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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개편, 재정 지속성 및 근로 유인 설계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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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제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국가가 도와야 한다는 공동체의 선의에서 출발한다. 이 출발점은 흔들릴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선의만으로 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를 얼마나, 어떤 조건으로 도울지와 그 비용을 누가 언제까지 부담할지는 처음부터 함께 답해야 할 질문이다.

최근 기초연금 논란은 애초에 그 당연한 원칙을 지키지 않아 지금 그 대가를 뒤늦게 치르고 있다. 기초연금이 도입될 당시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그럼에도 노인의 70%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틀을 만들면서 장기 재정과 다른 복지제도와의 관계를 충분히 따지지 않았다.

복지제도는 일단 한번 수립이 되면 작은 수정조차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근본적인 개편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기초연금도 이제 대상과 급여를 조정하려 하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하후상박이라는 복지제도의 기본과 재정적 균형이라는 원칙 중의 원칙을 고려하기 위한 개혁을 시도하는 것임에도 반대 여론이 심하다. 하지만 그 불만을 피하려 개편을 미룬다면 다음 세대에 더 큰 청구서를 넘기는 일일 뿐이다.

지난 27일 기초연금 개편안 대국민 발표를 1시간 전에 돌연 취소했다고 장안의 화제인 것 같다. 만약 정부는 발표 직전에 개편안의 문제를 발견하여 다른 모든 가능성을 면밀히 살피기 위한 것이라면 발표를 열 번 아니 백 번 취소해도 좋다. 충분한 검토를 거쳐 마련한 합리화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지제도는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도덕적 잣대에 의해 제도의 설계를 하면 절대 안된다. 공동체의 선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지원 대상자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과 가족에게 가장 나은 선택을 하는 합리적 경제주체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의 한국어판 책 제목을 역자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고 붙인 것은 통찰력 있는 번안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현금 지원이 늘어나면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 일을 덜 선택하는 현상은 그들이 국가를 골탕 먹이려 해서가 아니다. 소득이 늘수록 지원이 급격히 깎이는 구조에서는 일하는 편이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는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이런 경제적 유인을 정직하게 반영해야 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근로소득이 늘어도 지원이 완만하게 줄어들도록 설계해 자활의 경로를 열어야 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현금을 안겨 주기 보다는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살려줘야 한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직업훈련·돌봄·건강 지원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일자리 정책이 최선의 복지정책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 구분은 냉정함이 아니라 한정된 재원을 가장 절실한 곳에 쓰기 위한 공정이다. 최근 한국노동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고용참여의지 제고를 위한 소득보장제도의 방향'이라는 세션이 구성되어 관련 연구자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근로능력에 따른 차등화는 중요한 이슈로 지목되었다. 서울시의 디딤돌소득도 시범사업 3단계에서 근로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가족돌봄청년과 저소득 위기가구를 발굴하여 핀셋 지원하는 시도를 한 점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바람직한 복지제도라면 고령·장애·질병으로 근로능력을 잃은 이들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충분하고 예측 가능한 소득을 제공해야 한다. 근로능력이 미약한 사람은 정부 제도에 대한 이해도와 접근성도 낮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을 위해서 제도는 최대한 간결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복잡한 제도는 행정인력만 비효율적으로 비대하게 만들어 결국 국가의 자원만 낭비하게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다. 앞으로 모든 복지제도는 100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50년 계획으로 설계하도록 하자. 현재 세대의 근로능력이 하락하는 기간과 다음 세대의 근로능력이 최대치를 유지하는 기간이 겹치는 정도가 50년 정도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지는 오늘의 불안을 덜어야 하지만, 내일의 부담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두 세대가 감당할 수 있는 재정 전망, 인구 변화에 자동으로 대응하는 기준, 제도 사이의 충돌을 막는 통합 설계가 필요하다. 현세대만 돕는 복지는 결국 그 자녀의 몫을 빌려 쓰는 복지다. 선의가 지속되려면 복지제도는 더 정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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