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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력망 병목 리스크, 지역 상생형 사회적 혁신이 해법
에너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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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기획조정실장

지난 20여년간 선진국의 전력수요 곡선은 지루할 만큼 평평했다. 에너지효율 향상과 경제구조 변화가 성장분을 상쇄했다. 지금은 AI 데이터센터와 전기화를 통한 탄소중립이 가속화되면서 전력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발전소를 지어도 전기를 보낼 길이 없다.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가 동시에 늘어난 지금, 전력 시스템의 병목은 발전이 아니라 전력망으로 옮겨갔다. 이것은 한 나라의 사정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로렌스버클리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전력망 접속 대기열에는 8,244개 사업, 2,061GW가 걸려 있다. 이는 미국 전체 전력설비 용량의 두 배에 가깝다. 접속신청부터 준공까지 소요기간은 2008년 22개월에서 지난해 61개월로 늘었다. 그사이 345kV 이상 송전선 신설은 2013년 약 6,400km에서 2025년 약 646km로 쪼그라들었다. 필요량은 연 8,000km로 추산된다. 송전 관련 투자비가 사상 최고수준인 연 250억 달러를 넘겼지만, 90% 이상이 신뢰도 개선과 노후설비 교체 사업에 들어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거리 송전망을 못 짓는 것이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 영국은 2025년 풍력 출력제어와 대체발전에 약 14억 파운드를 썼다. 올해는 8월 초에 이미 10억 파운드를 넘겼다. 출력제어의 98%가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했다. 북부 스코틀랜드에서만 8.8TWh가 생산되지 못했고, 생산될 수 있었던 풍력 발전량 중 61%만이 실제로 전력망에 공급되었다.

2025년 독일은 예비발전소와 출력제어 보상을 포함한 계통혼잡관리 비용으로 30.7억 유로를 지출했다. 독일 남북을 잇는 700km, 4GW급 직류선로 쥐드링크는 당초 2022년 준공 예정이었다. 현재 목표는 2028년 말이다. 2015년 정치적 타협으로 지중화가 결정되면서 계획을 다시 짜야 했고 수십억 유로가 추가됐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유럽 전력망 패키지(European Grids Package)\'는 물량과 속도를 내걸었다. 2040년까지 필요한 전력망 투자규모를 1조 2,000억 유로로 잡고, 인허가 간소화와 국가간 전력망 연결사업 우선지원, 금융 및 투자 지원 등의 방안을 담았다.

한국도 이미 그 벽에 부딪혔다. 동해안 지역 발전설비는 17.8GW인데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용량은 14.5GW에 그친다. 이를 풀 열쇠인 동해안~수도권 500kV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건설사업은 당초 목표보다 수년째 밀리고 있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의 주민 반발과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갈등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전은 2024년 광주·전남 103개, 전북 61개, 동해안 25개, 제주 16개 등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해 신규 접속을 제한했다.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지난해 9월 시행되면서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가 생기고, 인허가 의제가 18개에서 35개로 늘었다. 허수 물량 7GW 중 2GW를 회수해 재배분했다. 제주는 올해 계통관리변전소에서 해제되기도 했다.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를 지난해 0.1GW에서 2030년 12GW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서남해 재생에너지를 실어 나를 서해안 HVDC 1단계 사업은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양광은 1~2년, LNG 복합발전소는 3~4년이면 상업운전에 들어간다. 송전선 하나를 놓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린다. 전력망 건설이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주민 수용성이다. 송전 설비는 사회가 합의해야 지어진다.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햇빛소득마을처럼 계통소득마을 사업을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전망이 마을의 지속가능한 수익원이 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일회성 지원사업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주민 복지와 공동체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전기를 보내는 길이 부족하다. 전기 생산은 바닷가와 비수도권에서 이루어지고, 수요는 수도권과 첨단산업 클러스터에 몰려 있다. 전력망 병목은 산업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제약하는 구조적 리스크가 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반도체도 AI도 재생에너지도 같은 지점에서 멈춰 설 것이다. 막힌 길을 뚫어낼 열쇠는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이익을 공유하는 사회적 혁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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