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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 김홍선 감독, 정체성 질문 던진 장르물 연출기
아주경제"미스터리도, 액션도, 멜로도 다 장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장르물'로 한꺼번에 묶이면서 약간 이상한 사람들처럼 취급받는 느낌이 있어요. 예전에 OCN에서 드라마를 만들 때는 이런 대본을 방송국에 내밀 수도, 만들지도 않던 때였거든요. 당시 우리의 목표는 '우리도 HBO 같은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거였어요. 그런 작업들이 쌓이면서 지금의 표식이 된 것 같아요. 다행히 이제 이런 걸 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건 좋지만, 여전히 그렇게만 한정 지어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조금 슬프기도 해요."
특정 장르만 떼어내 '장르물'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데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역설적이게도 김홍선 감독은 '한국 장르 드라마'의 계보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OCN 드라마 '보이스'를 시작으로 '특수사건 전담반 TEN', 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을 거쳐 최신작 '들쥐'에 이르기까지 그는 스릴러와 액션, 범죄 장르의 긴장감을 대중적인 서사 안에 녹여내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들쥐'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 작품이다. 의문의 존재에게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치밀하게 엮어낸 이번 작품에서 김홍선 감독은 장르적 쾌감과 인물의 감정을 동시에 밀어붙이며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해냈다.
"(글로벌 순위가) 좀 더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건 제 욕심이죠. 그래도 너무 기쁩니다. 사실 '들쥐'가 남녀노소 다 같이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보신 분들의 평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밌었다고 해주시면 저는 된 것 같아요. 웹툰 원작은 더 무서운 느낌이 강했는데 이 공포감을 내가 잘 유지하고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이 컸어요. 다행히 이재곤 작가님이 변주를 정말 잘해주셨죠.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던 건 결국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내 정체성이 정말 맞는가, 그게 옳은가 하는 질문을 끝까지 가져가려고 했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를 연출한 김홍선 감독 사진=넷플릭스
웹툰은 독자의 스크롤 속도에 따라 장면의 호흡이 달라지지만, 영상은 정해진 시간 안에서 시청자의 시선과 감정을 이끌어야 한다. 그만큼 몰입의 속도를 조절하고, 상상으로 남아 있던 장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온전히 연출자의 몫이다. 김홍선 감독은 다소 느리게 전개되는 1부를 시청자가 작품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넘어야 할 허들로 봤고 이후 서사에 자연스럽게 속도감이 붙도록 후반 작업에 공을 들였다.
"1부가 조금 느린 편이라 이 허들을 넘어가게 하는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어요. 그 이후부터는 속도감이 붙어서 저희로서는 하나의 위기를 넘긴 느낌이에요. 문재의 공황을 표현하기 위해 '사이코' 같은 공포물을 레퍼런스로 참고했고 실제 공황을 겪은 분들의 감각, 즉 벽이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을 참조했어요. 제가 원래 얼굴을 가까이 보는 걸 좋아하는데 공포감이나 두려움 같은 표정을 보면 디테일한 떨림, 눈 초점의 이동까지 더 보고 싶어져서 카메라가 점점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유난히 '들쥐'에는 클로즈업신이 많습니다. 하하. 또 인물의 감정을 묘사해야 하는 작품이라 바닥에서 보거나, 무언가를 통해 보거나, 멀리 있는 작은 구멍처럼 보는 등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앵글의 기준도 계속 달라져서 부감샷 등 다양하게 써보려고 했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 스틸컷사진=넷플릭스
치밀하게 설계된 연출의 빈틈을 꽉 채운 건 배우들의 촘촘한 앙상블이었다. 특히 1인 2역이라는 난도 높은 연기를 소화한 류준열과 극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아준 설경구, 그리고 끈질긴 생활감을 입힌 이규형의 존재감은 김 감독에게 커다란 확신을 안겼다.
