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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길이와 속옷 매출, 소비 심리 읽는 이색 지표
위키트리
이 가설은 1926년 미국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가 제시한 이론에 뿌리를 둔다. 경기가 좋을 때는 사회 전반에 활력이 돌고 소비자 심리도 과감해져 무릎이 드러나는 짧은 치마가 유행한다는 논리다. 반대로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사회 분위기가 위축되고 보수적인 경향이 강해지면서 치마 길이가 길어진다고 본다.

당시 이 현상은 패션과 경제를 연결해 보는 여러 해석을 낳았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옷차림도 과감해진다는 인식이 퍼진 계기이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는 호황기에 여성들이 고가의 실크 스타킹을 살 여유가 생기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치마가 짧아진다고 봤다. 반대로 불황기에는 스타킹 구매 부담이 커지거나 품질을 감추기 위해 긴 치마를 선호한다는 현실적인 가설도 나왔다.
물론 현대 패션의 유행은 디자이너의 마케팅, 문화적 흐름,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치마 길이와 경제지표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맺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헴라인 지수는 정형화된 통계가 주지 못하는 직관적인 재미가 있다. 증시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시장 안팎에서 다시 언급되는 이유다.
시선을 옷차림에서 소비 품목으로 돌리면 '남성 속옷 지수'가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소비를 통해 가계의 지출 여력을 살펴보는 지표다. 이 지표는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경제 예측 과정에서 살폈던 항목으로 거론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남성용 속옷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품목이다. 평상시에는 연간 매출 흐름이 비교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계 실소득이 줄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 소비자는 지출을 줄일 품목을 찾는다. 이때 타인의 시선에 직접 노출되지 않는 의류가 먼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 남성 속옷 지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이 현상은 다시 주목받았다. 미국 시장 조사 기관들의 집계에 따르면 당시 남성 속옷 매출이 이례적으로 급감했다. 이후 자본시장이 회복 국면에 들어서고 고용 상황이 개선되면서 속옷 매출도 완만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 사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비가 가계 심리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주 언급된다. 주식시장이나 거시 경제 통계처럼 숫자로 바로 확인되는 자료는 아니지만, 소비자가 어디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는지 보여주는 생활형 지표로 읽힌다.
경기가 나빠질 때 오히려 매출이 늘어나는 품목도 있다. '립스틱 효과'와 '초콜릿 효과'가 대표적이다. 두 지표는 경제적 부담이 커질수록 소비자가 큰 지출 대신 작은 만족을 주는 제품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립스틱은 이런 소비 심리를 잘 보여주는 품목으로 꼽힌다.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외모의 변화를 줄 수 있고, 구매 직후 만족감도 뚜렷하다. 소비자가 지갑을 완전히 닫기보다 부담이 작은 제품으로 욕구를 옮기는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불황기의 상징적인 지표가 됐다.

이 때문에 대형 가전제품이나 가구처럼 가격 부담이 큰 품목의 소비가 줄어드는 동안, 대형마트나 편의점의 초콜릿·캔디류 등 저가 기호식품 매출은 늘어나는 흐름을 보이기도 한다. 큰 비용을 쓰지 않으면서도 일상에서 작은 만족을 찾는 소비자의 선택이 반영된 지표다.
이색 경제지표들은 행동경제학적 관점과 맞닿아 있다. 전통 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로 전제하지만, 실제 자본시장과 소비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감정과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패션의 변화나 장바구니 속 품목은 숫자와 그래프가 놓치기 쉬운 심리의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대 사회의 소비 방식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온라인 쇼핑, 글로벌 패션 트렌드, 개인 취향의 세분화가 소비 흐름을 복잡하게 만든다. 특정 품목의 매출이나 유행만으로 전체 경기 흐름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치마 길이가 짧아졌다고 주가 상승을 기대하거나, 속옷 매출이 줄었다고 곧바로 경기 침체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