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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희, 한일 공동 창작 연극 조세이 탄광으로 비극 조명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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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유요섭 인턴기자】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는 이질적인 콘크리트 구조물이 우뚝 서 있다. ‘피야’라 불리는 이 굴뚝은 수심 20m 아래에 갱도를 파고 석탄을 채굴했던 조세이 탄광의 흔적이다. 이곳은 84년 전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몰사고로 희생된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유해 수습을 미루는 사이 희생자들은 오랜 시간 바닷속에 남겨졌다.

하지만 조세이 탄광을 둘러싼 이야기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올해 처음으로 6월 29일이 ‘광부의 날’로 지정돼 국가 차원의 첫 기념행사가 열린 가운데 한·일 양국에서도 조세이 탄광 희생자들의 유해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5월 이재명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희생자 유해의 공동 발굴과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 오랜 시간 미뤄져 온 진상 규명과 유해 수습에도 전환점이 마련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바닷속에 갇힌 채 생을 마감한 조선인 광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조세이 탄광-살고 싶었다」가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서울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한국 극단 ‘58번국도’와 일본 극단 ‘온천드래곤’이 공동 제작하고, 배우 고수희가 예술감독을 맡아 잊혔던 역사적 사건을 한·일 양국의 시선으로 무대에 풀어냈다.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작품이 던진 질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극단 58번국도는 배우 고수희가 2023년 설립한 일본 희곡 전문극단이다. 데뷔 27년 차 배우인 그는 연출가 ‘나옥희’로도 활동하며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희곡을 발굴해 무대에 올리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배우와 연출가, 예술감독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고수희 극단 58번국도 대표를 만나 「조세이 탄광-살고 싶었다」의 제작 과정과 한·일 공동 창작의 의미, 역사를 오늘의 이야기로 만드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Q. 「조세이 탄광-살고 싶었다」는 한·일 공동 창작 연극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많은 역사적 비극 중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에 주목한 이유는.

조세이 탄광은 조선인 광부와 일본인 광부가 바닷속에 함께 갇혔던 공간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조선인과 일본인의 처지는 달랐다. 사망자 183명 가운데 조선인은 136명이었는데 상당수는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위험하다고 느껴도,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바닷물이 차오르던 그 갱도 안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벗어날 수도 있었고 누군가는 애초부터 벗어날 수 없는 구조였지만, 결국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해진 비극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다.

제가 주목한 건 그 지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한·일 협력 프로젝트의 첫발을 떼는 작품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구조적 차이를 지우지 않고 정직하게 껴안은 채로 만들어야만 이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Q. 그동안 한·일 연극 교류는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창작 단계부터 함께하는 협력 프로젝트는 처음이다.

「조세이 탄광-살고 싶었다」는 제가 극단 58번국도를 설립할 때부터 꿈꿔온 한·일 예술 협력을 처음으로 실현한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한·일 연극 교류는 대부분 완성된 작품을 서로의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무엇을 이야기할지부터 어떤 장면을 넣고 뺄지까지, 작품의 기획과 창작 전 과정을 두 극단이 함께 논의하며 완성했다.

창작 과정에서 의견이 부딪히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 자체가 이번 협력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시선과 생각을 끝까지 이야기하고 조율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한·일 공동 창작이었기 때문이다.

Q. 일본 희곡 전문극단인 58번국도를 설립한 계기는.

2008년 재일교포 가족의 애환을 다룬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에 출연한 것이 계기였다. 그 작품을 통해 한국 창작극과 닮아 있으면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일본 희곡의 매력에 빠졌다. 일본 희곡은 감정을 직접 폭발시키기보다 침묵과 여백 속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절제된 표현 방식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당시만 해도 한국 무대에서 일본 현대희곡을 꾸준히 소개하고 다루는 극단은 없었다. 희곡을 직접 번역해서 공연으로 올리는 일은 더욱 생소했다. 그때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희곡을 한국적으로 해석해 무대에 올려보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고 마침내 2023년에 극단 58번국도를 설립했다.

