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읽음
코스피 폭등은 수급 착시, 리스크 관리와 현금 확보
최보식의언론
단 하루 만에 지수가 폭발적으로 치솟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거대 반도체 공룡들이 상한가에 육박하는 괴력을 발휘하자 시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내놓은 호실적과 클라우드 성장세가 AI 과잉 투자 우려를 잠재운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장의 뜨거운 열기 뒤편에서 필자가 느낀 감정은 안도감보다는 서늘한 우려였다.
이번 폭등은 자본시장의 체질이 강화되어 얻어낸 성과가 아니라, 한국 증시가 얼마나 극단적인 수급 불균형과 초고변동성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경고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 기현상의 본질은 실적 개선에 따른 정당한 재평가라기보다, 단기 수급의 꼬임이 강제로 풀리며 나타난 기술적 착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실적 하나가 단 하루 만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본질적 가치를 20% 높여줄 수는 없다.
직전 사흘간의 급락장 속에서 하방에 베팅했던 공매도 세력과 선물 매도 포지션은 예상치 못한 호재를 만나자 손실을 막기 위해 비상 차단 성격의 '숏커버링(Short Covering)'을 감행했다.
여기에 외국인과 기관의 패시브 알고리즘 자금이 기계적으로 유입되고, 레버리지 상품의 매수세까지 겹치면서 시장 전체가 '오버 슈팅'을 일으킨 것이다. 주가가 스스로 폭등하자 억지로 사들인 물량이 다시 주가를 올려버린, 비이성적인 수급의 연쇄 폭발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시장의 기초 체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급만으로 솟구친 시장은 언제든 반대 방향으로 똑같이 널뛰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알파벳, 메타 등 타 빅테크의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월가의 회의론은 완벽히 해소되지 않았으며, 고유가·고환율 등 거시경제적 악재와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히 상존한다.
반도체 시가총액 비중이 절대적인 국장 구조상, 해외 뉴스 하나에 전체 지수가 15~20%씩 흔들리는 톱날형 장세는 글로벌 장기 투자자들에게 국장을 안정적 투자처가 아닌 단기 투기장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올라갈 때 알고리즘과 숏커버링이 지수를 끌어올렸듯, 내려갈 때도 기계적 투매와 반대매매가 지수를 밑바닥으로 내팽개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안도의 한숨을 쉰 개인투자자들에게 지금 가장 큰 적은 "이제 진짜 대세 상승장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하는 욕심과 미련이다.
폭락장에서는 공포에 질려 손절하지 못하고, 폭등장에서는 미련 때문에 탈출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 개미투자자들의 오래된 잔혹사다. 지옥 같던 하락장에서 되찾은 숨통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시장이 준 '마지막 탈출용 밧줄'일 수 있다.
지금은 도파민에 취해 추격 매수에 나설 때가 아니라, 차분하게 계좌의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 정리의 골든타임이다. 이번 폭등을 기회 삼아 과도하게 늘려놓은 신용 잔고나 레버리지 포지션을 최우선으로 정리하고, 본전 심리를 내려놓고 목표 단가에 다다르면 기계적으로 물량을 줄여 현금을 확보하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현금이야말로 다가올 하방 변동성에서 계좌를 지켜줄 유일한 방패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의 건강함은 하루에 얼마나 높이 솟구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우상향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번 코스피 18% 폭등이 고통에 신음하던 개인투자자들에게 탈출과 정비의 기회를 제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폭등장이 준 착시와 환호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롤러코스터 장세 이면에 숨은 차디찬 위험을 직시하는 냉정한 판단력이다.
#코스피 #개미투자자 #리스크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