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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해직 언론인 국가 상대 손배소, 진상규명 과제
미디어오늘
이는 전두환씨가 1988년 11월23일 오전 백담사로 가기 전 서울 연희동 집 앞에서 발표한 입장문 중 일부다.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취재·보도하지 못하도록 검열·제작 거부에 나선 언론인들을 집단으로 해고하고, 권력의 입장에서 통제를 용이하게 하려 언론사들을 통폐합한 것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두환 정권 시절 해직 언론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적절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80년에 해직된 언론인들의 모임인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80해언협) 소속 언론인과 유족 등 35명은 국가를 상대로 46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첫 변론기일이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에서 열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원고별로 피해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고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입장인데 80해언협 측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하고 개별 피해 사실을 추가로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진실화해위에서 진실이 규명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20일 국회도서관에서 ‘80년언론인해직의 실행자들과 헌정사적 의미’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1986년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감옥에 다녀온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전두환 내란세력, 내란을 준비했던 박근혜 정권과 내란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윤석열 등을 거론하면서 “내란세력은 사전 언론검열과 비판언론 축출 이 두 가지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전두환 세력은 1979년 10월27일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해 1981년 1월24일까지 1년3개월간 계엄을 유지했다. 김 전 기자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보도처 산하에 보도검열과를 설치했는데 이 기간 총 108만5096건을 사전검열했다. 특히 5·18광주민중항쟁이 있던 1980년 5월19일부터 6월4일까지 보도검열단이 본 기사는 총 1만2212건인데 이중 777건이 전면삭제, 933건이 부분삭제됐다. 김 전 기자는 “이미 언론사에서 검열 지침에 의해 기사를 제작하는데 이걸 거쳐 나온 기사를 대상으로 검열을 했기 때문에 언론사 내 데스킹 과정에서 삭제된 기사는 별도”라고 설명했다.
비상계엄 당시 보도검열단장을 맡았던 고 이병찬 예비역 대령이 보관하고 있던 검열자료가 그의 아들인 이민규 중앙대 교수를 통해 한국일보에 공개됐다. 해당 자료를 보면 검열로 삭제된 기사 중 정치기사를 분석한 결과 3대 타깃을 설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김영삼 등 야권 정치지도자, 10·26사태와 12·12 군사반란, 개헌 논의 등이다. 김영호 한국일보 해직기자는 이날 토론에서 유신시절 보도통제를 설명하면서 “김대중·김영삼은 금기어였던 까닭에 DJ, YS, 동교동, 상도동 등 일종의 상징어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야당 지도자에 대한 보도통제는 독재정권 내내 이어진 것이다.
언론 장악의 상징 ‘K-공작계획’
전두환 일당의 언론장악 시도에는 언론사 발행인에 대한 협박과 언론사 통폐합, 검열·제작 거부에 나선 언론인에 대한 탄압 등 다양한 사례가 있지만 상징적인 건 전두환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인 ‘K-공작계획’이다. 여기서 K는 왕을 뜻하는 King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에서 공개됐고 1996년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재판에서 증거로 제시된 문건인데, 당시 정치세력을 ‘민주화 위주’와 ‘안정 위주’ 두 가지로 나누고 ‘안정 위주’를 다시 ‘안보중점’과 ‘경제중점’으로 구분해 국민여론이 ‘민주화가 우세’하고 ‘안보 중점의 안정세력의 열세’인 상태이면서 ‘경제중점의 안정세는 잠재’ 상태라고 진단했다.

진상규명이 필요한 언론인 집단 강제해직 사태
이러한 계획 하에서 언론인에 대한 집단적 강제 해직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김 전 기자를 비롯해 많은 해직언론인들은 ‘언론대학살’로 규정하고 있다. 일괄 사표 후 선별적으로 사표를 수리하는 방식은 전두환 일당의 특혜를 받은 언론사 사주들이 평소 맘에 들지 않았던 언론인을 내쫓는 수단으로도 악용됐다.
김준범 전 TBC 기자(해직기자, 이후 중앙일보로 복직)는 이날 지정토론에서 앞으로 진실화해위나 재판 등에서 규명돼야 할 쟁점을 정리했다. 김 전 기자는 집단 해직의 책임자로 문화공보부 차관,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을 지낸 허문도의 역할을 밝혀내는 게 중요하며 언론사 내에서 해직자 명단 작성에 도움을 준 이들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해직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취업제한 조치가 있었는데 관련 조사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대체로 해직자들은 80년 하반기에 집단 해직을 당했다가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88년 상반기에 복직했다. 이 역시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이 벌어졌다는 대표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끝으로 해직언론인 고 박실 기자의 유가족인 박석원 한국일보 기자는 이날 지정토론에서 “반세기전 사면 받은 전두환은 진심어린 사과와 사죄 없이 현세대로 부활해 다시 국민을 배반하고 있고 윤석열과 그 세계관을 함께하는 집단이 대한민국을 짓밟지 못하도록 여론이 경계하고 각성할 때”라며 “신군부의 내란과 학살에 치를 떨었던 민초들, 윤석열 내란에 들고 일어난 국민들 모두가 연대해 두 눈을 부릅뜨길 지지하고 호소한다”고 한 뒤 “세대를 뛰어 넘는 그 노력의 한복판에 80년해직언론인의 명예회복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