극단 이름 ‘58번국도’는 오키나와 섬에 있는 실제 도로에서 따왔다. 섬들을 잇는 길처럼 배우와 연출가, 관객을 연결하고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을 잇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
Q. 배우 고수희이자 연출가 ‘나옥희’로도 활약 중인데, 이번 작품에는 고수희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세이 탄광-살고 싶었다」가 한·일 협력 프로젝트의 첫 작품인 만큼, 두 극단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작품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출이 아닌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

또 배우로 대중에게 알려진 ‘고수희’라는 이름을 내걸고 참여해야 작품에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연출가 ‘나옥희’가 아닌 본명인 ‘고수희’로 참여한 이유다.

Q. 배우 고수희와 연출가 나옥희, 예술감독 고수희가 연극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가 궁금하다.

배우 고수희로 무대에 오를 땐 오직 배역에만 집중한다. 극 전체의 구조나 다른 배우들의 동선보다 맡은 인물에만 몰입한다. 가장 좁지만 동시에 가장 깊이 파고드는 순간이다. 연출가 나옥희는 정반대다. 무대 전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봐야 한다. 배우 개개인의 감정보다 그 감정들이 서로 어떻게 부딪히고 쌓여서 관객에게 도착하는지를 계산한다. 배우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나만의 시선과 선택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예술감독 고수희는 또 다르다. 나를 앞세우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감각이 부딪힐 때 이를 조율하는 역할이다. 작품이 처음 지향했던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 결국 배우, 연출가, 예술감독 모두 같은 무대를 향하면서도 위치와 시선이 완전히 다르다. 배우가 가장 좁은 시선으로 한 인물에게 강하게 집중한다면 예술감독은 가장 넓은 시선으로 작품 전체를 바라보며 모든 과정을 이끌어야 한다.

Q. 예술감독으로서 이번 작품에서 어떤 부분에 가장 집중했는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조세이 탄광이라는 소재가 지닌 역사적 무게를 놓치지 않는 일이었다. 이 사건이 단순히 감상적으로만 흘러가거나 혹은 기계적인 고발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했다. 강제동원과 희생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분명하게 담아내면서도,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감정과 온도를 함께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시라이 케이타가 일본인이다 보니 우리가 볼 때와는 미묘하게 시선이 다른 지점이 있었다. 반대로 한국 배우들이 희생자를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술감독으로서 이 차이를 미리 짚어내고 양쪽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자 했다.
Q. 조세이 탄광의 일본인 희생자들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설득력 있게 다루는 일이 어렵진 않았나.

가장 조심스러웠던 지점이다. 일본인 희생자들은 바닷물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갱도 안으로 밀어 넣은 구조에 속해 있던 이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을 온전한 피해자로만 그리지도, 반대로 단순한 가해자로 규정하지도 않으려 했다.

「조세이 탄광-살고 싶었다」가 조명하고자 한 건 그들이 어느 편에 속해 있었는지보다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다. 같은 일본인 노동자라도 조선인 동료를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누군가는 침묵했고, 누군가는 방관했고, 누군가는 작은 친절을 베풀었을 수도 있다. 인물마다 이러한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정함으로써 관객이 ‘일본인은 모두 가해자다’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결론짓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자칫하면 ‘가해의 구조’를 흐리게 만들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답은 등장인물의 구체성에 있었다. 구조를 놓지 않으면서도 탄광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지우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이 끝까지 지키고자 한 태도였다.

Q. 작품 내에서 한국과 일본의 배우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며 작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부터 배우들은 각자의 모국어로 연기하기로 했다. 조세이 탄광에 있던 사람들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결국 같은 공간에서 함께 죽음을 맞았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던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같은 공포와 절망 속에 무너져 내리는 마지막 순간을 강렬하게 보여주고 싶었고, 모국어 사용은 그 의미를 담기 위한 중요한 장치였다.

물론 두 언어를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호흡하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 배우와 일본 배우는 대사의 리듬도, 감정을 쌓아가는 방식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없애고 하나의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은 오히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리듬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한 장면을 두고도 몇 번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관점의 차이를 공유하며 자연스레 호흡을 맞춰나갔다. 서로의 차이를 억지로 봉합하지 않고 터놓고 이야기한 것이 오히려 작품을 더 단단하게 만든 셈이다.

Q. 이번 작품을 위해 일본 야마구치현 조세이 탄광을 사전 답사하기도 했는데. 직접 마주한 현장은 어땠나.

자료나 기록만으로는 조세이 탄광이라는 공간을 무대 위로 온전히 옮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사전 답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갱도 입구가 있던 자리에 실제로 서 보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먹먹함이 밀려왔다. 활자로 사고를 접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었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회원들도 직접 만났다. 일본인임에도 오랫동안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자료를 모아 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세이 탄광」에 임하는 책임감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번 작품을 가볍게 만들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생긴 순간이었다.

