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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페론 (Eva Perón)

에바 페론(Eva Perón)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애칭인 '에비타(Evita)'로 불리며 성녀와 다름없는 사랑을 받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퍼스트레이디이자 정치인입니다. 가난한 시골의 사생아로 태어나 영부인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자궁암으로 인해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며 불꽃 같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밑바닥에서 피어난 라디오 스타]
•불우했던 유년 시절: 1919년 시골 마을의 가난한 가문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차별과 빈곤을 겪으며 자랐습니다.
•상경과 연예계 성공: 15세의 나이에 배우의 꿈을 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했습니다. 단역 배우와 모델을 거쳐 라디오 성우 및 드라마 배우로 크게 성공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습니다.
[후안 페론과의 만남과 '에비타 신드롬']
•운명적인 만남: 1944년 지진 피해 구호 자선 행사에서 당시 노동부 장관이던 육군 대령 후안 페론(Juan Perón)을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노동자 계층의 영웅: 1945년 결혼 후 남편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소외된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동반자로 자처하며 파격적인 대중 연설로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남편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영부인을 넘어선 정치적 영향력]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지: 자신의 이름을 딴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하여 병원, 학교, 고아원을 짓고 빈민들에게 현금과 일자리를 나누어 주는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펼쳤습니다.
•여성 참정권 획득: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초로 여성 투표권을 법제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여성페론주의당을 창설해 여성의 정치 참여를 이끌었습니다.
•국가의 정신적 지도자: 1951년 부통령 후보로 추대되기도 했으나 군부의 반대와 암 투병으로 사퇴했고, 사후 의회로부터 '국가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공식 칭호를 받았습니다.
[사후의 비극과 엇갈리는 평가]
1952년 그녀가 사망하자 아르헨티나 전역은 거대한 슬픔에 잠겼으며 한 달 동안 국장급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이후 군부 쿠데타로 페론 정권이 무너지자, 정적들은 대중의 추모 열기를 두려워하여 그녀의 미라(방부 처리된 시신)를 탈취해 이탈리아 등으로 빼돌리는 수난을 겪게 했습니다. 시신은 방랑 끝에 1970년대가 되어서야 고국으로 돌아와 레콜레타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녀는 뮤지컬 《에비타》와 불후의 명곡 《Don't cry for me Argentina(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를 통해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