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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통합선발 시행, 성별 아닌 경찰 자격 집중
미디어오늘
여성 경찰은 필요 없다는 여경무용론이 확산되며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를 밀도 있게 다룬 보도 역시 점차 자취를 감췄다. 이러한 언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집중 보도에 나선 기자들이 있다. SBS 뉴스토리팀은 지난 2월 탐사보도 「경찰의 자격: 성별 아닌 능력」을 통해 ‘여경의 자격’이 아닌 ‘경찰의 자격’은 무엇인지 물었다. CBS 씨리얼팀은 지난 8일부터 세 편의 기획기사와 영상을 통해 차별과 혐오에 직면해 온 여성 경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2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각각 보도를 담당한 류란 SBS 탐사보도부 뉴스토리팀 기자와 민소운 CBS 씨리얼팀 기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의 계기는 올해 처음 시행된 ‘순경 남녀통합 선발 제도’였다. 이 제도는 기존에 남녀 정원을 따로 정했던 제한을 없애고 처음부터 끝까지 남녀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체력검사도 윗몸 일으키기, 100m 달리기 등 종목별로 신체능력을 점수 매기던 기존의 ‘종목식’ 검사 대신, 실제 경찰 업무처럼 연속적으로 쉬지 않고 체력을 측정해 통과 여부만 따지는 ‘순환식’ 검사가 도입됐다. 본래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별 구분 모집은 평등권 침해라며 개선을 권고했으나 10여 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던 채용 관행이, 이른바 ‘대림동 여경 사건’ 후 역설적으로 속도가 붙어 올해 처음 시행된 것이다.

또다시 반복된 여성 경찰에 대한 좌표찍기도 계기가 됐다. 지난 6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논란의 수원 인계동 여경’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퍼졌다. 인계동 도로에서 괴한을 제압하는 중 뒤늦게 온 여성 경찰이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비난하는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민 기자는 “씨리얼팀에서 여경 이슈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6월 해당 영상이 터지면서 다같이 분노했다”며 “과거 2년 간의 경찰 출입 시절에도 계속된 문제였기에 이제 더이상 반복되지 않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경’이라는 소재는 언론에선 “어떻게 다뤄도 위험하고 욕 먹을 아이템”(류란 기자)으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었다.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가 반복되고 여경무용론이 확산되면서, 최근 언론에서 이를 정면으로 다룬 보도도 찾기 어려웠다. 언론의 공백은 류 기자에게 더 큰 책임감을 지웠다. 류 기자는 “관심사가 아니어서 안 다루는 측면도 있겠지만, 기자나 한 언론사가 계기 없이 다루기에는 위험 부담이 큰 소재처럼 되어버렸다”며 누군가는 보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취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두 기자는 모두 ‘여경도 잘한다’는 증명에서 벗어나자는 공통된 목표로 취재를 시작했다. ‘여성 경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질문에서 벗어나, 경찰이 되려면 무슨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를 물어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SBS 뉴스토리팀은 기사 제목에서도 ‘여경’이라는 단어를 제외했고, ‘경찰의 자격: 성별 아닌 능력’이라는 제목을 정했다. 류 기자는 여성 경찰의 능력을 묻는 질문을 두고 “실패를 반복하도록 설계된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가 재현한 획일화된 경찰의 모습
뉴스토리와 씨리얼의 보도는 바뀐 남녀 통합선발 제도를 정면으로 다룬다. 제도가 바뀐 후에도 ‘체력검사가 여성이 통과하기에 너무 쉬운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자, 씨리얼팀은 충주에 있는 순환식체력검사 상설센터를 찾아 기자가 직접 체력검사에 도전했다. 180cm가 넘는 건강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CBS 남성 기자가 자신있게 체험에 나섰으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는 “순환식 체력검사가 (이전의 종목식 체력검사처럼) 푸쉬업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장과 직결되는 것 같다”며 “남녀에게 같은 기준이 적용되니 말 나올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여성 경찰에 대한 획일화된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 기자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독일 베를린 경찰 조직 홍보 사진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의 경우 경찰청 홍보자료에 항상 풀메이크업에 정돈된 모습의 여성 경찰이 모델로 등장하고,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이 홍보대사가 된다”며 “홍보 자료는 젠더 감수성 차원에서 적합한지 검토한 후에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획일화된 이미지를 경찰 지휘부 안에서 홍보 이미지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경 욕하면, 치안 나아지나요?”
여성 경찰에 대한 도 넘은 혐오성 댓글은 두 보도에도 여전하다. 남녀 통합선발 소식을 다뤘음에도 ‘이럴 거면 남녀 똑같은 기준으로 뽑아라’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은 것처럼, 보도 내용과 무관한 반응도 많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영상에 대한 좌표를 찍고 몰려와 악성 댓글을 쓰기도 했다. 내용과 사실관계에 상관 없이 여성 경찰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복되는 혐오다.
류 기자는 “실체 없이 혐오에 기대 반복되어 온 논란을 생산적인 논의로 전환하는 것 또한 사회 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말로 뉴스토리 보도를 마무리 지었다. 그는 “이웃끼리 말다툼이 생겨도 달려가는 곳이 지구대이고, 주차 싸움이 생기면 부르는 것도 순경이다. 경찰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 모두가 당사자인데, 그 직종을 혐오하는 게 누구한테 도움이 되나”라며 “혐오에 적절히 대응하며 경찰에 대한 논의를 정확하게 끌고 가기 위해선 많은 주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씨리얼팀 역시 「여경 욕하면, 치안 나아지나요?」라는 질문을 소제목으로 달았다. 민 기자는 “결국 혐오의 비용은 우리가 치르게 된다”며 “혐오는 모두에게 유해하다. 혐오하는 당사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국과 캐나다, 대만 여성 경찰을 인터뷰한 류 기자는 “방송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해외에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사회 전체가 투쟁이나 논쟁을 통해 바꿔나가고 있다는 걸 확인해 조금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민 기자 역시 “영국에서도 최초로 여성 경찰청장이 부임했을 때 여성 경찰 비율이 늘어났다”며 “경찰 조직의 지휘부, 정부 관계자들이 함께 여성 경찰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 기자는 기자로서 혐오에 대응하기 위해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기술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부분들은 예방하면서 조금은 담대해져야 한다. 혐오의 감정 하나하나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가짐도 중요한 것 같다”며 “혐오의 시대에 기사를 쓰기 위해서도 기자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너무 감정 노동하지 않고 회사에서도 제도적 대응 매뉴얼을 갖추면서 한 발짝씩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