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3 읽음
박꽃의 영화뜰 연재 종료, 독립영화와 사회 현안 조명
미디어오늘
0
2022년 1월 연재를 시작한 영화칼럼 ‘박꽃의 영화뜰’이 4년6개월간의 기고를 마칩니다. 오랜 시간 영화글을 읽어주신 독자께, 그간 이 창구를 통해 소개하려던 영화들이 어떤 종류였으며 그 작품을 경유해 무엇을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는지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작품의 체급을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전체 113편의 칼럼 중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한 글(32편, 28.3%)이 상업영화와 동일한 빈도로 다뤄졌습니다. 지난해 영화관에서 개봉한 전체 영화 10편 중 독립예술영화가 채 2편에도 미치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이 칼럼에서는 독자와 만날 기회가 제한된 영화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 셈이 됩니다. 제작비가 적게 들고 유명 감독이나 배우가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이대로 잊히기엔 못내 아쉬운 작품들이 눈에 밟힐 때마다, 큰 망설임 없이 칼럼의 주제로 소환했던 선택에 따른 결과입니다.
60대 여성(엠마 톰슨)이 성적인 자유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린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2022), 성소수자 딸과 그 동성 연인의 일상을 한 집에서 지켜보게 된 중년 엄마(오민애)의 이야기 ‘딸에 대하여’(2024)에 관해 쓴 칼럼은 개중에서도 순도 높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작품이 소재를 제공했고, 독자들은 성과 소수자 문제에 대한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생각들을 펼쳐주셨습니다. 상업영화에 비하면 자본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성격을 지닌 독립예술영화들은 보다 대담하게 세상의 변화를 다뤄나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평소 입 밖에 내기 까다롭고 예민하게 느껴졌던 사회적 흐름의 일면들을 영화칼럼이라는 대중적인 창구에 기대어 흥미롭게 관찰하고, 진지하게 곱씹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격렬한 댓글 논쟁은 주로 다큐멘터리에서 벌어졌습니다. 대개 다큐멘터리는 일부 선호 관객층을 제외하고는 세간의 관심이 크지 않은 장르이고 개봉작 수 자체도 적습니다. 때문에 전체 칼럼 중 다큐멘터리를 다룬 글이 차지하는 비중도 13편(11.5%)으로 많진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이른바 ‘조국 사태’를 밀착 취재한 ‘그대가 조국’(2022),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건국전쟁’(2024)을 다룬 칼럼에서는 포털사이트 댓글만 각 160여개, 80여개가 넘게 달리며 의견이 폭발했습니다. 통상적인 영화를 다룬 글로서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두 작품 모두에 비판적인 입장이었지만, 그 내용과 상관없이 각자의 논리와 판단으로 무장한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각축장을 벌이는 형세가 됐습니다. 이른바 ‘정치 다큐멘터리’가 모객은 물론이고 온라인상의 발화량 면에서도 이처럼 눈에 띄는 결과를 내는 한, 이후로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다큐멘터리는 계속해서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외 영화 ‘산업’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조망하는 넓은 시야의 분석도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국내 영화계의 불황, 영화제의 잇단 침체, 홀드백 정책, 스크린 독과점, 생성형AI 사용, 빅테크의 영화사 인수합병 등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움직임 안에서 영화산업이 겪게 된 현상에 주목한 글이 전체 중 17편(15.0%)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상업영화 ‘범죄도시4’(2024)와 ‘파묘’(2024)의 개봉주차별 스크린 수를 일일이 비교·대조해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드러낸 글은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해야만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의 합당한 근거가 돼 줬습니다. “시장에서의 모든 독점은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온다”는 당시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영화가 ‘그들만의 예술세계’에 머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현재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길 바랐습니다. 12·3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방송 다큐멘터리 ‘나는 계엄군이었습니다’(2021)와 영화 ‘박하사탕’(1999)이 드러낸 역사적 비극을, 서이초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엔 ‘친구’(2001), ‘바람’(2009),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2022)에 걸쳐 묘사된 우리 학교의 서늘한 풍경들을, 취약한 백인계층 출신으로 미국 부통령이 된 정치인의 맥락을 아시아 국가의 시민으로서 독해하고자 할 땐 그의 자서전을 토대로 연출된 ‘힐빌리의 노래’(2020)를 재차 들여다봤습니다. 우리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이야기를 건넬 방법에 골몰했고, 동시에 그런 고심이 독자에게 가 닿지 않았다는 좌절감을 느낀 순간도 꽤 많았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읽는 사람보다 유튜브 등으로 전파되는 영화에 관한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시대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화려한 시각적 볼거리나 현란한 편집 기술 없이, 그저 단어·문장의 조합과 배열만으로 영화가 비추는 세상사에 대해 복잡다단한 질문을 건네는 것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도 명료한 예술적 소통법일 것입니다. 그간의 영화칼럼을 거쳐 무수한 가지로 뻗어 나갔던 여러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 목소리들이 언제고, 어디에서고 다시금 좋은 영화글과 만나 세상과 즐거운 접점을 형성하기를 소망합니다.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