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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시위 4일째, 부정선거·스톱 더 스틸 구호로 통일
미디어오늘
8일 오전 9시께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정문 앞에는 100여명이 모여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쳤다. 참가자마다 태극기를 든 가운데 곳곳에 성조기도 보였다. 내란(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전직 대통령 윤석열 씨가 파면되기 이전부터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구호로 사용돼 온 ‘스톱 더 스틸’ 피켓이 다수 보였다.
오후가 되자 시위 규모가 500여명 수준으로 늘었고 구호 소리도 거세졌다. 이들은 애국가를 2절까지 제창하거나, ‘스톱 더 스틸’ 구호를 번갈아 외쳤다. 오후 5시 기준 참가자는 경찰 비공식 추산 2000명으로 늘었으며, 저녁 8시 현재 시위 규모는 더욱 불어났다.
곳곳에 “정치색 없다” 주장… 구호는 ‘부정선거·스탑 더 스틸’ 모여
집회 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참가자들이 ‘자발적 시민’이라고 강조하는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물품은 애국자 시민이 사비로 준비했다” “모든 봉사자들은 국민 분들의 자발적 참여이다” “저희는 절대 후원금 받지 않는다” 등이다. “출력물(피켓)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장문의 육필 대자보도 눈에 띄었다. 기계로 글씨를 출력한 피켓은 시위가 조직됐다는 의미라는 뜻에서다. 대자보 옆에선 참가자 4명이 간이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종이에 직접 ‘부정선거 재선거’ ‘전자투표 반대, 수개표’ 구호와 태극 문양을 반복해 적고 있었다.
이날 미디어오늘이 인터뷰한 참가자 6명은 모두 스스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1명을 제외하고는 지방선거 이전부터 부정선거론에 동의해왔다고 밝혔고, 다수는 윤석열 씨의 12·3 비상계엄이 내란이 아니라고 봤다.


이날 처음 시위 현장을 찾았다는 요식업 종사자 정아무개씨(27세·여성)는 입구에서 태극기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 관심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이번 투표용지 사태가 단순한 선거관리 실패가 아니라 “민주당을 당선시켜서 우리 나라를 공산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장 선거 개표 결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냐고 묻자 “오 시장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게 당연했고 다른 지역도 정치색이 짙은데 결과가 달랐다”고 했다. 그는 극우 유튜버로 분류되는 전한길씨를 언급하며 “한길 샘이 혼자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고 말한 뒤, “계엄 자체가 내란이라 생각은 안 한다”고 했다.
尹계엄 선거제도 무력화 묻자 “계엄엔 관심 없어”
자신이 간호사 출신이라고 밝힌 여성 A씨는 의료부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엔 관심이 없었지만 소중한 한 표의 권리 행사를 주장하는 곳에서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니 나왔다”라며 “‘선거 부실’이라며 재선거하자는 주장을 자꾸 하는데 의도가 없더라도 잘못된 선거라면 부정선거”라고 했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입법부인 국회와 선거관리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무력화하는 계엄을 선포했던 데 대한 의견을 묻자 “내란이나 탄핵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계엄에 관심도 없고 뭔지도 잘 모른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자 주변의 참가자들이 모여들며 “왜 계엄에 대해 묻냐” “지나가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경기 광주에서 온 가정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 임아무개씨도 “우리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번 일은 우파, 좌파를 떠난 문제”라면서, 이전부터 ‘스톱 더 스틸’ 구호에 공감해왔다고 했다.
계엄 당시 윤석열씨 탄핵에 찬성했다는 서울 성동구의 요식업자 김아무개씨(37세·남성)는 “지금은 솔직히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부정선거론 자체를 기존에 관심 있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 일은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부정선거라는 주장과 재선거만 주장하는 쪽 모두 맞다고 본다”며 “투표 용지 부족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것이 일어났으니, 그 자체로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했다.
시위 규모가 불어난 주말 사이, 스레드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서는 방송3사가 서울 잠실 투표소의 시위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다수 공유되기도 했다.
서울 강서구 주민이라는 30대 남성 공아무개씨는 “네이버와 유튜브를 통해 언론사 기사를 보고 오게 됐다”고 밝히면서도 “(언론 보도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잠실 투표소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청년에 코마 상태에 빠진 부분은 기사화가 안 되고 오히려 특정 정치세력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지난 5일 투표함 반출 과정에서 대학생이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퍼지자, 경찰은 당시 동영상과 경찰관 진술 등을 토대로 사실이 아니라고 바로잡은 바 있다.

이날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에 따르면 오전 11시쯤 부정선거를 외치는 사람들과, 부정선거가 아닌 재선거로 한정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대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나 오후에 접어들면서 재선거만을 외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핸드볼연맹 관계자들과 여성 유소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훈련에 필요한 장비를 가져오기 위해 시위대가 막아선 경기장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했는데, 시위대가 핸드볼이 담긴 바구니를 끌고 나서는 선수들에게 시위대가 ‘투표용지를 숨긴 것 아니냐’며 몰려들기도 했다.
복수의 기자들은 이날 시위 성격이 ‘윤어게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부정선거론’으로 변모했다고 봤다. 온라인 매체 C사의 기자는 “오늘 인터뷰한 참가자들은 모두 이번 지방선거 이전부터 부정선거론을 의심해온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D사 소속 기자는 “구호가 ‘부정선거’와 ‘스톱 더 스틸’로 통일됐다는 점 자체가 적어도 참가자들 사이에서 부정선거론 주장을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소수 이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다”며 “출력물을 피켓으로 안 쓴다며 순수함을 어필하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종이를 박스채 갖다 놓고 피켓을 제작하고 있다. 이는 확실히 정치색을 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청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최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중심으로 집회·시위 현장 등에서 근무 중인 경찰관을 대상으로 ‘외국경찰’, ‘가짜경찰’ 등 확인되지 않은 억측과 경찰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이 확산되고 있다”며 “정당한 법집행을 어렵게 하는 근거 없는 허위사실 유포를 자제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