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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 연출 안판석 감독 별세, 향년 65세
위키트리방송가에 따르면 안 감독은 지난달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한때 회복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상태가 악화하며 끝내 눈을 감았다. 앞서 지난해에는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이어온 것으로도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가족은 고인과 조용히 작별할 시간을 갖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장례를 비공개로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15일 오전 9시 30분, 장지는 시립승화원이다.
빈소를 다녀간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건 영정 앞에 놓인 햄버거 하나였다. 평소 햄버거를 즐겨 먹던 고인을 떠올린 지인이 가져다 둔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는 이 햄버거와 관련해 안 감독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후배들에게 슬며시 다가가 "우리 햄버거 좀 사다 먹지 않을래? 냉장고에 맥주도 있던데"라며 말을 건네던 소탈한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거장이라 불렸지만 현장에서는 늘 편하게 다가서던 선배였다는 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공통된 회상이다.

안판석 감독은 1961년 태어나 세종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7년 MBC 드라마본부 공채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짝', '장미와 콩나물' 등을 연출하며 이름을 알렸고, 1994년 MBC 베스트극장 '사랑의 인사'를 통해 본격적인 연출가의 길에 들어섰다.
2003년 MBC를 나온 안 감독은 2006년 차승원 주연의 영화 '국경의 남쪽'을 연출하며 스크린에도 도전했다. 이듬해인 2007년에는 일본 작가 야마사키 도요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20부작 드라마 '하얀거탑'을 선보였다. 병원 내부 권력 다툼을 다룬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20.8%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안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제43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연출상을 받았다.
'하얀거탑' 이후 드라마 제작사 드라마하우스 공동대표를 지낸 안 감독은 2012년 신생 채널 JTBC로 자리를 옮겨 김희애 주연의 '아내의 자격'을 연출했다. 중년 여성의 이혼과 자기 성찰을 그린 이 작품은 개국 초 고전하던 JTBC를 일으켜 세운 작품으로 꼽히며 김희애에게 '종편의 잔다르크'라는 별칭을 안겼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한국 사회를 덮치는 내용의 '세계의 끝'을 선보였는데, 방영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는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4년에는 정성주 작가와 다시 손잡고 '밀회'를 내놓았다. 스무 살 피아노 천재와 마흔 살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안 감독에게 두 번째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연출상을 안겼다. 이후로도 '풍문으로 들었소'(2015),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봄밤'(2019), '졸업'(2024), '협상의 기술'(2025) 등을 잇달아 연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2018년에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장소연, 서정연, 길해연, 백지원, 허정도, 이화룡, 김학선 등 그의 작품을 통해 이름을 알린 배우들은 '안판석 사단'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인의 유작은 오는 10월 5일 방송을 앞둔 ENA 새 드라마 '연애박사'다. 추영우, 김소현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로봇연구실에서 만난 두 남녀의 로맨스를 그리며, 지난 2월 28일 촬영을 마치고 편집까지 마무리한 상태로 전해졌다. 제작진 측은 현재까지 방송 일정에 별다른 변동은 없다고 밝혔다.
안 감독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그와 인연을 맺었던 배우와 동료들의 추모가 잇따랐다.
'졸업'에서 안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배우 정려원은 SNS에 "감독님, 아직 믿기지 않는다. 마음의 준비를 해오긴 했지만 아직도 어떤 기분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는 촬영 당시를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전한 뒤, 빈소에서 흘러나온 비틀즈 노래에 끝내 눈물을 쏟았다며 "감독님, 평안하세요"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아내의 자격'과 '밀회'에서 안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배우 김희애도 SNS에 추모글을 올렸다. 그는 "제 연기를 인정해 주시고 소중한 기회를 주신 감독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존경합니다"라며 고인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드라마 '짝'을 통해 20대 초중반을 함께 보낸 배우 김혜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감독님하고는 청춘을 같이 한 연출자와 배우"라며 "굉장히 감각적인 분으로 기억한다. 어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없는, 그 당시로는 드문 연출가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울컥한 듯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며 "'정말 인생이라는 게 알 수 없구나'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밀회'에서 함께한 배우 김혜은은 "감독님께 부끄럽지 않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작품 같이 못해 한스럽기만 합니다. 너무 아까워 가슴이 미어집니다"라며 "부디 천국에서 편히 영면하소서"라고 추모했다. 1987년 MBC 입사 동기인 방송인 백지연도 SNS에 고인의 사진을 올리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세요"라고 애도했다. '졸업'으로 데뷔해 '협상의 기술'에서 첫 주연을 맡은 배우 차강윤은 "존경하는 스승님이자 아버지 같으셨던 안판석 감독님"이라며 생전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하며 안타까움을 전했고, MBC 김수지 아나운서도 "존경하는 안판석 감독님, 감독님의 드라마를 보며 힘든 시절을 견딘 게 여러 번"이라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