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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 국책은행 지방이전 반대, 1년 만의 총파업
위키트리
금융노조는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에서 대한문에 이르는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서 총파업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이 사전 신고한 참여 인원은 3만명,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는 1만4000명에서 1만5000명 수준이 집결했다. 지난해 총파업 당시 경찰 추산 8000명과 비교하면 참여 규모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집회 가장 앞단에는 한국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노조원이 빼곡히 자리했다. 이들은 '지방 이전 저지', '본점 이전 시도 중단'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총파업이라 쓰인 빨간 머리띠를 두른 채 "강압적인 금융기관 지방이전 중단하라", "주 4.5일제 도입하고 노동시간 단축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뒤편으로도 한국수출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 공공기관 노조원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산업은행의 경우 전체 조합원 2200여명 가운데 노사협약에 따라 근무해야 하는 잔류 인력을 제외한 2000여명이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책금융기관 조합원들의 참여가 크게 늘면서 이번 총파업 전체 규모를 키우는 동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태의 근본 배경에는 정부의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정책이 있다. 정부가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잔류 최소화'를 원칙으로 내걸자, 금융위원회의 세종 이전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가운데 금융감독원과 국책은행들까지 지방 이전 대상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권 전반이 술렁였다. 앞선 1차 공공기관 이전 당시 지방으로 옮긴 기관들이 겪었던 인력난과 조직 운영 차질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번 반발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이를 두고 '획일적 정치 논리'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 대구로 이전한 신용보증기금이 극심한 인재 유출을 겪은 전례가 있는 만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번 총파업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노조가 내건 핵심 요구는 여섯 가지다. 주 4.5일제 도입과 청년 채용 확대, 본사 이전 사전 합의, 정년 연장, 실질임금 보장, 제도 개선이다. 이 가운데서도 이번 총파업의 최대 동력은 단연 지방 이전 문제였다.
김현준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뉴욕과 런던, 싱가포르 등 세계 금융 중심지 어디를 봐도 기관을 제각각 떨어뜨려 놓은 곳은 없다며, 여러 금융위기 상황에 대처하려면 금융산업이 한곳에 집적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꾸 지방 이전 이야기가 나오면서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내부 동요가 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도 같은 우려가 나온다. 금융업 특성상 은행과 정책금융기관, 신용평가사, 회계·법률 자문사 등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모여 있어야 신속한 의사결정과 위기 대응이 가능한데, 이런 집적 효과가 흩어지면 국가 금융경쟁력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실제로 금융위기 국면마다 정부와 국책은행, 시중은행이 실시간으로 머리를 맞대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물리적 거리 자체가 위기 대응 속도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민호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 역시 경과보고에서 2002년 금융권이 주 5일제를 선도해 대한민국 전체 산업의 변화로 이어졌던 전례를 언급하며, 이번에도 노동시간 단축의 새로운 기준과 이정표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앞서 지난달 12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6.05%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가결했고, 28일에는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며 파업 수순을 밟아왔다. 노사는 지난 4월부터 대표단과 실무, 대대표 교섭을 합쳐 31차례 넘게 협상을 이어갔지만 핵심 요구를 둘러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측은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으로 금융사의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방 이전과 관련해서도 단순한 물리적 이전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금융, 대학을 연계하는 구조적 대안이 먼저 마련돼야 하며, 당사자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추진되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조는 2차 공공기관 이전에 앞서 지난 1차 이전의 효과와 인력 이탈 문제부터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인위적으로 조직을 흩어놓기 전에, 앞서 이전한 기관들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되짚어보는 게 우선이라는 논리다.
이장호 한국씨티은행지부 위원장은 "사측과 정부의 진정성 있는 답변을 촉구하며, 요구가 외면받을 경우 2차와 3차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이번 파업을 '1차 총파업'으로 규정하고, 향후 교섭 결과에 따라 투쟁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좀처럼 진전이 없을 경우, 하투 국면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