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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베르데, 아르헨에 석패하며 월드컵 32강 돌풍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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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를 펼쳐 아프리카 서쪽 바다를 짚어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작은 점들의 나라. 인구는 서울 한 개 자치구 수준에 불과하고 국토는 제주도 두 개를 겨우 넘는다. 이름조차 낯설던 대서양의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를 통째로 흔들었다.
카보베르데는 3일(현지시각) 미국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32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에 2-3으로 졌다. 세계랭킹 1위이자 전 대회 우승팀을 상대로 연장 종료 직전까지 승부를 알 수 없게 만든 이 명승부는 첫 월드컵 무대에 오른 이 나라가 어떤 팀인지를 세계에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앞서 조별리그에서도 카보베르데는 우승 후보 스페인과 0-0, 두 차례 우승국 우루과이와 2-2, 사우디아라비아와 0-0으로 비기며 3무 무패로 32강에 올라 이변을 일으킨 바 있다.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대륙 서쪽 끝, 세네갈 해안에서 약 600㎞ 떨어진 대서양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화산섬 나라다. 1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으며, 국토 면적은 약 4030㎢로 제주도(약 1849㎢)의 두 배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인구는 2026년 기준 약 53만 명으로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번 대회에서 카보베르데는 인구 기준으로 남자 월드컵 사상 최소 규모의 국가로 토너먼트에 진출한 팀이 됐다.

'초록 곶'이라는 뜻의 이름과 달리 대부분의 섬은 건조하고 척박하다. 이 작은 섬나라의 역사는 대항해 시대, 그리고 대서양 노예무역과 맞닿아 있다. 15세기 중반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발견하기 전까지 이곳은 사람이 전혀 살지 않던 무인도였다. 포르투갈은 1462년 산티아고섬에 정착지를 세운 뒤 농장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본토에서 흑인들을 강제로 끌고 왔고, 카보베르데는 아메리카로 팔려 가는 노예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중계 기지가 됐다.

지배자인 포르투갈인과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인이 한 섬에서 뒤섞이며 이 나라 특유의 '크리올(Creole)' 혼종 문화가 빚어졌다. 카보베르데 거리에서 흑인이라 하기엔 밝고, 백인이라 하기엔 짙은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을 보게 되는 이유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지만 일상에서는 포르투갈어에 뿌리를 둔 크리올어를 더 많이 쓴다. 노예무역의 요충지였던 산티아고섬의 시다드 벨랴에는 옛 석조 요새와 식민지 시대 건물의 흔적이 남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카보베르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에 번진 독립 열풍 속에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카보베르데의 경제는 관광과 서비스업에 크게 기대고 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안정된 민주주의와 비교적 투명한 국정운영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발전되고 모범적인 국가 중 하나로 꼽히며, 유엔의 최빈개발국 지위를 졸업한 몇 안 되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아름다운 해변과 온화한 기후, 상대적으로 양호한 치안 덕분에 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문화적으로 카보베르데를 세계에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맨발의 디바'로 불린 세계적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 그리고 그가 세계에 알린 애상적인 음악 장르 '모르나(Morna)'가 대표적이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오른 모르나는 이산과 그리움의 정서를 담고 있는데, 이는 척박한 섬을 떠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아온 카보베르데인의 삶과 깊이 맞닿아 있다. 에보라의 명곡 '소다드(Sodade)'가 노래하는 것도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사이의 오랜 그리움이다.

이번 월드컵 돌풍도 바로 이 이산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화산섬에서 생계를 잇기 어려운 청년들이 오래도록 바다 건너로 떠나야 했던 탓에, 카보베르데의 디아스포라는 약 150만 명으로 본국 인구의 세 배에 이른다. 대표팀은 세계 곳곳에서 성장한 이들 혈통의 선수를 발굴해 전력을 끌어올렸다. 조별리그 최종전 선발 명단 가운데 여섯 명이 국외 출생일 정도로, 네덜란드·프랑스·포르투갈·아일랜드 등에서 자란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흩어진 카보베르데인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다시 모이는 상징이 곧 대표팀인 셈이다.

이번 대회 최고의 화제 인물로 떠오른 골키퍼 보지냐 역시 그런 사례다. 본명이 조시마르 조제 에보라 디아스인 그는 최근까지 포르투갈 2부 리그 샤베스에서 뛰던 무명에 가까운 40세 노장이었으나, 스페인전을 시작으로 연이은 선방 쇼를 펼치며 단숨에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아르헨티나전에서도 그는 메시의 슈팅을 여러 차례 막아내며 여덟 차례 선방을 기록했다.

이 팀의 별명 '푸른 상어(Tubarões Azuis)'는 섬 주변 대서양을 누비는 청상아리에서 따왔다. 월드컵 본선이라는 세계 무대는 광고료 한 푼 들이지 않고 나라 이름을 세계 유명 언론에 새기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계지도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대서양의 작은 섬나라는 이번 대회를 통해 여행자의 다음 목적지로, 축구를 통해 발견된 나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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