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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통합선발 시행, 성별 아닌 경찰 자격 집중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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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찰에게 ‘자격’을 묻는 질문은 새롭지 않다. 2019년 서울 대림동에서 여성 경찰이 취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영상이 ‘논란’이라는 단어로 확산됐고, 현장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한 내용으로 여성 경찰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6월에는 수원 인계동에서 여성 경찰이 괴한을 제압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는 영상이 퍼지며 또다시 ‘여경무용론’이 반복됐다. 남녀를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순경 통합선발 제도가 올해 처음 시작된 후 여성 합격자 비율이 30%를 넘어서자, 또다시 ‘여성에게 유리하게 제도를 바꿨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성 경찰은 필요 없다는 여경무용론이 확산되며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를 밀도 있게 다룬 보도 역시 점차 자취를 감췄다. 이러한 언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집중 보도에 나선 기자들이 있다. SBS 뉴스토리팀은 지난 2월 탐사보도 「경찰의 자격: 성별 아닌 능력」을 통해 ‘여경의 자격’이 아닌 ‘경찰의 자격’은 무엇인지 물었다. CBS 씨리얼팀은 지난 8일부터 세 편의 기획기사와 영상을 통해 차별과 혐오에 직면해 온 여성 경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2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각각 보도를 담당한 류란 SBS 탐사보도부 뉴스토리팀 기자와 민소운 CBS 씨리얼팀 기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경도 잘한다’는 증명에서 벗어나려 시작한 취재

취재의 계기는 올해 처음 시행된 ‘순경 남녀통합 선발 제도’였다. 이 제도는 기존에 남녀 정원을 따로 정했던 제한을 없애고 처음부터 끝까지 남녀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체력검사도 윗몸 일으키기, 100m 달리기 등 종목별로 신체능력을 점수 매기던 기존의 ‘종목식’ 검사 대신, 실제 경찰 업무처럼 연속적으로 쉬지 않고 체력을 측정해 통과 여부만 따지는 ‘순환식’ 검사가 도입됐다. 본래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별 구분 모집은 평등권 침해라며 개선을 권고했으나 10여 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던 채용 관행이, 이른바 ‘대림동 여경 사건’ 후 역설적으로 속도가 붙어 올해 처음 시행된 것이다.
상반기부터 바뀐 방식으로 채용이 시작됐지만 변화를 알리는 대대적 홍보는 미흡했다. 어떻게 해도 ‘논란거리’가 될 주제로 여겨지다 보니 경찰 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 류 기자의 추정이었다. 류 기자는 “어떻게 보면 대국민 서비스인데 국민들이 모른다는 점에서 엇박이 난다고 봤다”며 “논쟁거리이긴 하지만 논쟁의 당사자인 경찰이 이슈화하지 못한다면 언론이 논의의 장으로 가져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다시 반복된 여성 경찰에 대한 좌표찍기도 계기가 됐다. 지난 6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논란의 수원 인계동 여경’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퍼졌다. 인계동 도로에서 괴한을 제압하는 중 뒤늦게 온 여성 경찰이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비난하는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민 기자는 “씨리얼팀에서 여경 이슈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6월 해당 영상이 터지면서 다같이 분노했다”며 “과거 2년 간의 경찰 출입 시절에도 계속된 문제였기에 이제 더이상 반복되지 않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경’이라는 소재는 언론에선 “어떻게 다뤄도 위험하고 욕 먹을 아이템”(류란 기자)으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었다.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가 반복되고 여경무용론이 확산되면서, 최근 언론에서 이를 정면으로 다룬 보도도 찾기 어려웠다. 언론의 공백은 류 기자에게 더 큰 책임감을 지웠다. 류 기자는 “관심사가 아니어서 안 다루는 측면도 있겠지만, 기자나 한 언론사가 계기 없이 다루기에는 위험 부담이 큰 소재처럼 되어버렸다”며 누군가는 보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취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난관은 섭외였다.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방송 매체 특성상 인터뷰이를 찾기 쉽지 않았다. 동행취재를 위해서는 소속 경찰서의 허락과 동료들의 동의도 있어야 했기에 더 어려웠다. 혹여나 보도로 인해 방송에 출연한 여성 경찰을 향한 또다른 공격이 있을까 ‘섭외 전화를 돌리면서도 섭외가 안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씨리얼팀은 ‘장윤기 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진 시점이었기에 섭외가 더 어렵기도 했다. 동행취재를 위해 서울청을 통해 10곳이 넘는 파출소에 연락했지만 한 곳에서만 허락을 했고, 이마저도 한 달이 넘게 걸려 결국 기사 출고가 임박해 담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두 기자는 모두 ‘여경도 잘한다’는 증명에서 벗어나자는 공통된 목표로 취재를 시작했다. ‘여성 경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질문에서 벗어나, 경찰이 되려면 무슨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를 물어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SBS 뉴스토리팀은 기사 제목에서도 ‘여경’이라는 단어를 제외했고, ‘경찰의 자격: 성별 아닌 능력’이라는 제목을 정했다. 류 기자는 여성 경찰의 능력을 묻는 질문을 두고 “실패를 반복하도록 설계된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경도 잘한다’는 건 이 질문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답변이기 때문에 ‘경찰이 되려면 무슨 자격을 갖춰야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갔다”며 “‘여경’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논의를 불러온다. 여기에 빠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방식으로 논의를 끌고 가려면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민 기자 역시 “증명을 되풀이하는 기사와 영상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며 “여성 경찰이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받는 현실을 끝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재현한 획일화된 경찰의 모습

