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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북중미 월드컵 32강 탈락, 경우의 수 덫에 막혔다
마이데일리
아쉬웠다. 정말 아쉬웠다.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자,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한마디 하셨다. "나도 축구를 봤다. 너무너무 분하고 아쉽다. 하지만 털어내야 한다. 지금의 아쉬움이 한국 축구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고 믿자. 공부하자." 선생님의 지적이 뼈를 때렸지만, 아쉬운 마음은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 월드컵 첫 승과 16강 진출(당시에는 24개국 출전 체제였다) 절호의 기회를 놓쳐 분함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32년 전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 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의 쓴잔을 들었다. 48개국 출전 체제로 바뀐 이번 대회에서 32강에 들지 못했다. 32년 전 느꼈던 것처럼 매우 분하다. 하지만 느낌이 같은 듯 또 다르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축구는 많은 것을 이뤘고, 축구 자체도 많이 바뀌었고, 축구를 바라보는 필자의 관점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홍명보호가 이번 대회 보여준 초반 경기력은 뛰어났다. 고지대 적응에 큰 공을 들였고, 체코와 1차전에 후반전 역전승을 이뤄내 성과를 봤다. 멕시코와 2차전 전반전까지도 매우 좋았다. 공동 개최국 멕시코를 몰아붙이며 기대를 드높였다. 하지만 축구는 역시 '변수의 스포츠'인 법. 결정적인 실수 하나가 패배로 이어졌다. 1승 1패. 토너먼트 진출도 탈락도 알 수 없는 안갯속에 빠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과 3차전은 솔직히 이길 줄 알았다. 전략을 잘 짜면 대승도 가능하다고 봤다. 우리는 비기기만 해도 토너먼트에 오를 수 있었고, 남아공은 이겨야 32강 진출이 가능했다. 1, 2차전에서 보여준 경기력과 전체적인 팀 컨디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질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뚜겅을 열어 보자 달랐다. 한국 선수들의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투지와 체력에서도 밀리면서 남아공에 32강 직행 티켓을 넘겨줬다.
그래도 희망이 남았다. '경우의 수'를 따져볼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는 12개 조 3위 팀이 8장의 와일드카드 티켓을 다퉜다. 1승 2패 2득점 3실점 골득실 -1이면 8위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신들도 80% 이상의 높은 가능성을 내다봤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불안했다. 조별리그 A조에 속해 먼저 경기를 마친 게 께름칙했다.
축구에서 조별리그 등 승점을 다투는 상황에서는 경기마다 전략을 달리 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경기가 더 그렇다. 기본 목표를 승리로 할지, 아니면 안정적으로 승점을 딸지 등을 고려해 전형부터 전략까지 맞춤형으로 짜는 경우가 많다. 승리를 목표로 하는 건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자존심을 위해서 무리하게 승리를 노리다가 패하는 우를 범하면 전체 목표를 그르칠 수 있다. 여러 팀들이 한국이 원하는 경우의 수를 도와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이 애초에 눈에 띄는 확률보다 낮은 경우의 수 덫에 갇혀 있었고, 그게 현실이 된 셈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대포알 프리킥 스승인 브라질 브랑코의 왼발 아웃프런트 프리킥 골과 호마리우와 베베투의 '요람 세리머니'에 감동했고, 이탈리아의 '슈퍼스타' 로베르토 바조의 결승전 승부차기 실축에 탄성을 내질렀다. 지금도 기억이 뚜렷한 명장면들이 차고 넘친다. 그렇게 축구를 더 좋아하게 됐고, 축구 기자와 해설 위원을 거쳐 지금도 축구 기사를 쓰고 있다. 월드컵을 즐길 줄 알았기에 '덕업일치'를 이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한국 축구가 또다시 '경우의 수'의 덫에 갇혀 토너먼트 주인공이 되지 못한 건 분명 아쉽고 또 아쉽다. 하지만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이제 1라운드가 막 끝났다. 더 멋진 승부와 스토리를 그려낼 2라운드가 대기하고 있다. 그래도 월드컵은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