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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자산배분, 증시 부양보다 국민 노후가 우선
데일리임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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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이후 수년간 침체됐던 극장가에 화색이 돌고 있다. 최근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오디세이'의 흥행 덕분이다.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이렌이 사는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선원들은 그 유혹에 이끌려 항로를 벗어났고, 결국 배가 난파돼 목숨을 잃었다.

오디세우스는 노래를 듣고도 항로를 지킬 방법을 택했다.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의 몸은 돛대에 묶었다. 노래에 홀려 풀어달라고 외치더라도 절대 풀어주지 말라고 미리 명령했다. 눈앞의 유혹에 판단이 흔들릴 것을 알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도록 원칙을 세운 것이다.

국민연금에도 항로를 지키기 위한 돛대가 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장기간 운용하기 위해 미리 정해둔 자산배분 원칙이다. 국민연금은 줄곧 중장기 자산배분 체계를 마련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 비중을 어디까지 조정할 수 있을지를 논의해왔다. 과거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과 같은 고민은 반복해서 등장했다.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일 때 비참여 리스크가 훨씬 크다."

5년 전인 2021년 3월 김용범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현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발언이다. 코스피 상승으로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웃돌면서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을 잇달아 팔던 시기였다. 김 실장은 국내 자본시장이 '레벨업 과정'에 있다며 국내주식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해 4월 SAA 허용범위는 ±2%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확대됐다. 국내주식 목표비중 자체는 그대로였지만, 시장 가격 변동에 따라 목표비중에서 벗어날 수 있는 폭을 넓히면서 당장 주식을 매도해야 하는 부담은 줄어들었다.

국민연금은 올해 다시 국내주식 자산배분 체계를 손봤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1월 국내주식 비중이 허용범위를 벗어나더라도 당장 주식을 팔지 않도록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이어 5월에는 올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높였다.

2021년에는 SAA 허용범위를 넓혔고, 올해는 리밸런싱 유예에 이어 목표비중 자체를 높였다는 점에서 조정 방식은 다르다. 다만 자산배분 원칙을 손보는 과정에서 등장한 논리는 닮아 있다.

5년 전 김 실장은 국내 자본시장이 '레벨업 과정'에 있다고 했다. 올해 정부 역시 상법 개정 등에 따른 '국내주식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 가능성'을 국내주식 비중 조정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

물론 시장이 변하면 투자 전략도 변해야 한다. 국내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고 증시가 성장한다면 국민연금 역시 그 과실을 누리는 것이 가입자의 이익에 부합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정부의 정책자금도, 증시를 떠받치는 안전판도 아니다. 증시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는 있어도 그 성장을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국내 증시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와 가입자의 장기 수익률 제고라는 목표가 같은 방향을 향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일치한다고 전제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논의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면 국민연금은 구조적으로 증시부양 역할을 떠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팔 때마다 국내 증시를 누른다는 비판이 나오고,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연기금의 역할이 거론된다.

그러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원칙은 원칙이 아니다. 국민연금에 시장 안정 역할까지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오히려 당장의 필요에 따라 항로를 바꾸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돛대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자산배분 원칙을 바꾸는 판단의 출발점은 증시 활성화가 아니라 가입자인 국민들의 장기적인 이익이어야 한다. 시장 활성화가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결과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기금운용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최근 국내 증시가 흔들리면서 다시 국민연금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산배분 원칙을 바꾸지 않고 당초 원칙대로 상반기에 조금씩 차익실현을 했다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는 비판이다.

세이렌의 노래가 들릴 때마다 항로를 바꾼다면 돛대를 세워둔 의미가 없다. 국민연금이 묶여 있어야 할 돛대는 코스피가 아니라 국민의 노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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