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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성 고통 순위, 돈보다 힘든 1위는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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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예순을 넘긴 여성들의 삶은 겉으로 보면 평온해 보인다. 자녀들은 장성해 제 갈 길을 가고, 수십 년 이어온 살림살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 평온함 뒤에는 젊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이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고통의 순위가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 노년의 가장 큰 걱정으로 돈을 꼽지만, 정작 60세를 넘긴 여성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따로 있다. 실제로 노년의 삶을 오래 관찰해온 이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돈 없고 가난한 게 낫지..."라는 말까지 나온다. 60세 이상 여성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들을 5위부터 1위까지 역순으로 짚어본다.
건강의 쇠퇴다. 무릎이 시리고, 어깨가 결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 마디가 뻣뻣하다. 젊은 시절 밤을 새워 김장을 하고 제사 음식을 장만하던 몸이 이제는 시장 한 바퀴만 돌아도 지친다. 문제는 몸의 변화 그 자체보다, 마음과 몸의 간극에서 오는 상실감이다. 마음은 여전히 40대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많은 여성들은 처음으로 '늙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폐경 이후 뼈가 약해지고 근육이 빠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평생 가족의 건강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의 몸은 뒷전이었던 세대이기에, 60대에 접어들어 한꺼번에 몰려오는 몸의 신호는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 항목이 5위에 머무는 이유가 있다. 몸의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을 이 세대 여성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이기 때문이다. 병원에 다니고, 운동을 하고, 약을 먹으며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뒤에 나올 항목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사회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존재감이다. 젊은 시절에는 어딜 가나 '아주머니' '어머님' 소리를 들으며 나름의 자리가 있었지만, 예순을 넘기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식당에서도, 병원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자신을 향한 말투가 어딘가 건성이고, 뭔가를 물어보면 "그건 인터넷으로 하셔야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은행 창구는 줄고,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면 뒤에 선 젊은 사람들의 시선이 등에 꽂힌다. 세상이 자신을 '느리고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는 감각, 이것이 이 세대 여성들이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겪는 상처다.

가정 안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 자연스럽게 의견에서 배제되고, 자식들은 "엄마는 몰라도 돼"라는 말로 대화를 끊는다. 평생 집안 살림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져온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의논의 대상이 아니라 통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좋은 뜻에서 하는 배려라 해도, 당사자에게는 '이제 내 판단은 필요 없다'는 선고처럼 들린다.
이 감정이 유독 아픈 이유는, 무시가 노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대놓고 모욕을 주면 화라도 낼 수 있지만, 은근한 배제와 건너뛰는 시선은 항의할 대상조차 없다. "내가 예민한 건가"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다가 결국 입을 닫게 된다. 말수가 줄고, 밖에 나가는 일이 줄고, 새로운 것을 배워보려는 시도 자체를 접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항목이 4위에 머무는 것은, 세상의 시선은 어디까지나 '남'에게서 오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뒤에 나올 항목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고통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역할의 상실이다. 수십 년간 이 여성들의 하루는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 힘들었지만 그 모든 일에는 '내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자녀가 독립하고 나면 그 역할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아침에 눈을 떠도 차려줄 밥상이 없고, 챙겨줄 사람이 없다. 이른바 '빈 둥지'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남는 시간은 많아졌는데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는 상태, 평생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려온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이름 석 자만 남은 채 서 있는 상태가 된다. 문제는 이 상실감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밥을 굶는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기에, 주변에서는 "이제 편해졌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경험이다. 은퇴한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면서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 겹치면, 역할은 사라졌는데 노동만 남는 이중고가 되기도 한다.
자녀와의 단절이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대다. 자신은 낡은 옷을 입어도 자식 학원비는 아끼지 않았고, 자식 결혼 자금을 위해 노후 대비를 포기한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그렇게 키운 자식이 명절에나 얼굴을 비추고, 전화도 먼저 걸어오지 않을 때, 그 서운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더 아픈 것은 이 서운함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식에게 직접 말하면 부담을 주는 것 같고, 주변에 말하면 자식 흉이 되는 것 같아 속으로만 삭인다. "바쁘겠지" "제 살기도 힘들겠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자식의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기만 하다. 손주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지만, 손주가 크고 나면 그 연결고리마저 약해진다. 자식과의 관계는 돈으로도, 노력으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어려움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온다.
60세 넘은 여성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앞서 나온 모든 항목의 끝에 자리한 감정이기도 하다. 몸이 아파도 곁에서 물 한 잔 떠줄 사람이 없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생기고,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나눌 사람이 없는 상태. 이것이 노년 여성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가장 큰 고통이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오래 산다. 이는 곧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는 기간이 길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우자와 사별한 뒤 찾아오는 적막함,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거나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좁아지는 인간관계, 그 속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감각은 어떤 물질적 결핍보다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가난은 견딜 수 있다. 아껴 쓰고, 일을 하고, 도움을 청하면 된다. 그러나 외로움은 다르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누구에게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돈이 있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그 외로움은 더 사무친다. "차라리 돈 없고 가난한 게 낫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라, 혼자 남는 시간의 무게를 겪어본 사람들의 실감에서 나온 표현이다. 외로움이 길어지면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말수가 줄고, 말수가 줄면 더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는 점도 노년의 외로움이 무서운 이유다.

그래서 노년의 삶을 오래 지켜본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노후 준비에서 돈만큼, 아니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자주 연락하는 친구 한두 명, 정기적으로 나가는 모임 하나, 매일 인사를 나누는 이웃의 존재가 노년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복지관, 경로당, 종교 모임, 취미 교실처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어떤 재테크보다 든든한 노후 대비가 된다. 자녀 입장에서도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용돈이 아니라 전화 한 통, 밥 한 끼일 수 있다는 사실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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