뉴스토리와 씨리얼의 보도는 바뀐 남녀 통합선발 제도를 정면으로 다룬다. 제도가 바뀐 후에도 ‘체력검사가 여성이 통과하기에 너무 쉬운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자, 씨리얼팀은 충주에 있는 순환식체력검사 상설센터를 찾아 기자가 직접 체력검사에 도전했다. 180cm가 넘는 건강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CBS 남성 기자가 자신있게 체험에 나섰으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는 “순환식 체력검사가 (이전의 종목식 체력검사처럼) 푸쉬업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장과 직결되는 것 같다”며 “남녀에게 같은 기준이 적용되니 말 나올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여성 경찰들의 실제 근무 현장도 동행했다. 씨리얼팀은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과 소속 여경들의 근무 현장을 찾았다. 계속해 힘을 써야 해 으레 남성 경찰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경비 업무지만, 종로경찰서 경비과에는 세 명의 여경들이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길지 않은 동행이었음에도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12년차 여경에게 “아 경찰이야? 난 또 옆집 아줌마인 줄 알았어. ‘경!찰!’ 이렇게 (머리에) 붙이고 다녀”라고 말하는 중년 남성도 만났다. 씨리얼팀은 기사에서 “경찰 조직 밖으로 번진 여경에 대한 차별은 보다 진화한 모습이었다”며 “혐오는 일상에 스근히 스며들었고, 때로는 농담을 때로는 호의를 가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SBS 취재팀이 동행한 서울 여의도지구대 4년차 여성 순경의 야간 근무 현장에서는 다양한 업무가 이어졌다. 여성 순경은 한겨울에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지적 장애 아동을 보호하고,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한 뒤 곧바로 실종신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는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으로 결단력과 빠른 상황 판단 능력을 꼽았다. ‘국내 성폭력 수사 마스터 1호’인 대구남부경찰서 곽미경 경장을 인터뷰해 디지털 범죄, 피해자 보호 등 경찰의 전문성이 필요한 다른 영역들도 보여줬다. 곽 경정은 “현대 사회에 어떤 능력을 갖춘 경찰이 필요한지부터 다시 묻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찰의 능력은 성별이 아닌 역량과 전문성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류 기자는 경찰이 완력이 필요한 일만이 아닌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마치 배우 마동석 정도의 덩치를 가져야 하고, 범인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미디어에서 반복된 재현을 통해 굳혀져왔기 때문이다. 류 기자는 “미디어가 경찰은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경찰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라며 “미디어가 하나의 모습으로만 경찰을 재현해 왔던 것에 대해선 반성할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여성 경찰에 대한 획일화된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 기자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독일 베를린 경찰 조직 홍보 사진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의 경우 경찰청 홍보자료에 항상 풀메이크업에 정돈된 모습의 여성 경찰이 모델로 등장하고,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이 홍보대사가 된다”며 “홍보 자료는 젠더 감수성 차원에서 적합한지 검토한 후에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획일화된 이미지를 경찰 지휘부 안에서 홍보 이미지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경 욕하면, 치안 나아지나요?”

