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 읽음
EU MiCA 개정 검토, 스테이킹 별도 규제 도입 논의
위키트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암호자산 스테이킹(예치를 통해 보상을 받는 방식)을 별도로 규제할지 검토에 들어갔다. 암호자산시장규제법(MiCA) 개정 자문 문서 36쪽 66번 항목은 “유럽의 스테이킹 처리 방식이 적절한가”를 묻는다. 부적절하다면 스테이킹 서비스 회사에 어떤 요건을 적용해야 하는지도 함께 묻는다.
질문은 짧지만 파장은 작지 않다. 아직 스테이킹 전용 인가 제도나 새로운 자본 요건이 제안된 것은 아니고, 브뤼셀 차원의 합의된 입장도 없다. 자문은 9월 30일 오후 11시 59분(중앙유럽 서머타임 기준, 현지시각)까지 열려 있고 향후 MiCA를 개정하는 법안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집행위는 문서 자체가 최종 정책 입장은 아니라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유럽 암호자산 규제가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준다. MiCA는 이미 중앙화된 스테이킹 제공자가 고객 자산을 커스터디(보관·관리)할 때 하는 일 대부분을 규율한다. 이제 브뤼셀은 스테이킹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규제 대상 서비스로 다뤄질 만큼 크고 복잡해졌는지를 묻고 있다.
스테이킹이 MiCA 바깥에 있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MiCA에는 '스테이킹'이라는 독립된 규제 서비스 항목이 따로 없다. 누군가 자신의 자산을 직접 블록체인에 스테이킹한다면, 지분증명(PoS) 합의에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 MiCA 인가가 필요하지는 않다.
집행위는 이런 자기 자산 스테이킹과 서비스형 스테이킹을 이미 구분해 놓았다. 유럽증권시장청(ESMA) 지침에 따르면 회사가 고객의 암호자산을 넘겨받거나 접근에 필요한 키를 통제해 고객을 대신해 스테이킹한다면, 이 서비스는 MiCA의 커스터디·관리 규정 적용을 받는다.
문제는 '스테이킹'이라는 단어 아래 너무 많은 사업 모델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32 ETH로 이더리움 검증인(밸리데이터)을 직접 운영하며 키를 스스로 통제하면 직접 스테이킹이다. 전문 검증인이 고객을 위해 기술 인프라만 운영하고 고객이 인출 키를 계속 갖고 있으면 비커스터디 관계가 될 수 있다. 거래소가 고객의 ETH를 보관하며 스테이킹 방식을 결정하고 보상을 모아 수수료를 뗀 뒤 나머지를 고객 계정에 넣어주는 방식도 있고, 여기에 유동성 스테이킹(원자산을 맡기고 스테이킹된 포지션을 나타내는 토큰을 받아 거래·담보로 쓰는 방식)까지 더해지면 구조는 한층 복잡해진다.
유럽은행감독청(EBA)과 ESMA가 함께 낸 암호자산 보고서는 2024년 10월 기준 유동성 스테이킹 규모를 440억 달러(약 61조 원, 1달러 1,387원 기준)로 추정했다. 이 중 약 80%가 이더리움에서 이뤄졌고, 당시 리도(Lido) 한 곳의 비중만 약 250억 달러(약 35조 원)에 달했다.
이런 모델들은 통제권이 똑같이 분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자산을 보유하거나 키를 통제하는 제공자가 어디에 위임할지, 보상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고객에게 자산을 얼마나 빨리 돌려줄지, 검증인이 슬래싱(페널티)을 받았을 때 어떻게 처리할지도 제공자 손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MiCA는 커스터디가 개입되는 순간부터 세부 의무를 부과한다. 인가받은 커스터디 업체는 서비스와 수수료를 설명하는 서면 계약을 맺어야 하고, 고객 포지션 기록과 자산 보호 절차도 유지해야 한다. 고객의 암호자산은 회사 자체 자산과 분리해야 하며, MiCA 75조에 따라 자산을 돌려주는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MiCA 70조의 고객자산 보호 규정은 고객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파산 상황에서도 보호하도록 요구하고, 회사가 그 자산을 자기 소유물처럼 다루지 못하게 막는다. ESMA는 스테이킹 자체에 대해서는 한발 더 나간다. 암호자산서비스제공자는 고객이 동의했더라도 고객의 암호자산을 가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테이킹할 수 없다. 제공자와 고객이 보상을 나누는 계약을 맺을 수는 있지만, 그 자산이 회사의 자체 스테이킹 재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ESMA 지침은 명시한다.
유럽이 규제의 무(無)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기존 틀은 중개자가 커스터디를 맡아 서비스로 전환하기 전까지는 스테이킹을 프로토콜 활동으로 본다. 집행위는 지금 이 구분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고 있다.

별도의 스테이킹 규제가 만들어진다면 무엇을 담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자문 문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아, 유럽이 특정 자본 규정을 부과하거나 모든 검증인 서비스에 보험을 요구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EBA와 ESMA가 이미 상당한 시간을 들여 위험 요소를 정리해 둔 만큼 규제 당국이 어디를 들여다볼지는 짐작할 수 있다.
프로토콜의 인출 대기 기간 동안 자산이 묶일 수 있고, 검증인이 페널티를 받거나 슬래싱될 수 있다. 고객은 보상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제공자가 얼마를 떼어 가는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도 많다. 유동성 스테이킹 토큰 역시 원자산 가치와 다르게 거래될 위험이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슬래싱, 인출 지연, 수수료, 문제가 생겼을 때 손실을 누가 부담하는지에 대한 더 구체적인 규정이 생길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MiCA 위에 또 하나의 인가 단계와 더 비싼 컴플라이언스 부담이 얹힐 가능성이 있다. 프로토콜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스테이킹이 금융 서비스이면서 동시에 지분증명 블록체인이 작동하는 기본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스테이킹은 원래 네트워크 인프라로 시작됐다. 참여자가 자산을 예치하고 검증인 소프트웨어를 돌리며 프로토콜 규칙을 따라 합의에 기여한 대가로 보상을 받는 구조였다. 거래소·커스터디 업체·은행·스테이킹 플랫폼이 보유자와 검증인 사이에 끼어들면서, 같은 활동이 금융 규제 당국에게 훨씬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부터 어떤 형태로든 규제가 뒤따르는 건 예정된 일이었다는 것이 이번 자문 문서가 던지는 질문의 배경이다. MiCA가 이미 커스터디 단계의 스테이킹을 규율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행위는 그 경계선 자체를 다시 그릴지 말지를 시장 참여자들에게 묻고 있다.
이 답변은 9월 30일 마감 이후 유럽의회와 회원국 논의를 거쳐 실제 법안 개정으로 이어질 수도, 현행 틀을 유지하는 결론으로 끝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440억 달러 규모로 커진 유동성 스테이킹 시장과 그 위에 얹힌 이더리움 검증인 생태계는 이 논의의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