 한반도 안에서만 뜨고 지지 않는다. 폴란드에서 K-방산의 해가 지면 중동에서 떠오르고, 중동에서 지면 동남아시아와 중남미에서 다시 떠오르게 해야 한다. 세계의 어느 시간대에서도 한국의 무기체계가 평화를 지키고, 한국의 기술자와 기업이 신뢰를 쌓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의 한류에 이어 안보와 평화의 K-방산 시대를 열자. 침략과 지배의 제국이 아니라 기술과 책임, 신뢰와 협력으로 세계와 함께하는 나라, 우리도 방위산업으로 해가 지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자.
문근식은 해군사관학교 35기로 임관해 대령으로 예편했다.
경기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나대용함 함장과 해군본부 핵추진 잠수함 사업단장,
방사청 잠수함 사업팀장, 한미연합사 해상작전과장,
독일 잠수함 사업관리실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원문 출처= 뉴스버스(Newsver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