"류준열 배우의 캐릭터에 대해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정해놓은 건 없었어요. 배우가 연구해 온 것과 제 생각을 놓고 정말 많은 케이스를 이야기하며 촬영장에서도 끊임없이 바꿔봤어요.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지금이 제일 좋다'였죠. 목소리도 기계적으로 5대5, 6대4로 섞어보려다 답이 안 나와서 결국 '준열아, 네가 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100% 네가 하자'가 됐어요. 설경구 배우님은 이 역할을 제안했을 때 해주신다고 한 것만으로도 일종의 치트키처럼 '하나는 해결됐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딱 분장하셨을 때는 그냥 '끝났네'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요. 이규형 배우가 맡은 순용 역시 나중에는 문재를 이해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회복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정체성을 가장 완벽하게 갖고 있는 인물이에요. 마지막에 터뜨릴 하나를 갖고 가야 하는 힘든 역할인데 너무 잘해줬어요."
극 초반 숨 막히는 스릴러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감은 문재(류준열 분)와 노자(설경구 분)의 동행이 시작되며 묘한 버디물 형태의 티키타카로 변주된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장르적 온도를 바꾼 김 감독은 현장에서 피어나는 유머와 애드리브를 유연하게 수용하며 극에 입체감을 더했다.
"문재가 바깥으로 밀려나는 순간이 시작점이라면, 노자를 만나 함께 추격하는 장면이 또 하나의 변주였어요. 배우들과 대화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죠. 특히 문재와 노자가 차 안에서 계속 부딪히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본에 없는 것도 나오고 재밌어지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이게 너무 버디극으로 가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훨씬 좋았다고 봐요. 이번에는 애드리브가 조금 많았는데, 배우들이 스스로 맞춰가면서 나오는 것들이 재밌으면 허용치를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호러, 스릴러, 추격,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들쥐'는 거친 액션과 디테일한 프로덕션, 치밀한 음악 설계 등으로 구성됐다. 김 감독은 만화적 설정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미세한 장치들을 심어두는 한편,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특성에 맞춘 타이밍 설계에도 각별한 공을 들였다.
"극 중 인물들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등 만화적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이게 말이 되냐'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방어하려고 애썼습니다. 저희 나름대로는 개연성의 이유를 다 심어놨어요. 예를 들면 노자가 땅속에 묻힐 때도 손에 나무 꼬챙이를 쥐는 걸 추가해서 개연성을 가지려고 했죠. 액션 신 같은 경우는 멋진 합보다는 정돈되지 않은 무자비함을 원해서 그런 점들을 살려 날 것의 느낌들을 내려고 했습니다. 음악도 클래식인 '레퀴엠'과 테크노 음악을 통해 풀어냈어요."
장르적 쾌감을 위해 클래식과 테크노 음악을 엮어냈다는 김 감독은 마지막 배 신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가장 아쉬운 건 마지막 배 시퀀스예요. 원래 그 장면 전체에 '스탠바이 미'를 깔았었는데 결국 사용 허가를 못 받았어요. 두 사람의 정체성이 엉켜 있는 느낌과 음악이 너무 잘 맞아서 '내 인생에 드디어 한 건 했다' 싶을 정도였는데 아쉽죠."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를 연출한 김홍선 감독 사진=넷플릭스
정체성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지며 결말부까지 시청자와 밀당을 이어간 '들쥐'. 김 감독은 파편화된 단서들 속 철저하게 계산된 질문을 짚으며 예비 시청자들의 시청을 독려했다.
"결국 제문재라는 친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처음엔 시청자들이 문재를 응원하다가 정체가 드러나면 욕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죠. 이 안에는 완전히 좋은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류준열 배우와도 '이건 너랑 나랑 시청자를 속여가야 한다. 들쥐를 잡아서 네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믿고 가자'고 이야기했어요. 결말은 표면적으로 열린 결말이 맞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안에 가두고 나오지 마' 하는 느낌이었어요. 아직 '들쥐'를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조금 천천히 보시기를 바랍니다. 핸드폰으로 틀어놓고 오디오처럼 듣는 드라마가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을 잘 봐야 하는 작품이에요. 타이트한 샷이 많아서 작은 화면으로 보면 그냥 지나가버리는 것들이 있거든요. 가능하면 큰 화면으로 집중해서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