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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피해 국가배상 책임, 시설 관리 하자 및 예견 가능성
조선비즈
전국 곳곳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침수와 산사태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광복절 연휴 경남 거제·통영을 덮친 극한호우에 이어 지난달 말에도 집중호우 피해가 이어졌다. 특히 거제에서는 아파트 뒤 경사면이 무너지면서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폭우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 주민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서는 단순히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느냐’만으로 배상 책임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공공시설에 관리상 하자가 있었는지, 위험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는지, 피해를 막거나 줄일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지 등이 주요 판단 기준이다.
◇폭우 예상할 수 있었나... 시설 안전성·예견 가능성 따져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가배상법 5조는 도로나 하천 등 공공시설의 설치·관리에 하자가 있어 손해가 발생한 경우 국가나 지자체가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창원지법은 지난 6월 김해 하천 범람으로 피해를 본 주민 등이 경상남도와 김해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자체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024년 9월 19~22일 태풍 ‘풀라산’이 약화한 열대저압부 영향으로 김해에는 427.8㎜의 비가 내렸다. 김해시는 “200년에 한 번 올 만큼 많은 비여서 제방을 정상적으로 설치했더라도 침수를 막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침수가 하천 제방의 설치·관리상 하자 때문에 발생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다만 기록적인 폭우와 김해시가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한 점 등을 고려해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전주지법도 2023년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본 농민이 전라북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산에서 흘러내린 흙과 나뭇가지 등이 배수구를 막아 침수가 발생했는데도 지자체가 배수구 확대나 토사 유입 방지 시설 설치 등 대책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집중호우의 영향을 고려해 책임은 50%로 제한했다.
김경수 법무법인 창경 변호사는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재난 문자가 실제 발송됐는지, 지자체가 어떤 경보·통제 조치를 결정하고 시행했는지에 따라 책임 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며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관련 내부 문서나 조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진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제방·하천 같은 공공시설은 평소 필요한 수준의 안전성을 갖췄는지가 중요하다”며 “시설 자체뿐 아니라 위험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는지, 대피나 통제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지도 판단 대상”이라고 말했다.
◇거제 사고 사유지로 분류되나… 국가배상 책임 여부 논란
거제 사고는 앞선 판례와 다른 쟁점이 있다. 김해·전주 사건에서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하천과 배수시설 등이 문제였지만, 이번 사고의 토사 붕괴 지점은 아파트 단지 부지 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경남도는 사고 원인을 산림에서 발생한 ‘산사태’가 아닌 ‘법면(인공 비탈면) 유실’로 잠정 분류했다. 붕괴한 경사지가 서류상 자연 상태의 산이 아니라 아파트 부지 경계 안에 있는 대지이고 인공적으로 조성됐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최종 분류에 따라 복구비 부담 주체도 달라질 수 있다. 사유지 내 법면 유실로 판단되면 옹벽이나 경사면 복구 비용은 원칙적으로 소유자가 부담하게 된다.
다만 재난복구비 지원 여부와 국가배상 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사유지에 있는 법면이라도 옹벽이나 배수시설을 누가 설치·관리했는지, 지자체에 해당 지역을 조사·점검하거나 위험을 관리할 법적 의무가 있었는지에 따라 국가배상 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
김경수 변호사는 “법면 유실이라는 행정상 분류는 재난복구비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일 뿐 국가배상 책임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인공 비탈면이라도 지자체가 법에 따라 조사·점검하거나 위험을 관리할 의무가 있었다면 이를 하지 않은 데 대한 국가배상 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