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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들쥐 글로벌 1위, 방대한 원작 웹툰과 차이점
미디어오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들쥐’는 공개 2주 차에 글로벌 톱10 비영어 쇼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는 9일 ‘들쥐’가 44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오만, 필리핀, 아르헨티나, 멕시코, 헝가리,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 총 45개국에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공개 첫 주 5위로 출발해 2주 만에 정상까지 오른 셈이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 삶 전체를 낯선 존재에게 빼앗긴 소설가 제문재(류준열)가 사채업자 노자(설경구)와 예기치 않은 동맹을 맺고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아가는 이 추적 스릴러는, 극 초반의 속도감과 짜릿한 반전들, 두 배우의 연기로 확실한 몰입감을 안겼다. 다만 중반 이후 반전에 반전이 반복되며 일부 시청자에겐 피로감이 쌓이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흐름도 함께 읽히고 있다. 넷플릭스판에서 속도감과 두 배우의 연기를 즐겼지만 아쉬운 물음표도 남았다면, 원작을 시작해보길 권하고 싶다.
‘들쥐’의 원작은 루드비코 작가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카카오웹툰에 연재한 동명 웹툰이다. 드라마 시청자들 가운데에선 “이 이야기가 왜 10부작이나 되느냐”는 평도 들려왔지만, 상당수는 이야기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방대한 원작의 세계관을 옮기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설명의 빈자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만큼 웹툰의 세계관은 더 넓다.

원작 웹툰의 제문재는 드라마에서 설정된 3년보다 훨씬 오래, 10년을 집 밖에 나가지 않은 인물이다. 원작은 시작부터 그가 옆집 여성이 샤워하는 장면을 매일 훔쳐보는 루틴을 갖고 있었다는 설정을 깔고 들어가는데, 화장실 구조 자체의 개연성 문제와 더불어 불쾌감을 준다는 비판을 적잖이 받았던 대목이다. 이미 많은 지적을 받아온 장면인 만큼 넷플릭스판에서는 삭제됐다.
각색 과정에서 사라진 건 이런 군더더기만은 아니다. 드라마 후반부 반전의 두 축인 외삼촌과 경찰 순용의 서사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드라마의 외삼촌은 후반부에야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뒤흔드려 하지만 깔끔치 못한 전개가 이어진다. 원작의 외삼촌은 처음부터 다르게 설계돼 있다. 이미 초반부터 ‘들쥐’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 계획에 가담하기까지 한 인물이다. 문재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담은 일기까지 등장할 만큼, 서사 안에 자리가 처음부터 마련돼 있었다.
경찰 순용의 서사는 더 극명하게 갈린다. 드라마는 후반부에 순용 자신도 ‘제문재’라는 이름과 얽혀 있었다는 반전을 얹는데, 이 대목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는 반응을 낳고 있다. 원작의 순용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자신이 어릴 적 알고 지내던 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사건에 깊숙이 얽혀 들어간다. 드라마보다 단순한 동기지만, 그만큼 납득이 간다.
손쉬운 도덕적 결론 미끄러뜨리는 게 장기인 원작자의 ‘들쥐’
원작에서 ‘가짜 제문재’는 소설가가 아니라 사회적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인물이며, 약자를 멸시하는 이들을 응징한다고 주장하는 사적 복수 조직과 청년들을 돕는다는 명목의 또 다른 커뮤니티까지 함께 이끈다. 드라마에서는 생략된 사회적 배경이 원작에는 훨씬 촘촘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이것이 ‘들쥐’의 질문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원작을 보다보면 학창 시절엔 존재감이 없던 동창이 음모를 꾸미고 사회전복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 주인공을 겨냥하는 전개, 그리고 주인공이 학창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실마리를 찾아가는 구조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명작 ‘20세기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해당 웹툰이 한국판 ‘20세기 소년’이라는 평도 나올 정도다. 그만큼 명작이라는 말이다. 다만 ‘어떤 동창이 가짜 제문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원작에서 꽤 지난하게 이어지다 보니, 드라마에서는 이 부분이 크게 덜어졌다. 이야기가 덜어지면서 드라마에서 ‘순용’에게 과도한 서사가 부여된 모습이다.

결정적으로 원작을 다 읽고 나면, 이 작품은 ‘진짜 제문재’와 ‘가짜 제문재’를 가리는 문제 그 이상을 남긴다. ‘곁에 있으면 해가 되는 진짜’와 ‘곁에 있으면 득이 되는 가짜’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되묻는 원작의 대사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를 넘어 ‘진짜는 선, 가짜는 악’이라는 전제가 어쩌면 이분법이 아니냐고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손쉬운 도덕적 결론을 계속 미끄러뜨리는 것이야말로, 원작자 루드비코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들쥐’를 둘러싼 개연성 논란은 이야기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넓은 원작을 10부작이라는 그릇에 옮겨 담으며 생긴 압축의 흔적에 가깝다. 동창회 장면에서 고개를 갸웃했거나, 순용의 반전에서 몰입이 깨졌거나, 왜 이렇게 긴 이야기가 필요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면 그 답은 이미 원작에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