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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소방관 죽음 내몬 괴롭힘…‘조직문화 개선’ 과제로
투데이신문
25일 국무조정실이 광산소방서 소속 여성 소방관 사망사건을 조사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지난 11일부터 약 2주간 관계기관을 대상으로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 제기된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파악됐다.
제기된 의혹은 △피해자에게 늦은 시간까지 회식·음주·회식 시 상사 옆자리 착석·부적절한 호칭 등 강요 △사적 노무 지시 △유족 측의 갑질 문제 제기 및 사망에 대한 조사요구 등 감찰요구에 대해 관할 소방서 등은 형식적 확인만 한 뒤 감찰 요구 묵살 △권한 없이 피해자 심리상담 자료를 받아 상담 내용 중 일부만 발췌·왜곡해 대내외 노출 등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광주소방본부 소속 20대 여성 소방관 A씨가 결혼을 앞둔 시점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광주소방본부는 A씨의 심리상담 기록 가운데 일부 내용만 발췌해 사망 원인으로 약혼자와의 관계 문제를 언급한 공문을 배포했다. 이에 유족과 약혼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며 진상조사와 감찰을 요구했다.
해당 사건이 사회적 관심을 모으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국무조정실 주도의 진상조사를 지시한 바 있다.
조사 결과, A씨는 약 15개월 동안 총 24차례의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 일부 회식은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노래방과 나이트클럽 등에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후래자 삼배’, ‘파도타기’ 등 이른바 폭탄주 문화를 강요받은 사실이 파악됐다. 상급자들은 A씨에게 “원샷하라”고 요구하거나 “서장에게 가서 인사하고 술을 받아라”, “과장 옆자리에 앉아라”는 등의 지시도 내렸다. 상사가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도록 요구한 정황도 드러났다.
직무와 무관한 사적 업무 지시도 이어졌다. A씨는 전임 서장의 부친상과 빙부상에서 상차림 준비와 심부름을 맡았으며 해외여행을 앞두고는 특정 상사를 대신해 술과 커피를 구매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사망 이후 진행된 감찰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가 포착됐다. 유족이 감찰을 요구했지만 갑질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부서장이 직접 조사에 관여하면서 사실상 자체 조사가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광주소방본부는 해당 조사 결과를 형식적으로 검토하는 데 그쳤고 소방청 역시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 이후에도 관련자 대면조사를 미루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심리상담 기록이 왜곡됐다는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상담 자료에는 약혼자와의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었지만 광주소방본부는 교제 과정의 어려움을 언급한 부분만 선별해 활용했다. 이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사망 원인이 특정 방향으로 해석됐다는 게 국무조정실의 설명이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무조정실은 광산소방서 9명, 광주소방안전본부 6명, 소방청 본청 2명 등 총 17명에 대한 징계처분을 소방청에 요구할 방침이다. 퇴직자 2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소방청 역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전국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를 조사하고 가해자에 대해선 엄중히 조치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이번 사례와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되지 않도록 전 부처와 공공기관의 조직문화를 전면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군 조직에서도 상급자의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발생했다. 군 등에 따르면 최근 한 육군 부대의 C중령은 부하 직원들에게 폭언과 부당한 지시를 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특히 임신 중이던 D대위에게 모성보호시간 사용을 사실상 제한하고 업무 외 문서 수발 업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D대위는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하혈 증상을 겪다 임신 10주 차에 유산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공기관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노동자 사망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한국지방세연구원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해 발표한 결과, 지난해 사망한 직원 E씨가 생전에 제기한 연차 사용 제한, 모욕적 언행과 욕설, 명예훼손, 감사권 남용 등 괴롭힘 신고 내용 상당수가 사실로 파악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반면, 공무원과 군인은 국가공무원법·공무원 행동강령·징계 규정 등 별도 법령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근로기준법이 피해자 보호조치와 조사·징계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과 달리 공무원 사회의 갑질 대응 체계는 상대적으로 강제력이 약한 하위 규정 중심으로 운영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공무원 3대 노조 중 하나인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23일 성명을 내고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가 시행된 지 곧 7년을 맞이하지만 공무원 노동자는 제도의 사각지대”라며 “공무원 노동자도 민간 노동자만큼 보호받아야 하며 공직사회에도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금지 제도만큼의 강력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다만 공무원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의 직접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만으로 반복되는 괴롭힘 문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직장갑질119 김유경 운영위원(노무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 징계령, 각 기관의 갑질 신고·처리 절차 등 관련 제도가 이미 마련돼 있으며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에 대한 징계 규정도 존재한다”며 “핵심은 공직사회의 조직문화다. 상명하복식 문화와 폐쇄적인 조직 운영, 사건 발생 이후 미흡한 조사와 부적절한 후속 조치가 반복되면서 괴롭힘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특히 신고 이후 피해자가 고립되거나 2차 가해를 겪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조직 구성원들에게 ‘신고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무력감을 심어주고 있다”며 “공직사회가 사회 전반의 변화된 인권 감수성과 직장 문화 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폐쇄적 조직문화와 경직된 규정, 내부 문제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고 짚었다.
공공기관의 내부 조사 중심 대응 방식도 한계로 꼽혔다. 김 운영위원은 “내부 조사 과정에서 객관성과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만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조사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