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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정책과 체감경기 간극, 고정비 경감 등 실질 대책
우먼컨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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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놓는 정책마다 ‘민생’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민생 안정, 민생 회복, 민생 부담 경감, 민생경제 활성화…. 발표되는 대책만 보면 국민의 생활은 이미 한결 나아졌어야 한다.

그러나 시장과 골목, 가정의 식탁에서 만나는 소비자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지원은 늘었다는데 왜 쓸 돈은 더 줄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거짓말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소비를 늘리고 소상공인을 지원하며 서민의 금융 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은 분명 필요하다. 실제로 정부는 소비쿠폰과 정책자금, 저금리 금융지원, 세제 혜택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해왔다.

정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소상공인 매출 증가와 소비 진작에 일정한 효과를 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문제는 정책의 숫자와 국민의 체감 사이에 너무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경제기관들은 소비와 내수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반도체 수출과 서비스업 호조에 힘입어 경제가 개선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소비도 완만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소비가 늘었다’는 통계가 모든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부 고소득층의 소비 확대와 특정 산업의 호황이 전체 평균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평균은 회복됐지만 누군가의 지갑은 더 얇아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민생 진단은 소비자의 현실과 어긋난다.

소비자는 경제성장률을 들고 장을 보지 않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몇 퍼센트인지 계산하며 병원에 가지도 않는다.

쌀과 채소, 과일과 고기 가격이 얼마인지, 전기요금과 관리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대출이자가 월급에서 얼마나 빠져나가는지를 보고 경기를 판단한다.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안정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낮아졌다는 말은 가격이 내려갔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크게 오른 가격이 이전보다 천천히 오르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1만 원이던 상품이 1만3000원으로 오른 뒤 상승률이 둔화했다고 해서 다시 1만 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와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계는 수백 개 품목의 평균을 계산하지만 소비자는 매일 반복해서 사는 품목의 가격을 기억한다.

식료품, 외식비, 교통비, 전기료, 보험료, 관리비처럼 피할 수 없는 지출이 오르면 전체 물가가 안정돼도 생활은 팍팍해진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2026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당초 전망보다 높은 2.7%로 예상했다. 유가 충격의 직·간접 영향과 경기 개선에 따른 수요 압력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책 당국이 ‘물가 안정’을 말하는 순간에도 가계는 또 다른 가격 상승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생 정책이 국민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부분의 대책이 단기 처방에 머물기 때문이다.

쿠폰을 지급하면 당장의 소비는 늘어날 수 있다. 대출 만기를 연장하면 급한 불도 끌 수 있다. 명절 성수품을 공급하면 특정 기간의 가격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쿠폰을 모두 사용한 뒤에도 식료품 가격은 남고, 만기가 연장된 대출의 원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한시적인 할인과 지원이 끝나면 소비자는 다시 오른 가격과 줄어든 소득 앞에 서게 된다.

정부가 지원책을 발표할 때마다 국민은 자신이 대상에 포함되는지를 검색해야 한다. 소득 기준과 재산 기준, 연령과 지역, 신청 기간과 사용처가 모두 다르다.

정책을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고, 조건을 잘못 이해해 혜택을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책을 만들었다고 해서 국민이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예산을 편성했다고 민생이 회복된 것도 아니다.

정책의 성과는 지원 대상자 수나 집행률이 아니라, 지원을 받은 국민의 고정비가 실제로 줄었는지, 가처분소득이 늘었는지, 빚을 더 내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게 됐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민생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만 고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소득에서 무엇이 지나치게 많이 빠져나가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주거비와 교육비, 의료비, 통신비, 교통비, 금융비용 같은 필수 지출을 낮추지 못한 채 소비만 독려하는 정책은 한계가 분명하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고정비가 오르면 소비쿠폰은 생활비를 잠시 대신 내주는 수단에 그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한 번의 지원이 아니라 다음 달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다.

정부는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말한다. 수출이 늘고 성장률 전망이 올라가며 소비도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진단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반도체 수출과 일부 기업의 실적 개선이 서민의 장바구니까지 곧바로 채워주지는 않는다. 한국은행도 소득여건 개선이 특정 부문에 집중돼 민간소비 회복은 완만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민생을 말하려면 거시경제의 평균보다 국민 생활의 격차를 먼저 봐야 한다. 성장의 과실이 어느 계층과 지역, 어떤 노동자와 자영업자에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필수 지출만 증가하는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지원 정책에서 반복적으로 제외되는 사람은 누구인지 살펴야 한다.

정책의 이름에 ‘민생’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국민이 실제로 민생 회복을 체감하도록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생은 보도자료에 있는 단어가 아니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물건 하나를 다시 내려놓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고, 공공요금 고지서를 받고 한숨 쉬지 않는 일이며, 병원비와 교육비 때문에 대출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의 개수가 아니라 국민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의 개수가 늘어날 때 비로소 민생은 회복됐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름의 민생 대책이 아니다. 국민의 실제 지출 구조를 바꾸고, 일회성 지원이 끝난 뒤에도 생활이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이다.

통계 속 경기가 아니라 장바구니 속 경기, 브리핑룸의 민생이 아니라 식탁 위의 민생을 봐야 한다.

정책은 넘치는데 생활은 더 팍팍하다는 국민의 말에 정부가 답해야 한다. 국민이 정책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책이 아직 국민의 삶에 도착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임학근 우먼컨슈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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