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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미·중 대항 유럽 챔피언 육성 위해 메가 합병 추진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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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로 쪼개진 기업으론 미국·중국 상대 못해…‘유럽 챔피언’론 급부상

통신·방산·은행·AI까지 초대형 합병론…도이체텔레콤+오렌지 등 거론

합병 막던 EU도 20년 만에 규칙 손질…‘독점 우려’보다 ‘글로벌 생존’에 무게
미국과 중국의 거대 기업에 밀려 글로벌 산업 주도권을 잃고 있는 유럽에서 기업 간 국경을 허무는 ‘메가 합병’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독일 기업과 프랑스 기업, 스페인 기업처럼 국가별로 쪼개져 있는 산업 구조로는 미국 빅테크와 중국 제조업 공룡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다. .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인수·합병(M&A) 업계에서는 최근 이른바 ‘유럽 챔피언’을 탄생시키기 위한 초대형 합병 시나리오가 잇따라 거론되고 있다. FT가 30명 이상의 M&A 전문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통신과 방산, 에너지, 은행, 인공지능(AI), 제약, 산업자동화 등 유럽 핵심 산업 전반에서 7개의 ‘꿈의 합병’ 조합이 제시됐다. 실제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유럽 산업계가 얼마나 ‘규모의 열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조합은 독일 도이체텔레콤과 프랑스 오렌지다.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미국·중국 통신사에 맞설 유럽 최대급 통신사가 탄생할 수 있다. 유럽 통신시장은 국가별 사업자가 난립해 5G와 데이터센터, AI 인프라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독일과 미국 시장에 강한 도이체텔레콤과 프랑스·아프리카 등에 광범위한 사업망을 둔 오렌지가 손을 잡으면 가입자 기반과 투자 여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방산에서는 민항기와 군용기·우주 분야에 강한 에어버스와 전투기 그리펜, 레이더·전자전 기술을 보유한 스웨덴 사브의 결합이 거론된다. 유럽 각국에 흩어진 방산 역량을 한데 모아 미국 방산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도이체방크와 BNP파리바 역시 각각 독일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금융회사인 만큼 합병할 경우 유럽 자본을 대규모로 동원할 수 있는 초대형 은행이 탄생하게 된다.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ASML과 프랑스의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업 미스트랄AI라는 이색적인 조합이 제시됐다. 단순히 같은 업종끼리 몸집을 불리는 합병이 아니라 유럽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 장비와 상대적으로 뒤처진 AI를 묶어 ‘유럽판 AI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발상이다.

제약업계에서는 백신·의약품에 강한 프랑스 사노피와 독일 바이엘, 산업 분야에서는 자동화·디지털 제조 역량을 갖춘 지멘스와 에너지관리·전력자동화에 강한 슈나이더일렉트릭이 후보로 꼽혔다. 스페인 이베르드롤라와 이탈리아 에넬의 결합도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사업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하고 막대한 친환경 인프라 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시나리오로 평가된다.
이 같은 구상이 나오는 이유는 유럽 기업들이 기술력은 갖췄지만 시장과 자본이 국가별로 분절돼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거대한 단일시장을 바탕으로 빅테크와 금융기업이 빠르게 몸집을 키웠고 중국 역시 막대한 내수시장과 국가 지원을 등에 업은 제조업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파고드는 중이다.

이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EU 집행위원회는 결국 규칙을 손보기 시작했다. 집행위원회는 지난 4월 약 20년 만에 가장 광범위한 기업결합 심사지침 개편안을 공개했다. 기존 지침이 만들어진 2004~2008년 이후 디지털화와 세계화, 탈탄소화 등 경제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합병이 투자와 혁신, 기업의 회복력과 장기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까지 폭넓게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최종 지침은 올해 4분기 확정될 예정이다.

다만 ‘유럽판 메가기업’ 탄생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국이 자국 핵심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대규모 합병이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을 줄이고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반론도 여전하다. 서로 다른 기업 문화와 규제 체계를 통합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유럽이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 어렵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경쟁력 보고서는 EU가 2030년까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연간 7500억~8000억 유로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유럽이 미국과 중국의 거대 기업에 맞서기 위해 수십 년간 지켜온 ‘작게 나눠 경쟁시킨다’는 원칙에서 벗어나 ‘크게 합쳐 경쟁한다’는 전략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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