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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 워크 확산, 권리 보장과 사회적 인식 변화 필요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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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활용하여 제작된 이미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한다.’ 한때 이 말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에게 긱 워크는 더 이상 낯선 선택지가 아니다. 배달과 대리운전은 물론 디자인, 번역, 영상 편집, 개발, 데이터 라벨링 등 자신의 기술과 시간을 건별로 거래하는 방식은 이미 하나의 노동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한 선택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의 능력으로 일하고 싶은 선택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의 사람들까지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한 청년’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물론 긱 워크가 언제나 자유롭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한다고 해서 노동자가 모든 과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배차와 평점, 플랫폼 노출과 고객 평가 등 보이지 않는 기준이 다음 일거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을 개인이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유롭게 일하는 대신 일정한 월급이나 회사가 제공하는 복지와 보호를 포기해야 하는 구조라면, 그 선택이 언제나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만을 이유로 긱 워크 자체를 불안정하고 잘못된 노동 방식으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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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긱 워크를 선택할 자유와 그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어디까지 개인에게 맡길 것인가를 구분하는 일이다.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여러 일을 병행하고,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신의 능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한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다시 기존의 회사 중심 노동시장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아프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거나, 불공정한 계약과 일방적인 플랫폼 규칙 앞에서 개인이 모든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까지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물론 보호에는 대가가 따른다.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려면 그에 따른 비용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비용이 늘어나면 수수료나 일감의 구조, 노동자가 실제로 가져가는 수익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긱 워커에게 기존 직장인과 똑같은 보호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보호할 것인가, 자유롭게 둘 것인가’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 형태에서 자유와 책임, 권리와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제도만큼이나 바뀌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긱 워커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한 직장에 들어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월급을 받는 삶을 안정적인 노동의 정답처럼 여겼던 세대에게 긱 워크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낯선 방식일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긱 워크를 선택한 청년을 두고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한다’, ‘요즘 청년들은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한다’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이란 반드시 하나의 회사에 소속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자신의 능력을 팔고, 본업과 부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경력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하나의 노동 방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을 무조건 ‘요즘 청년들의 변덕’이나 ‘안정성을 포기한 선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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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 워크가 진정한 자유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일할 권리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 자유를 선택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범위와, 사회가 함께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안전 역시 함께 논의해야 한다. 나는 긱 워커를 무조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자유를 선택했으니 모든 위험도 알아서 감당하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새로운 노동 방식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노동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다시 과거의 노동 형태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선택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왜 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하려 하는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원할 때 일하는 삶’이 불안정한 삶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선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의 룰 모두가 함께 달라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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