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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극복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산업화 민주화 뿌리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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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 탄생이라면 6·25는 생존의 상징

산업화·민주화의 출발점은 전쟁 극복

"Freedom is not free"…자유 공짜 아냐

헌법 전문에 6·25 극복 정신 담아야
내 어머니는 전쟁을 애써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 아이가 소리도 없이 울고 있었다.

폐허에 묻힌 채 "엄마!"를 외치는 아이들의 절규가 뉴스 화면을 뚫고 나온다. 참혹한 비극의 폭로는 단 몇 초에 불과하다. 리모컨을 돌리면 화면은 이내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참혹은 순간이고 현실은 다시 평화롭다. 전쟁은 인간의 숭고한 감정을 기록하지 않는다. 오직 파괴와 죽음, 이름 없는 수치와 통계만 남길뿐이다.

유월이 오면 내 어머니의 심장통(心臟痛)이 다시 시작된다.

그 아이의 울음은 76년 전 나의 어머니의 울음이었다. 바로 우리의 역사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잊었다. 형은 동생의 심장에, 동생은 형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비극의 시대가 있었음을. 아니, 지금도 휴전선 너머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가고 있음을 잊고 산다. 코스피 지수를 이야기하고 월드컵에 환호하며 여름휴가를 준비한다. 지금의 평화와 번영이 본디부터 있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내 어머니는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구순을 앞둔 지금도 한국전쟁은 어머니에게 슬픈 옛 노래다. 어린 동생을 업고 피난길에 올랐던 기억, 배고픔과 추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6.25 전쟁의 역사는 비극의 종말이 아니라 기적의 출발이었다.

1952년 가평. 전쟁의 포성이 멈추지 않던 시절, 미 제40사단 장병들은 천막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을 위해 2달러씩을 모아 학교를 세웠다. ‘가이사중학원’(현 가평중고)이었다. 교명은 열아홉 살 나이로 전사한 케네스 카이저 하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내 어머니는 그 학교에서 배움을 얻었다. 어머니의 삶이 바뀌었고,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했지만, 누군가는 폐허 속에 학교를 세웠다. 누군가는 이름 모를 나라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청춘을 내어놓았다. 가평의 교실과 이름 없는 산하에 잠든 수많은 유엔군의 희생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결코 홀로 만들어진 나라가 아님을 말해준다.

미국인들은 6.25 전쟁을 흔히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6.25 전쟁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민족사의 상처다.

오래전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기념공원 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큰 울림을 받았다.

그곳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지금의 자유와 평화는 '그들이 알지 못했던 국가와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청춘을 흔쾌히 내어준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 그리고 풍요는 본디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누군가가 이미 선불(先拂)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성취는 그때 살아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선 것이었다. 학교를 세우고, 다리를 놓고, 공장을 만들고, 자녀를 공부시키며 미래를 준비했던 국민들의 처절한 생존 의지였다.

그 의지는 산업화로 이어졌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성취 위에서 민주주의도 꽃피웠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서로 다른 역사가 아니다.

공산 전체주의의 침략에 맞서 자유와 인간성을 지켜낸 국민들의 의지, 그리고 6.25 전쟁의 폐허를 극복한 국민적 에너지 위에서 함께 자라난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다.

위대한 국민의 역사다.

그런데 우리는 그 출발점을 너무 쉽게 잊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안보 현실과 역사 인식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 대화를 강조하는 정부가 있는가 하면 억지력을 강조하는 정부도 있다. 그러나 6.25 전쟁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평화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힘의 산물이다. 튼튼한 안보와 확고한 억지력 위에서만 평화도, 대화도, 번영도 가능하다.

당시 최첨단 전략무기였던 신기전(神機箭)과 거북선도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비용을 걱정하는 이도 있었고,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는 이도 있었으며, 필요성을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생존 앞에서 망설임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역사는 준비된 평화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음을 반복해서 가르쳐 왔다.

가시를 벗어버린 고슴도치는 독수리의 발톱을 피할 수 없다.

무난한 평화는 파멸의 전조다.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한다. 전쟁을 기억하는 이유는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는 6.25 전쟁 극복의 정신을 매년 유월 한 달의 추모 행사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

위대한 국민의 당당한 자부로 기려야 한다.

우리 미래의 동력으로 이어가야 한다.

현행 헌법 전문은 3·1 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그리고 4·19 민주이념을 담고 있다. 향후 개헌 과정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수록도 논의되고 있다. 모두 대한민국 정체성의 소중한 뿌리다.

그러나 우리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기억하면서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점점 잊어가고 있다.

3·1 운동이 대한민국의 탄생을 상징한다면, 6·25 전쟁 극복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상징한다.

탄생이 국가의 시작이라면, 생존은 국가의 지속이다.

국가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기억해야 한다.

그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무너졌다면 오늘의 산업화도, 민주화도, 경제성장도 존재할 수 없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자유와 민주 그리고 풍요는 있을 수 없었다.

이제 헌법 전문에 6.25 전쟁 극복의 역사와 자유와 민주를 수호한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담자.

이것은 단순히 과거를 추모하고 전쟁을 기념하자는 것이 아니다. 폐허 속에서도 자유와 민주를 포기하지 않았던 국민의 의지와, 그 위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국가 재건의 역사를 대한민국의 국가 기억으로 남기자는 뜻이다.

미완의 통일을 위한 의지를 다지고, 자유와 민주를 향한 열망을 공고히 하며, 세계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향적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뜻이다.

그것은 과거를 향한 회고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약속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무엇을 지켜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헌법이라는 국가의 최고 규범에 새겨두자는 제안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기적의 시작은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존의 기억이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가능하게 한 원형(原型)이다.

"우리가 조국을 사랑한 만큼, 조국도 우리를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옛 전쟁영화 속 무명용사의 마지막 대사가 더는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푸른빛보다 더 푸른 청춘을 흔쾌히 바친 영웅들과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온 우리에게 그리고 이 나라를 이어갈 미래 세대에게도 그 희생의 의미를 전해야 한다.

유월의 하늘은 맑으면 맑을수록 더욱 가슴 시리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잊지 말라는 역사의 경고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기적의 역사를 헌법에 새기는 일은 과거지향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기억이다.
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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