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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비극인 삶 속 끝까지 남는 건 함께 버틴 사람들
위키트리
생명을 살리는 현장에 오래 서 있었던 그의 말은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 교수는 특별한 영웅만을 말하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티는 사람들, 그리고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국종 교수는 과거 “롤 모델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롤 모델은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내 롤 모델이다. 수련의, 간호사 등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배울 점들이 많다”며 “누구한테나 배울 게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한테나 배울 게 있다”는 말은 사람을 직함이나 성과만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닿아 있다. 나보다 경험이 적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 말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이국종 교수의 또 다른 발언은 더 묵직하다. 그는 과거 “인생은 99%가 비극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끝(종국)도 비극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죽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사는 목적은 가끔씩 오는 즐거움이나 행복이나 그런 빛을 보면서 산다”고 말했다.
삶의 대부분이 비극이라는 말은 얼핏 차갑게 들린다. 그러나 이 발언의 핵심은 절망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고통과 한계, 상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뒤에도, 사람은 가끔 찾아오는 기쁨과 행복, 작은 빛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뜻에 가깝다.
이 교수는 이어 “그런데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면, 인생에서 뭐만 남냐면 직장, 내지는 사회생활에서 같이, 옆에서 사선을 돌파하는 친구들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남는 것’은 돈이나 성취, 명예가 아니다. 어려운 시간을 같이 통과한 사람들, 같은 현장에서 함께 버티며 서로의 고통을 아는 동료들이다.

이 말은 삶이 아무리 외롭고 버겁게 느껴져도, 사람은 완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내가 힘겹게 버티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응원하고 싶은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국종 교수의 발언이 오래 남는 이유는 거창한 성공담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는 사람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함부로 가볍게 보지 않는 태도다.
인생이 대부분 비극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끝까지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함께 버틴 사람들일지 모른다. 특별한 영웅만이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사람들도 서로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국종 교수의 말이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다.

사람을 소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거창한 말이나 특별한 행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태도에서 드러난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이름을 기억하는 것, 쉽게 평가하지 않는 것,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행동이 한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이 된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태도는 결국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꺼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잠시 멈춰 이해하려는 태도다. “그랬구나”, “그때 많이 힘들었겠다”,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 같은 짧은 반응만으로도 사람은 자신이 함부로 취급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의 장면으로 끝내지 않는 것이다. 오늘의 실수만으로, 한 번의 말투만으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상대를 규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저 사람도 자기 자리에서 버티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를 대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려면 그 수고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말로 표현해야 한다. “고생했어요”, “덕분에 편했어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같은 말은 짧지만 오래 남는다. 고마움을 표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소모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얻는다.

가까운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부탁할 때는 당연하게 말하지 않고, 실수했을 때는 변명보다 사과를 먼저 하며, 익숙한 도움에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이 쌓이면 관계는 지친다. 반대로 작은 존중이 반복되면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단단해진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진다. 상대를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배울 대상으로 보게 된다. 그런 태도는 결국 나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내가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버팀목이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일은 거창한 선행보다 일상의 태도에 가깝다. 말을 끊지 않고, 쉽게 단정하지 않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예의를 잃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고 여기는 것. 이런 작은 태도들이 쌓일 때 한 사람 한 사람은 함부로 지나쳐지는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는 존재가 된다.