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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가 외증조부 독립운동가 진희창, 후손 돕고자 고백
위키트리
빽가는 지난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빽가언니’에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사실 내가 한 번도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꺼내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며 “나의 외증조부님께서 독립운동가였다”고 밝혔다. 이어 “20년 넘게 함께 활동한 멤버들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오늘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빽가의 외증조부는 독립운동가 경림 진희창 선생이다. 빽가는 생전 어머니가 자신에게 “우리 집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다. 어디에 가서도 기죽지 말고 긍지를 갖고 살라”고 당부했다고 회상했다.

빽가는 광복절을 맞아 올린 영상 설명에서도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을 향한 존경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 누리는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되찾아낸 소중한 빛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진희창 선생은 1919년 4월 10일 독립지사 29명이 모인 임시의정원에 의원으로 참석했다. 당시 의정원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헌장을 공포하며 임시정부 수립의 토대를 세웠다. 빽가는 이를 두고 외증조부가 “역사적인 대한민국의 첫 출발 과정”에 함께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지원은 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됐다. 1920년에는 상하이 한인사회의 교민 자치 조직인 대한인거류민단에서 의사원으로 활동하며 교민사회와 독립운동 진영의 재정·운영을 뒷받침했다. 빽가는 무기만큼이나 자금이 절실했던 독립운동 현장에서 외증조부가 보이지 않는 살림꾼 역할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진희창 선생의 이름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등장한다. 당시 상하이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던 김구 선생은 자신을 “거지 중에 상거지”라고 표현하면서도, 진희창을 비롯한 가까운 동지들이 “미운 밥을 주지 않고” 도왔다고 기록했다. 빽가는 이 대목이 특히 가슴에 남았다고 했다. 가장 힘들고 굶주렸던 김구 선생에게 눈치 주지 않고 따뜻한 밥과 거처를 내어주며 인간적인 버팀목이 돼준 인물이 자신의 외증조부였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빽가는 총이나 폭탄을 들고 직접 싸운 독립운동가들뿐 아니라 뒤에서 영수증을 모으고 식사를 챙기며 청사 유지비를 마련했던 이들의 헌신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했어도 임시정부의 살림을 묵묵히 지켜내셨던 경림 진희창 선생과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함께 기억해달라”고 당부한 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영상을 마무리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독립운동가 후손인 걸 이제서야 공개하는 이유가 형편이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라니요. 너무 멋지세요”, “그분의 업적에 누가 될까바 20년도 넘은 방송 생활하시면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태도 멋지십니다”, “이런 걸 자랑해야지”, “이런 명문가 자재였다니”, “진희창 선생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진짜 피는 못 속인다고 빽가님이 좋은 일하시는 걸 물려받으신 것 같네요”, “외증조부님 같은 분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집안은 대부분 성품이 남다르네” 등 반응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