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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도 경영 실패, JTBC 채무불이행 및 중앙그룹 법정관리
최보식의언론
그러나 2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미디어 시장을 호령하던 JTBC와 중앙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대우의 몰락 공식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은 궤적을 그리며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참담함을 넘어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것은, 이 파국이 거시적 재앙이 아니라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JTBC 몰락의 씨앗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 홍정도와 손석희라는 두 주역의 만남에서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2013년 홍정도 부회장의 파격적인 ‘손석희 영입’은 종편의 한계를 깨고 지상파를 위협하는 압도적 신뢰도를 구축한 신의 한 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인 부메랑을 품고 있었다. '손석희'라는 거물 일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원톱 체제는 앵커의 퇴장과 함께 보도의 중심축을 잃게 만들었고, 대안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방송사는 급격히 표류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을 거치며 굳어진 정치적 편파성은 전통적 보수 시청층을 완전히 등돌리게 만들었으며, 이후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외면받는 사면초가의 고립을 자초했다. 근원적인 정체성 혼란과 시청층 붕괴라는 내상이 이미 깊었던 셈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치명상을 입힌 것은 전권을 부여받은 손석희 보도국 체제가 쏘아 올린 "태블릿 PC 보도"였다. 이 보도가 국정농단 사태의 도화선이 되면서, 삼성그룹의 황태자이자 홍정도 부회장의 외사촌 형인 이재용 회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재용 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의 외가이자 외사촌동생이 경영하는 방송사의 칼날에 찔려 옥고를 치른 격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혈맹 같았던 삼성그룹과 중앙그룹은 완전히 등을 돌린다. 대한민국 광고 시장의 전지전능한 최고 큰손인 삼성으로부터의 광고 물량은 이후 10년간 사실상 전면 중단되었고,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삼성발 광고 부재는 JTBC의 기초 체력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갉아먹는 유동성 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진짜 비극은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젊은 오너가 이 손석희 시절의 성공 착시에 취해, 그리고 삼성의 광고 중단으로 내실이 무너져가는 방송사의 체질 개선 대신 맹목적인 과시욕과 탐욕으로 폭주했다는 점이다.
홍정도 부회장은 미디어 시장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욕심만 앞섰을 뿐, 변화하는 시장을 읽는 안목도 재무적 감각도 부족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글로벌 OTT의 공습으로 레거시 미디어의 광고 시장이 뿌리째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는 빚으로 덩치를 키우는 무모한 불도저식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홍 부회장이 주도한 경영적 판단들은 대우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한 무모함의 극치였다. 그는 자회사 피닉스스포츠를 내세워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7,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독점 싹쓸이하는 폭주를 감행했다. "독점권을 쥐고 흔들면 지상파 3사가 비싼 값에 되사갈 것"이라는 안일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오너의 대책 없는 호기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시청률 하락과 광고 수입 격감이라는 불황 속에 지상파 방송들이 협상을 전면 거부하며 출구 전략은 시작부터 꼬였다. 결국 이 무리한 선투자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그룹 전체가 동원됐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스포츠 자회사를 연명시키고자 중간지주사인 콘텐트리중앙이 연 8%대 고금리 사모채를 무더기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뒤, 이를 자회사에 대여하고 연쇄 지급보증을 서는 위험한 자금 돌려막기가 꼬리를 물었다. 자기자본 없이 빚으로 덩치를 키우다 연쇄 보증으로 무너진 대우의 비극적 데자뷔였다.
결국 사달이 났다. 천문학적인 중계권 빚을 굴리며 버티던 끝에, 고작 200억 원 남짓한 단기 유동화 차입금 만기를 막지 못해 JTBC의 디폴트(채무불이행-부도)가 터졌다. 그리고 홍 부회장이 촘촘하게 얽어매놓았던 계열사 간 연쇄 지급보증의 고리는 단 이틀 만에 지주사 전체를 법정관리라는 심해로 침몰시켰다.
손석희라는 인물에 기댄 정체성의 고립과 삼성과의 절연이 몰락의 근원적 토양이 되었다면, 대외 환경의 경고음을 외면한 채 빚으로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홍정도 부회장의 오판과 독단은 그 제국에 마지막 사형선고를 내렸다. 과거의 흑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실패를 반복하는 기업의 모습은 한국 비즈니스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겼다.
오너 한 사람의 엇나간 욕심과 오판의 대가는 결국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려온 직원들과 투자자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경영을 주도한 이는 책임지지 않고, 힘없는 이들만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 비정한 현실이 이번 사태의 가장 아픈 단면이다.
과거 대우의 비극을 지켜보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역량 부족한 오너가 과시욕에 눈이 멀어 무리하게 판만 키우다 제 발등을 찍은 꼴이다. 시장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폭주한 경영자는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다는 평범한 상식을, 우리는 이번 홍정도 부회장의 파멸을 통해 다시 한번 무겁게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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