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읽음
임진왜란 지상전 첫 승전, 억울하게 처형된 신각 장군
데일리안우리는 부산진성의 정발과 동래성의 송상현, 그리고 다대포의 윤흥신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지휘관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겁에 질려서 도망쳤다.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이각은 동래성에서 함께 싸우지는 송상현의 요청을 거부하고 줄행랑을 쳤다가 결국 처형당하고 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균 역시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서 방어를 포기하고 판옥선을 자침시킨 다음 도주했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서 병력들을 긴급 소집해서 출동을 준비 중이었고, 권율과 곽재우 같은 인물들이 이제 의병들을 규합하는 시점이었다.

수급 70개라면 최소 70명을 사살했다는 것으로 실제로는 더 많은 일본군이 죽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개전 이래 조선 관군이 육지에서 거둔 최초의 의미 있는 승리였다. 바다에서는 이미 이순신이 옥포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의병들이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육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제대로 된 반격이 이루어진 것은 해유령이 처음이었다. 전과를 보면 국지전이었지만 그 상징성은 컸다. 육지에서도 일본군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각에게 돌아온 것은 공적에 대한 포상이 아니었다.
신각이 승전을 올리고 있는 사이, 임진강 방어선에서는 도원수 김명원 휘하의 부대가 일본군에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다. 김명원 측은 자신들의 패배 책임을 신각에게 돌렸다. 신각이 독단으로 부대를 이끌고 해유령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임진강 방어가 무너졌다고 보고한 것이다. 김명원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은 선조는 신각을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선조수정실록에는 그의 어처구니없이 죽는 과정이 남겨져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초반에 지휘관들이 도망치고 군대가 붕괴되는 일이 반복되자 선조를 비롯한 조정의 중신들은 패닉에 빠졌다. 거기다 한양은 물론 개성까지 뺏기자 위기감에 몰린 상황에서 신각이 도망쳤다는 김명원의 장계를 보고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뒤늦게 신각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자 서둘러 처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기록한 실록의 다음 부분에는 나라에 몸 바쳐 일을 처리하면서 청렴하고 부지런했다면서 다들 안타까워했다고 덧붙여있다. 군법에는 대장의 명령 없이 부대를 이끌고 독자적으로 작전을 펼친 것은 군율 위반이었다. 하지만 그 위반이 패전이 아니라 승전으로 이어졌으며, 그리고 임진강 방어 실패의 원인이 정말 신각에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해유령 전투와 신각의 죽음은 임진왜란 초반 조선이 처한 구조적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공을 세운 사람이 제도의 경직성과 정치적 책임 전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신각이 살아남아서 제대로 지원을 받고 전투에 나섰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