Q. 가장 인상 깊은 인물과 대사를 각각 꼽는다면.

극 중 가장 어린 소년인 ‘양해’가 기억에 남는다. 구조를 기다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양해가 일본인 감독관에게 “어른도 죽는 게 무섭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어린아이가 던지는 그 질문은 곧 작품 전체가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 물음에 일본인 감독관이 건네는 답도 깊이 남아 있다. “어른도 무섭다. 어른은 덩치만 큰 어린애다.” 이 대사가 「조세이 탄광」을 관통하는 한 줄이라고 생각한다. 국적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 구도도 물이 차오르는 갱도 안에서는 의미를 잃고 결국 죽음 앞에 선 사람들만 남기 때문이다.

Q. 일본과 한국에서 연이어 공연을 성료했다. 관객들이 보인 반응은 각각 어땠나.

두 나라 관객들의 반응이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한국 관객만큼이나 일본 관객도 이러한 사고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하더라. 일본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역사책이나 뉴스가 하지 못하는 일을 연극이 해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서울 공연에서는 극장 로비에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공연이 끝난 뒤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헌화하는 모습을 봤다. 이를 보며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방식은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과 숫자로 전달되는 역사는 관객의 머리에 잠깐 머물다 지나가지만, 무대 위에서 한 인물의 얼굴과 목소리로 전달되는 순간 그 역사는 관객의 마음과 몸에 남는다. 잊혔던 사람들을 관객 스스로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이 연극이 가진 힘이다.

Q. 매년 6월 29일이 ‘광부의 날’로 지정되어 올해 첫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번 공연 일자(6월 26일~28일)와도 가까웠는데, 이를 알고 있었는지.

사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듣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극단은 일제강점기에 바다 밑에서 스러진 광부들의 이야기를 하고, 비슷한 시기에 국가에서도 처음으로 광부를 기억하는 날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동안 외면해왔던 노동과 희생의 기억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이 아닐까. 그 흐름에 우리 작품도 함께 할 수 있어 뜻깊다.
Q. 조세이 탄광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관객들이 갱도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기를 바랐다.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마지막 순간에는 다들 똑같이 살고 싶었던 인간임을 전하고 싶었다.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기억을 이어가는 일 역시 의미가 있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분명 가해와 피해의 구조가 존재하는 아픈 역사다. 그 사실을 흐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죽어간 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비로소 국적을 넘어선 평범한 한 인간이 보인다. 복잡하게 뒤얽힌 한·일 관계 역시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다면 매듭이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책임과 반성을 전제로 하되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한 덩어리의 가해자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함께 만든 한국과 일본의 두 극단처럼, 한·일 관계의 미래 또한 ‘사람 대 사람’의 만남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자리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거창한 화해의 선언이 아닌 그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대화로 장벽을 허물어 나가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한·일 관계의 지향점이자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화해의 메시지’다.

Q. 내년에 선보일 한·일 공동 창작 연극의 두 번째 프로젝트에는 어떤 이야기를 다룰 예정인가.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사회문제를 다뤄보자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단계다. 이번 작품이 과거의 역사를 함께 마주하는 작업이었다면, 내년에 선보일 작품은 현재 두 나라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로 시선을 옮겨보려 한다. 예를 들자면 고령화 문제 등을 생각하고 있다.

Q. 고수희 예술감독과 극단 58번국도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오키나와의 58번 국도가 섬과 섬을 잇듯이 극단 58번국도는 한국과 일본, 배우와 관객,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이 되고 싶다. 이를 위해 지금처럼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계속 발굴해서 무대에 올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조세이 탄광이 그랬듯 누군가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질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한·일 양국의 예술가들이 그 이야기들을 함께 연극으로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창구로서 58번국도가 자리잡길 바란다.

저와 58번국도의 궁극적인 꿈은 하나다. 모두가 연극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국적도, 언어도, 지나온 역사도 다른 사람들을 58번국도가 같은 무대 위, 같은 마음으로 만날 수 있게 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58번국도가 꿈꾸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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