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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반도체 잡음 조절해 음성인식 95% 달성
위키트리
반도체에서 골칫거리로 취급받던 ‘잡음(노이즈)’을 오직 정보처리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 손에서 나왔다. KAIST는 8월 16일 재료공학과 김경민 교수 연구팀이 반도체 소자에서 발생하는 전류 잡음을 원하는 수준으로 조절해 서로 다른 주파수의 시계열 신호를 선택적으로 처리하는 뉴로모픽(뇌 모방) 뉴런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사람이 걷거나 팔을 움직일 때 나오는 헤르츠(Hz) 대의 저속 신호와 말소리 같은 킬로헤르츠(kHz) 대의 고속 신호를 하나의 회로로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구팀이 검증한 결과 동작 인식 정확도는 94.8%, 음성 인식 정확도는 95.0%로 나타났다. 연구는 재료공학과 김도훈 박사(Do Hoon Kim)가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8월 5일(현지시각) 게재됐다.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잡음은 신호에 불규칙하게 섞여 정확한 정보 전달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잡음을 최대한 줄이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사람 뇌의 신경세포는 다르게 작동한다. 같은 자극이 주어져도 뉴런은 내부의 확률적 변동 때문에 매번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다. 이런 불규칙성이 오히려 뇌가 다양한 자극과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특성이라는 게 연구팀의 착안점이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반도체에 옮기기 위해 ‘메모리스터’라는 소자를 이용했다. 메모리스터는 전기 자극을 가하면 저항 상태가 바뀌고, 전원이 꺼져도 그 상태를 기억하는 반도체 소자다. 지금까지 메모리스터의 전류 잡음은 예측 불가능한 난수를 만드는 난수 생성이나 확률적 컴퓨팅에 주로 쓰였을 뿐, 필요에 따라 잡음의 특성을 조절하는 기술은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 발견은 메모리스터의 저항 상태가 바뀌면 전류 잡음의 크기와 거동도 함께 달라진다는 점이다. 메모리스터의 저항 상태를 미리 설정해두면 같은 입력이 들어와도 스파이크(신경세포가 정보를 전달할 때 발생시키는 짧은 전기신호와 유사한 신호) 발생 확률과 반응 범위가 달라진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잡음을 단순한 불안정 요소가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 가능한 정보처리 자원으로 다루는 ‘프로그래머블 확률적 뉴런(PPN)’을 구현했다.
이 인공 뉴런은 입력 신호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즉 주파수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메모리스터의 저항 상태만 바꾸면 같은 회로가 Hz대의 느린 사람 활동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드와 kHz대의 빠른 음성 신호를 포착하는 모드로 전환된다. 1kHz는 1000Hz에 해당한다. 회로 구조를 새로 설계하지 않고도 하나의 인공 뉴런이 처리해야 할 신호의 속도에 맞춰 재구성되는 셈이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주파수 대의 신호를 이용해 기술을 검증했다. Hz대의 사람 활동 신호와 kHz대의 음성 신호를 각각 스파이크 신호로 변환해 인코딩하고 분류한 결과, 동작 인식 정확도 94.8%, 음성 인식 정확도 95.0%를 달성했다. 두 결과 모두 하나의 하드웨어 구조로 얻어낸 수치라는 점이 눈에 띈다.
김경민 교수는 “이번 연구의 의의는 메모리스터의 잡음을 단순한 오차나 불안정성으로 치부하지 않고 조절 가능한 정보처리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데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일한 하드웨어를 서로 다른 속도와 주파수의 신호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어, 향후 저전력 엣지 뉴로모픽 시스템의 신호처리 기술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웨어러블 기기나 음성 센서처럼 데이터를 기기 자체에서 처리해야 하는 엣지 환경에서, 센서 단계부터 주파수 특성을 추출할 수 있다면 데이터 전송과 후속 연산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기술이 실제 제품에 적용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단계가 있다. 김 교수는 “실제 제품에 적용하려면 메모리스터를 증폭기·비교기 등 주변 회로와 함께 하나의 반도체 칩에 집적하고, 뉴런 수를 늘리는 확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실제 센서 환경에서 외부 잡음과 불규칙한 입력에도 안정적으로 동작하도록 회로 설계와 인코딩 기술을 다듬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논문 ‘주파수 선택적 시계열 신호 인코딩을 위한 프로그래머블 확률적 뉴런을 구현하는 잡음 조절형 메모리스터(Noise-Tunable Memristor Enabling Programmable Probabilistic Neurons for Frequency-Selective Time-Series Signal Encoding)’로 발표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 및 PIM 인공지능반도체 핵심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반도체 잡음을 없애는 대신 조절해 쓰는 이번 접근이 향후 저전력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설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