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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검열” 2주 만에 철회된 ‘혐오음원방지법’, 과제는 남았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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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명 ‘혐오음원방지법’이 문화예술계 반발에 부딪혀 발의 2주 만에 철회됐다. 혐오 표현을 포함한 유해 음원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시대착오적 검열이자 청소년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구체적인 기준 없이 규제만으로 혐오를 막으려는 시도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뒤따랐다. 법안은 철회됐지만 범람하는 혐오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과제는 여전히 남았다. 일시적인 규제보다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통한 보다 장기적 대응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당부가 나온다.

‘혐오음원방지법’은 왜 발의됐나

지난 6일 김현 의원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 10명이 공동발의한 두 개정안의 핵심은 유해 음원의 게시와 유통을 제한하는 것이다. 음악산업진흥법(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유해성을 판단하는 사전심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음반·음원 유통업자가 유통 전 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해 해당 음원이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여부를 자체적으로 검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만일 유해성이 확인되면, 제작자가 청소년인 경우 음반과 음원 유통을 금지시켜야 한다. 청소년이 유해한 음원을 발표하고 SNS상에서 확산되는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목적이다.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청소년에게 명백하고 중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음원의 확산을 인지하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에 긴급 유통 제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방미통위는 정식 심의를 거치기 전이라도 플랫폼에 해당 음원의 처리를 거부·정지·제한하도록 요청할 수 있게 했다. 심의 지연으로 유해 음원이 제재 없이 유통·확산되는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는 장치다.
이번 법안은 혐오 표현을 가사로 한 음원들이 잇따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면서 나오게 됐다. 지난 5월 래퍼 리치 이기(본명 이민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에 고인을 모욕하는 내용의 공연을 개최하려다가 노무현재단의 법적 대응 시사와 공연장 측 대관 거부로 취소됐다. 2006년생인 리치 이기는 미성년자 시절부터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아동 대상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곡들을 발표해왔다. 지난해 1월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여성·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강간, 마약, 살인 등 범죄 행위를 암시하는 내용의 음원을 발매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해당 음원은 SNS뿐만 아니라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다.

김 의원은 이러한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창작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혐오·범죄 조장 음원이 온라인상에 무방비로 유통되며 또래 공동체와 교육 현장,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뒤이어 “미성년자 음원 발매 과정의 검증 장치 부재와 심의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음원 유통사의 책임 있는 자정 노력을 유도하고, 방미통위의 긴급 대응 체계를 구축하겠다”며 제도적 공백을 메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시대착오적 음악 사전 검열 법안” 문화예술계 강한 반대

법안 발의 직후 문화예술 단체들은 연이어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우선 음원을 사전 검열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거셌다. 음반 사전심의제는 음악인들의 철폐운동으로 1996년 폐지됐고, 같은 해 헌법재판소도 음반과 비디오에 대한 의무적 사전 심의가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검열이라며 위헌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작가노동조합·한국영화배우조합 등 10개 단체가 소속된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10일 성명에서 두 법안을 “시대착오적 음악 사전 검열 법안”으로 규정한 뒤 “검열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온 저항의 역사를 모욕하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연대, 블랙리스트 이후 등 7개 단체도 지난 13일 공동논평에서 “시대마다 ‘유해성’, ‘사회질서’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창작물이 규제돼 왔으며 창작자의 자기검열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두 법안 역시 사전 검열을 제도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구체적 기준이 미비해 유해성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문화연대 등 7개 단체는 “모호한 유해성 판단을 근거로 유통 제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행정기관의 자의적 판단과 플랫폼의 과잉 대응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역시 “자의적인 유해성 판단을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는 심각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보호의 명분으로 청소년의 창작과 표현을 억압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청소년이 문화적 경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토론할 권리보다, 국가가 표현을 사전에 차단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이다.

근본적으로는 규제와 금지로 혐오를 막겠다는 방식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있다. 지난 20일 미디어사회운동센터 WA는 그 사례로 지난 7일 시행된 일명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최근 발의된 ‘일베 금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함께 언급했다. WA는 논평에서 “22대 국회가 무수한 ‘방지법’과 ‘금지법’을 양산하고 있다”며 “그간의 무수한 규제 실패 사례를 뒤로 한 채, 강력한 금지와 차단 조치로 혐오와 차별을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발상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규제의 방식은 또다른 혐오를 재생산할 가능성도 높다. 권순택 WA 센터장은 21일 미디어오늘에 “혐오는 맥락이다. 특정 누군가를 혐오하고자 한다면 우회할 길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의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제 인터넷상에서는 ‘광주에서 커피 마셔야지’라는 말로 혐오를 한다”며 “특정 표현만을 문제 삼아 ‘금지’ 딱지를 붙이는 접근은 또다른 혐오표현으로 양산될 수 있다”고 짚었다. 결국 혐오를 막는 효과는 불분명한 채, 국가와 행정기관이 대중문화 향유를 통제하는 권한만 확대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법이 통과되면 대중문화를 통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강화될 수 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법안은 철회됐으나 ‘혐오 대응’ 과제는 남았다

지난 20일 김 의원은 시민사회 의견을 수용해 두 개의 법안을 모두 철회했다. 이날 김 의원은 반대 성명을 낸 단체들에 “음원 유통사에 대한 규제가 창작자에 대한 제한으로 이어지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하며,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고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 철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창작자와 음악산업 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법안은 철회됐지만 범람하는 혐오 표현을 막아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법안에 반대했던 시민단체들 역시 접근 방식에는 우려를 나타냈으나, 혐오 확산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을 표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번 법안에 대해 “공적으로 대응하려고 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 뒤 “대응이 정교하고 섬세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반발심만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와서 아쉽다. 공청회에서 의견을 들어 보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고, 실효성을 갖기도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혐오 표현이 포함된 음악에 대한 대중음악계 내의 비판과 자정이 불충분했다는 의견도 있다. 서정민갑 의견가는 “개별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은 많지만 한 목소리로 비판하지는 않았다”며 “자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말하는 건 모순적”이라고 말했다.

개별 영역이나 특정 표현을 규제하는 형태가 아닌, 혐오에 대응하기 위한 제대로 된 기준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국회 차원에서는 혐오가 발생하는 토양을 분석하고 혐오 대응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일시적 규제가 아닌, 각 분야의 정책을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구조적 대응방안도 중요하다. 서정민갑 의견가는 “혐오 표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는 게 근본적 문제”라며 “이번 기회에 김현 의원실 등에서 혐오표현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대응 방안에 대한 중장기적 의견 수렴과 차별금지법, 헤이트스피치 금지법 등 법안을 마련하는 치밀한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혐오와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확립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결국 시민사회 요구에도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반복된다. 권순택 센터장은 “아이러니한 건 혐오표현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국회”라며 “한국사회가 혐오표현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선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정민갑 의견가도 “중요한 건 인식의 틀을 합의해내려는 노력이다. 5·18 ‘광주사태’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광주항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표현을 합의한 것처럼, 어느쪽에서 100%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음악계 내에서는 예술가들이 어떤 작품을 지향하고 지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보다 많이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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