여성 경찰에 대한 도 넘은 혐오성 댓글은 두 보도에도 여전하다. 남녀 통합선발 소식을 다뤘음에도 ‘이럴 거면 남녀 똑같은 기준으로 뽑아라’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은 것처럼, 보도 내용과 무관한 반응도 많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영상에 대한 좌표를 찍고 몰려와 악성 댓글을 쓰기도 했다. 내용과 사실관계에 상관 없이 여성 경찰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복되는 혐오다.

류 기자는 “실체 없이 혐오에 기대 반복되어 온 논란을 생산적인 논의로 전환하는 것 또한 사회 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말로 뉴스토리 보도를 마무리 지었다. 그는 “이웃끼리 말다툼이 생겨도 달려가는 곳이 지구대이고, 주차 싸움이 생기면 부르는 것도 순경이다. 경찰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 모두가 당사자인데, 그 직종을 혐오하는 게 누구한테 도움이 되나”라며 “혐오에 적절히 대응하며 경찰에 대한 논의를 정확하게 끌고 가기 위해선 많은 주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씨리얼팀 역시 「여경 욕하면, 치안 나아지나요?」라는 질문을 소제목으로 달았다. 민 기자는 “결국 혐오의 비용은 우리가 치르게 된다”며 “혐오는 모두에게 유해하다. 혐오하는 당사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해외에서 먼저 만들어놓은 변화가 나아갈 길이 되기도 한다. 영국은 50년 전 평등법을 계기로 경찰의 성별 분리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됐고, 지금은 여성들이 경찰 조직에서 최고위직에 오르는 등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경찰은 오는 2030년까지 여성 경찰 비율을 30%까지 높이기 위한 ‘30 포워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 여경 비율이 거의 40%까지 올랐다. 여경에 대한 혐오의 역사는 같았지만, 오랜 시간 조직 내부적으로, 또 사회 전체가 끊임없이 논의하고 투쟁해 이뤄낸 결과다.

영국과 캐나다, 대만 여성 경찰을 인터뷰한 류 기자는 “방송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해외에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사회 전체가 투쟁이나 논쟁을 통해 바꿔나가고 있다는 걸 확인해 조금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민 기자 역시 “영국에서도 최초로 여성 경찰청장이 부임했을 때 여성 경찰 비율이 늘어났다”며 “경찰 조직의 지휘부, 정부 관계자들이 함께 여성 경찰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현직 경찰들로 구성된 자발적 연구모임 ‘경찰젠더연구회’가 여성 경찰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시선에 목소리 내고 있다. ‘대림동 여경 사건’이 확산됐을 당시에도 연구회는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가 아닌 공권력 경시 풍조에 대한 경종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연구회는 이번 SBS 뉴스토리팀과 CBS 씨리얼팀 취재에도 적극적으로 응했다.

류 기자는 기자로서 혐오에 대응하기 위해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기술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부분들은 예방하면서 조금은 담대해져야 한다. 혐오의 감정 하나하나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가짐도 중요한 것 같다”며 “혐오의 시대에 기사를 쓰기 위해서도 기자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너무 감정 노동하지 않고 회사에서도 제도적 대응 매뉴얼을 갖추면서 한 발짝씩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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